[덕암 칼럼] 역사는 흐른다
[덕암 칼럼] 역사는 흐른다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2.04.19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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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1990년 김수철 가수가 부른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가사 중에 역사는 흐른다는 소절이 있다.

1절이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 단군할아버지가 터 잡으시고’로 시작해 4절은 ‘황소그림 중선 역사는 흐른다’고 끝나는 곡인데 지금은 낯설지만 처음 곡이 발표될 때만해도 역사를 한번에 외울 수 있는 기발한 곡이었다.

현재는 미래의 과거다. 과거 없는 현재는 없듯이 현재의 모든 것은 미래의 거울이 되며 때로는 지혜의 기반이 되기도 하고 숱한 질곡의 세월속에 새로운 유행과 변화, 그리고 발전이 따르는 것인데 불과 50대 후반에 불과한 필자가 백년, 천년을 논하기에는 역사적 기록과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지금으로부터 62년 전인 1960년 3월 15일 필자가 태어나기도 전인 당시 대한민국은 전쟁이 끝나고 폐허속에 먹고 살기조차 힘들었던 격동의 시대였다.

어수선한 시국에서 이승만 정권이 3번이나 권력을 연임하자 학생들이 선봉에 나섰고 국민들이 합세하여 민주주의를 처음으로 역사에 기록한 사건이었다.

권력을 향한 비리는 부정선거로 이어졌고 투표함을 뒤집자 이미 기표된 투표용지가 쏟아지면서 분노한 민심은 봇물처럼 확산됐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 발포로 강력한 진압에 나섰지만 그럴수록 국민들의 저항은 겉잡을 수 없이 전국으로 확대됐다.

이때 진압으로 186명의 사망자와 6천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는데 16살 소년 김주열 군이 최루탄에 맞아 숨진 채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됐다.

이 사건은 새로운 국면의 도화선이 됐고 4월 18일 고려대 학생들이 집단으로 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다음날, 서울지역을 비롯해 전국에서 정부를 향한 시가행진이 벌어졌다.

그렇게 시작된 4·19 혁명은 이승만 정권의 종식과 대통령의 하야로 막을 내렸지만 4대 윤보선 대통령이 임기도 채우지 못한 채 막을 내렸고 1963년 5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박정희 전 대통령은 9대까지 무려 16년간이나 서슬퍼런 군부 독재 정권을 이어갔다.

서울 궁정동의 총성으로 운명을 달리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뒤를 이어 10대 최규하 대통령이 2년도 안 되는 임시직으로 자리를 지켰지만 이후 1980년부터 1993년까지 13년간 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정권은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이후 약 30년간 군홧발에 민주화가 유린당하는 시대였다.

군인은 국방에 집중하고 정치는 정치인이 하는 게 맞는 법이다. 지금의 민주화시대가 그냥 온 게 아니라 군사정권에 대한 국민적 저항과 숱한 열사들이 희생을 감수하며 숭고한 정신으로 얻어낸 역사적 성과다.

하루가 멀다 하고 최루탄 가스에 기침소리가 멎을 날이 없었다. 신문에는 연일 대학생들의 시위와 경찰의 진압사진이 1면을 도배했다.

한번씩 서빙고, 남영동, 고문실에 끌려간 민주화의 선봉은 온갖 고문에 시달리면서 암흑같은 30년을 보냈다.

4·19 혁명이 낳은 비극치고는 어이없는 날들이었다. 같은 칼이라도 강도 손에 잡히면 사람을 해치는 흉기요, 요리사 손에 잡히면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주방기구다.

정치인이 잡아야 할 권력이 군인 손에 들어가니 당연히 국민들의 고초는 예견된 재앙이었다.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이어지다 친일파에 의해 식민지시대를 살던 36년, 민주화를 갈망하던 국민들이 나라 지키라고 세금 모아 사준 총칼로 주권자인 국민위에 군림하던 30년, 어쩌면 조선시대가 더 살기 좋았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온갖 희생을 치른 대가로 자유와 문명의 발달을 얻었다. 문민정부를 천명하면서 시작된 민주화는 통행금지 해제, 해외여행 자유화 등으로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지만 서양문물의 검증없는 무차별 도입으로 우리 민족 고유의 가치관이나 미풍양속, 자존감이나 긍지는 사라진 것이나 진배없다.

종교, 문화, 음악, 체육은 물론이고 집에서 키우는 개, 물고기, 새, 심지어 화초까지 모두 미국 흉내내기에 급급했다.

머리색과 눈동자, 손톱, 성문화, 간판의 글자까지 오로지 우리 것을 버리기에 망설임 없었다.

전세계 각국의 문화·예술이 자국의 가치와 국격을 대신하는 것이라면 대한민국에는 남은 게 별로 없게 됐다.

일제치하도 아니고 군사독재도 아닌 자유의 물결이 우리 것에 대해 얼마나 적합한지 확인도 하기 전에 방종으로 이어졌다.

손에 돈만 쥘 수 있다면 남편에게 복어 독을 먹일 수도 있고 병들어 가는 부모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강제로 요양병원에 입원시켜 영영 바깥세상 구경을 못하게 할 수도 있다.

황금만능주의, 쾌락위주의 문란한 성문화, 자질보다는 세력으로 거머쥔 권력, 먼저 따내면 생색까지 내면서 재선, 3선, 5선까지 연임할 수 있는 국가예산은 눈먼 돈이었다.

62년 전 부정선거로 시작된 4·19 혁명, 이제는 혁명을 일으킬만한 명분도 없고 설령 그럴만한 상황이 오더라도 당시처럼 나설 의인도 없다.

하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도 부정선거 의혹은 여전하다. 인공위성이 난무하는 우주개발시대, 첨단과학이 인간의 생각까지도 읽어내는 인공지능시대에 살면서 아직도 부정선거에 대해 갑론을박 한다면 대한민국 선거판이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음을 세계적으로 공표하는 것이다.

모름지기 가을에 풍성한 추수를 맞이했다면 봄에 씨를 뿌리고 뜨거운 여름 내내 땀을 흘린 농부의 수고가 있었음이다.

일제치하나 군부독재가 종식된 것은 나라를 구하려는 애국열사와 호국영령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지금의 우리는 그러한 희생 덕분에 자유의 극치를 달리는 것이다. 적어도 지금 같은 방종은 개선되어야 한다.

진정한 자유는 책임과 후손을 위하는 배려가 병행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당장의 이익과 이기주의가 만연한다면 역사는 퇴보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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