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장애의 기준은 무엇일까
[덕암 칼럼] 장애의 기준은 무엇일까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2.04.20 08: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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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장애란 신체적·정신적 불편함을 가진 상태를 말하는데 선천적 원인도 있으나 사고나 질병으로 인한 후천적 원인도 있다.

누구든 원치 않는 상황에 직면한 장애인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고 사회적 편견이나 차별을 없애는 한편 장애인들을 위한 각종 사회복지시설이 점차 확대되면서 해를 거듭할수록 불편이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신체적 불편함을 가진 장애인들이 외출할라치면 문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적잖은 어려움을 겪는 게 현실이다.

이 같은 불편을 모든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매년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정하여 함께 사는 사회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지난 1972년부터 민간단체에서 개최해 오던 ‘재활의 날’을 1981년부터 ‘장애인의 날’로 정한 게 지금까지 이어져 온 날이다.

그 동기를 찾아보면 1981년 UN 총회에서 장애인의 완전한 참여와 평등을 주제로 세계 장애인의 해를 선포하고 세계 모든 국가에서 기념사업을 추진하도록 권장하자 한국에서도 4월 20일을 ‘제1회 장애인의 날’로 정한 것이다.

현재 국내 장애인 단체를 보면 장애 분야에 따라 다양한 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교통사고로 인한 장애인협회, 뇌성마비 복지회 등 많은 단체가 있으며 장애인고용 촉진 캠페인, 장애인 짐-카나 대회, 뇌성마비인 축구대회, 생활체육 론볼링대회, 재활심포지엄, 장애인돕기 성금 모금, 음악회 등 각종 문화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많은 국민들이 이미 알고 있는 상식이며 전부는 몰라도 대부분 기억하는 연례행사다.

문제는 육체나 정신이 멀쩡한 사람이 하는 짓마다 정상적이지 못하다는 것이 진정한 장애다.

내 것도 아닌 것을 욕심낸다거나 자신의 허물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도덕성 마비는 소아마비보다 더 심각한 장애다.

사람이 살다 보면 입안의 혀도 물리는 법인데 본의 아니게 실수나 순간적인 판단 오류로 인해 주변에 민폐를 끼칠 때가 있다.

상식적 견해에서 보면 당연히 발생한 문제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하면 되는 일을 타인의 잘못으로 전가하여 어떡하든 위기를 모면하려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대표적인 예가 선거에 출마하기 전 온갖 공약을 내놓는 정치인들이다. 하지만 막상 당선이 되고 보면 임기 만료 한 달전까지 까마귀 고기를 먹었는지 통 기억을 못 하다가 선거가 임박하면 믿어달라고 통사정을 한다.

자신만이 지역발전의 일꾼이라며 4년 내내 내팽개쳐놨던 민생법안을 국물이 멀겋도록 우려내며 온갖 미사여구를 모두 동원한다.

물론 그런다고 찍어주는 유권자도 공범이자 한심한 일이지만 그것이 먹히니 그러는 것이고 침묵은 묵시적 동의라 했던가.

70년이 넘도록 같은 현상을 반복한다. 어쩌면 옳고 그름을 떠나 외눈박이 세상에 두 눈으로 살려는 사람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휠체어를 타고서라도 자신의 의지대로 사회활동을 하려는 자가 있어 활동범위가 넓은 반면 멀쩡한 두 다리를 두고서도 게으르고 안일한 사고방식으로 인해 문밖 출입도 귀찮아한다면 당연히 후자가 장애인이다.

위의 두 가지 공통점은 도덕적 장애가 진정한 장애이며 몸이 멀쩡해도 쓰지 못하면 그 또한 장애인이나 다름없는 점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병폐를 보면 비단 정치인 말고도 각 분야별로 도처에 장애인들의 단체가 우후죽순 격으로 설립되어 2차적인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장애라고 해서 무시해서도 안 되겠지만 장애가 벼슬은 아니다. 일부에 국한되겠지만 장애인 단체라는 명목으로 이권에 개입하고 머리 숫자로 정치권을 길들이며 명분 없는 집회의 앞자리를 차지해서도 안 된다.

배려를 권리로 안다고 했던가. 그런고로 복지사각지대에서 온종일 대책없이 죽지 못해 살고 있는 장애인들의 어려움까지 사회적 배려에 악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장애는 자랑도 아니고 벼슬도 아니다. 진정한 차별은 스스로 약자라고 여기는 잣대이며 복지를 동정으로 여기는 사고와 위축되어 활동반경을 넓히지 못하는 안일함이다.

어떤 주장이든 다수의 피해를 담보로 억지 쓰듯 밀어붙이는 것도 흔적이 누적되면 정작 받아야 할 복지혜택도 경계심을 갖게 마련이다.

오늘은 진정한 장애가 무엇이지 함께 공감해 주길 바라며 적어본다. 가장 먼저 자신에 대한 양심의 불편을 느끼지 않는 ‘도덕불감증’이다.

일명 ‘모럴해저드’라고 법과 제도적 허점을 이용해 개인의 책임을 소홀히 하거나 집단 이기주의로 변질되는 것을 말하는데 양심에 털이나면 이런 무감각 증세가 나타난다.

다음 사회적 기초단위인 가족에게 끼치는 민폐를 손꼽을 수 있다. 대가족 중심에서 핵가족화로 변화되는 과정에서 부모·자식은 물론 형제들까지 오로지 돈으로만 견주며 인격적 모멸감과 비하발언을 대수롭지 않게 주고받는 공동체 붕괴현상이다.

이는 인륜의 기본이 상실된 장애로 정부에서 아무리 막대한 예산을 퍼부어도 해결하지 못하는 사회적 장애다.

끝으로 남자가 나라 지키는 걸 당연시 하지 않고 여자가 아이 낳는 걸 희생으로 착각하는 판단부족 현상이다.

물론 일부에 국한되는 일이지만 사회 구성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마저 책임과 의무에 대한 자각이 없으니 사회적 구성원으로서 감각의 마비 증세라 볼 수 있다.

이 또한 돈이나 교육으로 해결될 수 없으니 국민 스스로가 깨우쳐야 할 대목이다. 덧붙이자면 ‘예절결핍증’이다.

어쩌다 위·아래가 없는 나라, 연륜과 경륜이 무시되고 일단 이기고 보는 세상, 훈계나 조언은 꼰대의 잔소리로 치부되고 나때는 어쩌고가 ‘라떼’로 통용되며 나이 먹으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는 충고에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이제 진정한 장애가 무엇인지 공감한다면 눈에 보이는 장애보다 보이지 않는 장애가 더 심각한 사회적 고질병임을 알게 된 것이다.

대안이 있다면 이미 지나간 일을 곱씹을 게 아니라 당장 내일부터라도 국민 모두가 스스로 양심장애, 인륜장애, 판단장애, 예절결핍증을 이겨내기 위한 재활운동을 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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