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 민주당 용인시장 예비후보(전 부산경찰청장) 직격 토로 “나는 왜 유력한 경찰청장 후보에서 낙마하게 됐는가?”
이상식 민주당 용인시장 예비후보(전 부산경찰청장) 직격 토로 “나는 왜 유력한 경찰청장 후보에서 낙마하게 됐는가?”
  • 정의진 기자 jeong2d@naver.com
  • 승인 2022.04.21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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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식 예비후보 “현기완 박근혜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과 우병우 민정(수석)비서관과의 마찰과 갈등이 경찰청장 승진 탈락 이유로 판단”
더불어민주당 용인시장 예비후보 

[경인매일=정의진 기자] 더불어민주당 용인시장 후보 공천을 놓고 이상식 전 부산경찰청장과 백군기 현 용인시장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이상식 민주당 용인시장 예비후보(전 부산경찰청장)가 박근혜 정부에서 유력한 경찰청장 후보였음에도 경찰청장에 발탁되지 못하고 오히려 만50세라는 젊은 나이에 부산경찰청장에서 조기 퇴진하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뒷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울분을 토했다.  

그는 경찰대학 5기 수석입학, 행정고시 34회 합격, 만39세 경찰서장, 만44세 경무관, 만47세 치안감, 만49세 치안정감(부산경찰청장) 등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였지만 당시 권력 실세들인 현기완 박근혜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과 우병우 민정(수석)비서관 등과의 마찰과 갈등이 있었고 이것이 경찰청장 승진에서 탈락한 이유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1. 경찰대학 5기 수석입학했는데 경찰대학에 지원한 동기는?

저는 경찰대학 5기에 수석입학했습니다. 전국 대학 어디든 다 갈 수 있었지만 가난한 농부의 차남에게 선택은 많지 않았습니다. 무학이었지만 개명된 아버지는 딸들에게도 공부를 시키고자 하는 부지런하고 현명한 분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공부 잘하고 붙임성 있는 저는 어디를 가더라도 밥벌이를 할 것으로 생각하고 보통 같았으면 저에게 몰빵했을 집안의 에너지를 딸들에게도 나눠주기로 한 것입니다.

2. 경찰대학 졸업 후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부산경찰청장(치안정감)까지 초고속 승진하고 유력한 경찰청장 후보였으나 낙마했는데?

경찰대학을 다니던 4년 내내 저는 강박 관념에 시달렸습니다. 훌륭한 동기들이지만 120명과 같이 한꺼번에 도매금으로 넘어가기는 싫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선택한 것이 高試였습니다.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 진학하고 제34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저의 출세 가도는 시작되었습니다. 

총경 승진 때 한번 브레이크가 걸린 것을 제외하고는 순풍에 돛을 단 격이었습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유력한 경찰총수(청장) 후보였습니다. 그러나 추석연휴가 끝나는 2016. 9. 22. 저는 갑자기 경찰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습니다. 어머니께 전화드리자 어머니는 짧게 한마디 하셨습니다. ‘그 사람들 참 매정한 사람들이네.’ 평생 남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 하신 적 없는 어머니의 이 한마디가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습니다.

나는 왜 유력한 경찰청장 후보에서 낙마했는가? 왜 나이 오십의 젊은 나이에 강제로 청춘을 바친 경찰복을 벗어야만 했는가? 사람들 중에는 조직을 떠나면서 섭섭하다거나 억울하다거나 더 나아가 탄압받았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미리 말해 두지만 저는 한 번도 공식적인 자리에서 제가 박근혜 정부에서 탄압을 받아 경찰을 그만두었다고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6명뿐인 치안정감까지 승진했으면 웬만큼은 올라갔고 마지막 단계인 경찰 총수는 그야말로 천운이 있어야 올라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 경우는 석연치 않은 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제 경우가 특별한 것은 당시 한 명은 총수가 되고 남은 5명의 치안정감 중 제가 경찰대학 기수가 가장 낮고 또 치안정감 임명도 늦은데도 불구하고 저보다 고참들은 남겨두고 저만 쏙 뽑혀서 내팽개쳐지듯 쫓겨났다는 것입니다. 당시 경찰조직 내부에서도 크게 술렁이었습니다. 제가 퇴임하는 날 한 경찰관은 ‘모시던 청장의 퇴임식에서 눈물이 난 것은 처음이다’고 했습니다. 나는 항의 차원에서 퇴임식도 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모시던 청장님을 합당한 방식으로 떠나보낼 수 있게 해달라는 직원들의 바램 마저 저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3. 현기완 박근혜 대통령 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의 인사 청탁을 거절한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왜 유력한 경찰총수 후보에서 갑자기 경찰을 그만두게 되었는가? 저는 팩트와 추측을 정확하게 구별하여 말하는 사람입니다. 사실과 주장은 분명하게 다릅니다. 저는 팩트를 먼저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 팩트들을 종합해 추측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팩트는 현기완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정무수석의 인사청탁 거부입니다. 2016년 5월경으로 기억됩니다. 부산청장으로 부임해 한참 왕성하게 활동할 시기였습니다. 상반기 정기 특진계획이 하달되었습니다. 승진은 경찰관의 사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공정이 생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청와대 정무수석 현기완이 치안비서관을 통하여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사하경찰서의 某 경위를 특진시키라는 청탁이 들어왔습니다. 저는 그 경찰관의 세평 등을 살펴보았는데 요건에 합당하지 않았습니다. 충분한 자격요건을 갖추지 않은 경찰관을 압력을 받아 승진시킨다면 그것은 조직에 크나큰 해악으로 작용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 요청을 거절해 버렸습니다.

4. 우병우 박근혜 대통령 비서실 민정비서관과도 마찰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두 번째 팩트는 우병우와의 언쟁입니다, 우병우는 지금까지 딱 한 번 만났습니다. 제가 경무관으로 승진해 정보심의관으로 있던 해의 가을 무렵인 2013년 11월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영월의 유지 한 분이 올라오셔서 우병우를 비롯, 영월지청장 출신 검사들 5명이 모인 자리에 저를 부른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는 가벼운 인사와 덕담만 하고 헤어졌습니다.

저는 그해 말에 치안감으로 승진해서 정보국장이 되었고 우병우도 얼마 지나지 않아 민정비서관으로 청와대에 들어왔습니다. 2014년 3월 말쯤으로 기억합니다. 저녁을 먹고 덕수궁 돌담길을 혼자서 산책하고 사무실로 복귀하려는데 우병우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그는 시작부터 시비조로 나왔습니다. ‘이 국장, 내가 청와대로 가면 가장 먼저 축하해줄 줄 알았는데 섭섭하오’ 그래서 저는 제가 불민해서 그렇다며 살짝 비껴갔습니다. 

(편집자 주: 우병우는 2015년 2월부터 2016년 10월까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으로 승진해 근무함)

그런데 웬걸 우병우는 대뜸 자기가 한가해서 안부 전화나 한 줄 아냐면서 본론을 꺼냈습니다. ‘경찰정보관이 서초동 검찰청사를 기웃거리고 기자브리핑에 참석하고 하는 이유가 뭐요? 내일부터 당장 중지시키시오!’ 저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첫째 경찰관직무집행법상에 치안정보 수집의 근거가 있고 도청이나 미행 등 불법수단에 의한 것이 아니므로 합법적인 정보활동이며, 둘째 그 전제하에서 대부분의 국가기관을 상대로 치안정보활동을 하는데 검찰만 예외가 될 수 없고, 셋째는 국장이라 하더라도 제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병우가 ‘지금 우리나라의 정보경찰은 정보수집의 근거가 미약하고 프라이버시의 침해 우려가 있으니 전반적으로 검토해서 국민권익이 침해되지 않도록 잘 조치하기 바랍니다’ 이렇게 이야기했다면 저는 수긍하고 바로 대책을 마련했을 것입니다.

참고로 저는 정보국장 출신이지만 지금처럼 정보국을 그대로 존치할 경우 정보기관화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으므로 정보수집 기능은 경무, 수사, 외사, 보안, 경비 등 경찰의 각 하위 조직으로 분산 배치하되 정보국 자체는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수사권 조정에 따라 경찰권 비대화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킬 조치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또 저는 현직 정보국장 당시에도 정치와의 유착을 견제하는 ‘정보관 행동강령’을 제정하여 지키도록 하였고 오래 근무해 기성 정치인들과 유착 우려가 제기되는 국회 출입 정보관 전원을 교체하기도 하는 등 개혁적인 면모를 보여왔습니다. 

아무튼 저는 우병우의 지시는 검찰 권력을 그나마 견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인 경찰 정보활동을 무력화시키는 조치로 잘못되었다고 보고 일종의 항명을 한 것입니다. 저는 상대방이 예의를 갖추고 조리 있게 이야기하면 경청하면서 공감하려고 노력합니다. 

우병우의 지시에 저는 차근차근 불가의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우병우는 저의 공손한 대꾸에 ‘그만두라면 그만두는 거지 왜 말이 많으신가?’라면서 거칠게 나왔습니다. 저도 상당히 거친 면이 있습니다. 경찰의 자존심도 걸린 문제이고요.

그래서 저도 같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경우를 Escalation이라고 하지요. 상황은 점점 꼬이고 악화되어 갔습니다. 그 와중에도 저는 한편으로는 수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씩 조금씩 달래서 겨우 전화를 끊었습니다. 다음날 이성한 당시 경찰청장에게 전후 사정을 보고했더니 청장은 ‘그 친구는 나한테도 그런 식으로 전화를 해’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렇게 틀어진 우병우와는 관계는 결국 마지막까지 회복되지 못하였습니다.

5. 결국 현기환 정무수석비서관과 우병우 민정비서관과의 마찰과 갈등이 경찰청장 승진에서 탈락한 이유로 생각하는지요?

이상의 2가지는 팩트입니다. 저는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제가 왜 경찰 총수가 되지 못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이상식은 권력층의 인사청탁도 거부하고 정부 실세와 언쟁할 만큼 소신 있고 강단 있는 인물이라 고분고분하게 권력의 입맛에 맞게 행동할 사람은 아니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현직 때는 제가 조금은 뻣뻣한 면이 있었습니다. 법을 집행하는 국가기관의 지휘관으로서 가지는 그러한 자부심과 결부되어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죠. 청와대를 장악한 검찰 세력은 마음대로 부려야 할 경찰이라는 도구를 자신들과 비교해서도 꿀리지 않는 소신 있고 강단 있는 ‘이상식 총수’에게 맡기고 싶지는 않았던 거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게 가장 큰 이유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전에 있었던 부산경찰청 학교 담당 경찰관 사건은 겉으로 내세우는 빌미에 불과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건마저도 제 개인의 비리는 아니고 2명의 남자 경찰관들이 여고생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사건이지만요.

저희 고등학교 선배 중 절친 형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경찰총수 된 사람들 만나보고 아깝게 낙마한 사람들 다 만나보니까 누가 총수가 될 줄 알겠더라. 상식이 너는 태생적으로 총수가 될 수는 없는 캐릭터다.’ 어느 정도 수긍되는 말입니다.

시간이 흘러 그해(2016년) 겨울 문재인 대통령후보 부산 공동선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을 때 해양수산부 장관이던 부산의 유기준 의원과 기차를 같이 타고 올라올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그는 먼저 말했습니다. ‘이 청장, 우리 정부가 이 청장에게 한 일은 잊어줬으면 좋겠다’ 저들도 뭔가 잘못했다고 생각하기는 하는 모양입니다. 화불단행...그해 겨울은 제 인생에서 가장 춥고 쓸쓸한 겨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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