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낳은 정보다 기른 정 입양의 날
[덕암 칼럼] 낳은 정보다 기른 정 입양의 날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2.05.11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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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세상이 아무리 빠르고 대단하게 변한다 해도 돈이나 과학으로 해결될 수 없는 게 종족보존이다.

신은 수컷에게 발정을 통한 종족번식의 과정에 쾌락이라는 본능을 심어 주었고 암컷의 수태 기능은 신이내린 선물이었다. 

모든 날짐승, 들짐승 물고기와 곤충이 그러했고 교미를 위해 목숨을 건 싸움이 있는가 하면 인간만이 성적 탐욕을 목적으로 전쟁도 일으키고 여성은 전리품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지구상 오랜 역사를 되짚어 봐도 그러한 일들은 시대변천과정에 늘 이어져온 변화의 순간들이었으며 군인이 영토 확장을 위해 목숨 건 전쟁터로 나가는 반면 여자는 아이도 낳고 남성의 뒷바라지를 하며 가정이라는 사회적 기초단위를 구성해왔다. 

이 과정에 피할 수 없는 게 임신과 출산이며 이는 인간뿐만 아니라 지구상 모든 동물들도 유사한 번식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유독 인간만이 성을 번식 외 목적으로 쾌락을 도구로 삼와 왔으며 팔고 사는 거래대상이기도 하고 결혼과 이혼이라는 과정을 거쳐 짝을 바꾸거나 삶을 영위하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낳은 자식을 짐스러워하는 현실에 도래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과거에 보물처럼 여기던 자식이 애물단지로 전락한 것은 시대적 흐름일까 자식에 대한 애정결핍일까. 

불과 수 십 년 전 까지만 해도 수 천 년 전부터 내려오던 자식사랑이 변함없는 본능이자 당연한 일들이었다. 

서 말 서대의 피와 여섯 말 여섯 대의 젖을 먹여 키웠다는 회심곡의 한 대목을 보더라도 어미와자식의 생물학적 관계는 가히 형연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였다. 

자연분만에 아가의 대변냄새만으로 어디가 아픈지 짐작했던 시절, 하얀 기저귀가 빨랫줄에 널리고 포대기로 업어 키우던 어미의 모습이 불과 수십 년 전 이었다. 

업혀 어미의 심장소리에 편히 잠들고 젖을 물고 어미의 숨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던 시절이 자라면서 먹이고 키우고 가르치는 부모의 사랑까지 이어지면서 아이는 부모에 대한 무한한 존경과 고마움에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했던 사회적 풍토가 당연한 것이었다. 

세월이 지난 비록 쭈그러진 피부와 축 늘어진 젖가슴은 자식을 키워오며 얻은 훈장이었고 그렇게 오남매 칠남매를 키워가며 온갖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우리네 어미들의 노력과 정성으로 지금의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인재들이 된 것이다. 

어미는 못 먹어도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모습에 행복했던 시절이 잘못된 것일까. 어쩌다 자식이 부모 재산에 눈이 멀고 부모는 쾌락의 부산물이 자식이 되어 제왕절개에 소젖을 먹이다 종이기저귀를 갈 때 코를 막아야하며 눈을 마주치고 말을 가르치던 아이들을 어린이 집에 보내야만 주부가 자기관리의 여지를 가질 수 있는 시대로 변했을까. 

멀찌감치 유모차가 없으면 아이와 외출이 불가하고 이혼과정에 짐이 되는 아이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남의 손에 키워지거나 조부모의 슬하에 어미사랑을 모르고 자라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을까. 

물론 모두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적어도 시대변화에 따른 자연스런 풍경이 그러했다는 것이다. 

전자에 어필했던 것처럼 나은 정의 깊이가 임신, 출산, 보육의 차이에서 시대가 흐를수록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고 당연한 것이 되었으며 때로 그나마 원치 않은 이유로 불임의 슬픔을 안고 사는 사람도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어느 어미가 자신의 뱃속에서 낳은 자식을 버리거나 남의 손에 넘기고 싶을까마는 삶을 영위하는 과정에 어미 품을 떠나야하는 아이의 입장은 아무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온 말이 낳은 정보다 키운 정이 무섭다는 말이다. 1987년 상영된 영화 “씨받이”의 주인공 고 강수연 배우가 56세를 일기로 지난 5월 7일 운명을 달리한 일이 있었다. 

한국 여인의 파란만장한 삶을 영화화한 씨받이는 전 세계적으로 척박한 환경을 알림과 동시에 양반가의 종족보존을 위한 방법과 당시 조선시대의 씨족사회 형성이 얼마나 여성들의 희생을 전제 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했다. 

어쩌면 당연한 듯 벌어지는 어미와 자식의 이별이 지금은 영아유기, 보육원, 미혼모의 포기 등으로 해마다 수많은 아이들이 방치내지 버려지고 있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통계청에 등록된 자료만 보더라도 그 수치는 누구나 알 수 있는데 1950년대 이후 약 20만 명이 해외로 입양됐고 매년 1천여 명의 입양 인이 가족 찾기에 나서고 있다. 

최근 5년간 가족 찾기를 지원한 입양인은 3천900여 명에 달하지만 이산가족의 원인조차 모른 채 살아온 이들의 핏줄 찾기는 여전한 숙제다. 

글로 표현하지 않겠지만 수많은 아가들이 어미의 얼굴도 채 익히지 못한 채 다른 부모의 손에 키워지는 운명, 특히 핏줄과는 무관한 외국으로 입양되는 사례가 상당했다. 

어쩌다 출세라도 해서 친부모를 찾는 경우가 종종 있기는 하지만 전체 통계에 비해 극히 일부분이고 대부분이 한국인의 피로 외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며 사는 경우가 되는 것이다. 

오늘은 제17회 입양의 날이다. 요즘처럼 살기 어렵다고 죽네 사네 하는 상황에서 자칫 내 아이가 남이 손에 자라는 일은 없어야 한다. 

물론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겠지만 낳은 자나 버려진 아이나 당초 임신의 원인인 아비까지 모두 가슴 에 못 박는 일이며 자연의 순리를 져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반면 키운 정이 무섭다는 말처럼 생물학적 관계가 없을 뿐이지 내 자식도 아닌 아이를 훌륭히 키워낸 부모들이 주변에는 얼마나 많을까. 

오늘만큼 이라도 키운 정으로 사람의 사랑을 실천한 부모들에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중히 고마움을 남긴다. 그리고 남의 자식이라고 편견을 가진 이들의 무책임한 한마디가 얼마나 큰 죄임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사람이 지은 어둠의 그림자를 동물들이 알 수 없게 해야 한다. 어쩌다 오리가 백조를 키운 것이 동화 화 된 것이지 일찍이 동물은 그런 행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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