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직필박해 곡필천벌 ‘기자의 날’
[덕암 칼럼] 직필박해 곡필천벌 ‘기자의 날’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2.05.26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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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기록할 기·놈 자, 한자 그대로 풀자면 기록하는 놈이다. 조선왕조 시절 왕의 일거수 일투족을 기록하는 사초가 지금의 대통령기록실이나 실록이 되는 사초의 업무와 같은 것인데 사실 그대로 적다보니 때로는 임금의 불편한 진실도 적어야하는 사명감으로 목숨까지 걸고 기록에 나섰다.

일부 사초들은 임금의 살벌한 어명에 밀려 마루 밑에 숨어서도 죽어라 있는 그대로 기록했다하니 지금의 기자들과 가히 비교되지 않을 수 없다.

현대사회의 구조를 보면 피라미드 형태를 볼 수 있는데 일반국민, 사회단체, 임의단체, 관변단체, 각 분야별 단체들이 점차 상층부를 향하는데 사회를 이끌어 가는 분야는 법을 정하는 입법, 정한 법으로 사회를 운영하는 행정, 투명하고 바른 사회를 지향하는 사법, 3개로 구분할 수 있다.

이 3개 기관은 이른바 공공의 직분이라는 공직이며 구성원은 공공의 업무를 보는 공무원으로 불린다. 당연히 공복인 만큼 세금 거둬 녹봉을 받으며 그 공적업무를 보는 공무에는 공권력이라는 권한도 실어준다.

하지만 3권은 각기 다른 기능과 역할을 하기에 분리되어야 함에도 권력은 입법과 행정부를 뒤섞어 뒤죽박죽으로 만드는 만행을 대대로 당연한 것처럼 이어오고 있다.

이쯤하고 3권 위에 관직에 없는 유일한 관이 있으니 언론기관이다. 구성원은 기자이며 관직이 아니니 ‘무관의 제왕’으로도 불린다.

여기서 제왕이란 왕다워야 하는데 어쩌다 기자가 쓰레기와 합성어인 기레기로 불리게 되었을까. 더 깊이 들어가면 언론도 급이 있다.

재정적, 전문성, 창간이나 개국 연도에 따른 데이터가 시간이 지날수록 쌓이는 것이며 그러한 정보력으로 가치를 매기게 되는데 중앙언론, 지방, 지역 순으로 나뉘어 독자가 시청자들에게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성스러운 업무를 맡게 되는 것이다.

언론도 사람이 하는 일 중 하나다 보니 실수나 오류도 있고 때로는 과오나 취재권의 남용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언론자체가 자신과 상관없는 남의 일에 간섭하고 지적하며 홍보하다보니 때로는 비난도 받고 억울한 사람도 만들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언론을 좋아할 사람은 없는 것이고 부패나 부조리에 대해 사법기관이나 온갖 분야에 읍소하다 안 돼 최종적으로 찾는 곳이 언론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온 말이 불가근 불가원인데 가까이도 멀리도하지 말라는 조언이다. 하지만 생선의 염기가 떨어지면 상하고 어둠을 방치하면 악마의 유혹이 난무하듯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한다는 자체가 악역을 맡아야 하는 처지이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식이든 자신이 종사하는 분야에 전적으로 최선을 다하다 보면 세월이 흐른 뒤에야 발자취를 볼 수 있다. 열심히 살았는지 해당 분야에 대해 미련없이 나름 최선을 다했는지 적어도 10년·20년 뒤에는 자타가 공인하는 결과치를 남길 수 있는 것이다.

필자가 1998년 지방일간지 기자로 기록에 종사한 지 23년, 돌아보면 아쉬움도 많지만 기레기 시대를 예고한 것은 2006년 쯤이었다.

‘일어탁수’라 했던가. 나름 사명감으로 갖고 사회정화에 성심껏 기사를 써온 기자들도 많겠지만 간혹 검증되지 못한 자들의 등장으로 언론은 도매금으로 치부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특권의식에 오만과 안일함으로 현실에 안주했던 날들이 쌓이면서 국민들과 공직사회로부터 차츰 신뢰를 잃어갔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기자들의 성역(?)은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SNS에 밀려 포털에 줄을 서야하는 처지로 전락했으며 신문은 물론 방송까지 정보제공의 통로역할을 못한 채 유가부수와 시청률 부풀리기에 급급한 사정으로 추락했다.

하지만 막대한 홍보예산은 그대로 집행되었고 유사한 제목의 헤드라인과 탑 뉴스는 다른 매체들임에도 같은 뉴스를 제공하는 편식 식단으로 고객의 이목을 끌지 못했다.

이미 지나간 일들이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지금도 앞으로도 같은 일들이 이어진다면 한국언론의 역사는 복사나 붙여넣기에 길들여진 채 후손들에게 뭐했느냐는 핀잔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돌이켜보면 기자들의 보도방향은 독자들의 주문에 달려있기도 하다. 건강에 해롭거나 말거나 고객의 입맛에 맞추려면 인공조미료를 잔뜩 넣어 짜고 맵게 만들어야 한다.

흥미위주의 제목과 말초신경이나 자극하는 내용, 공익보다는 남이야 어찌되든 재미로 볼 수 있는 내용들이어야 관심을 받게 되니 그렇게 쓰는 것이다.

어쩌다 지적 기사라도 쓸라치면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고 그것도 양이 안 차면 민사·형사 고소를 밥먹듯 하는 편식 정치인들도 한몫을 해 왔다.

당연히 성가시고 피곤하니 살아있는 기사보다는 보도 자료에 의존하여 보도사료를 받아 챙길 수 있는 것이다.

고양이는 쥐를 잡아먹는 본능을 잊지 않아야한다. 사료에 길들여진 고양이는 발톱도 길어지고 민첩함도 둔해지니 당연히 사료 없이는 못사는 것이고 결국에는 집집마다 쥐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필자가 약 10년간 닉네임을 ‘늑대개’로 사용한 적이 있는데 사방을 살펴봐도 주는 사료 먹고 꼬리치는 개판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자신의 새끼를 낳아도 온 사방으로 분양되고 원하는 길을 갈수도 없으며 주인의 기분에 따라 언제든 꼬리를 흔들며 먹이를 구하는 상황과 비교됐다.

이건 아니다 싶어 인터넷 뉴스를 개국하고 주간지 ·일간지 신문을 발행하는 사주가 되고서야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체감할 수 있었으며 직필이 가져오는 사람의 박해보다는 곡필로 인한 하늘의 천벌을 두려워할 수 있었다.

물론 역대 시장들마다 행정 광고 중단과 민·형사상 고소 등 수업료를 치렀지만 그렇다고 늑대를 자처한 필자가 허기지고 괴롭다고 사료를 입에 댈 수 없지 않은가.

수 천 건의 칼럼과 수 만 건의 기사를 쓰고 나서야 긴 세월의 투자가 헛되지 않았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지난 20일은 ‘기자의 날’이었다.

지금 상태라면 10년 후 기자는 존재감 자체가 없을 것이며 3권은 부패하고 국민은 제도권의 공익적 뉴스보다는 유튜버나 새로운 전파방식에 매달려 흥밋거리만 찾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회는 점차 공정과 상식을 잃어갈 것이며 후손들에게 남겨줄 유산도 없겠지만 사실에 근거할 기록도 없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언론은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야하고 그런 기자들에게 공익에 부합되는 뉴스를 주문하는 성숙한 국민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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