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문명의 일장일단
[덕암칼럼] 문명의 일장일단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2.06.16 08: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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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세상에 싸고 좋은 것은 없다. 하지만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얼마든지 이런 진리가 깨진다. 갈수록 빠르고 편하고 새로운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문명의 발달은 인터넷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상상을 초월한다.

이대로라면 문명의 발달에 인간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가 아니라 끌려가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대표적인 예로 현금이 사라졌다.

있어도 통용이 줄어들고 대부분 카드나 전자결제가 늘었다. 손에 만져보지도 못하고 온라인 계좌이체로 충분히 결제가 가능하며 심지어 축의금과 부의금도 계좌로 주고받으니 이제 가족간의 용돈도 생색 한번 못내고 고맙다는 말도 못들은 채 계좌로 ‘쏴’주는 게 당연시 되고 있다.

모든 인간관계는 카톡이나 문자메시지로 안부를 주고받으며 심지어 명절연휴 고향 대신 관광지로 떠나며 인사는 이미지로 대체한다. 과연 제대로 사는 사회일까.

편리한 것이라며 정작 무엇을 잃어버렸는지조차 알 수 없는 어둠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도덕의 블랙홀이다. 도덕만 잃어버렸을까. 얼마전 모 언론매체에 미성년자 성매매에 대한 뉴스가 올라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일이기도 하고 어제 오늘 사건화된 일이 아니다. 온라인상에 잠잘 곳을 찾는다는 여학생의 글이 올라오자 일순간 수백 명의 고객(?)들이 몰리며 마치 밀림에 버려진 토끼 한 마리에 수십 마리의 늑대들이 침을 흘리는 형상이다.

공급에 비해 수요가 폭주하니 당연히 단가가 오르는 것이고 변태적인 본능은 곧 금전으로 환산되어 경제적 사각지대에 내몰린 미성년자들의 탈출구가 되는 것이다.

물론 드러나지 않은 성매매의 그늘까지 고려하면 현재 한국의 성 문제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전면 재검토되어야 할 시급한 숙제다.

미성년자가 성매매로 내몰리는 이유는 경제적인 것도 있지만 아직 성에 대한 인식이나 정체성을 파악하기도 전에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다양한 방법의 유혹앞에 보호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린당한 성은 인격적 자학으로 이어지고 이성에 대한 경외심에서 적대감으로 변질한 반사회적 감정을 품는 원인이 된다. 이러고도 국가의 미래를 미사여구로 표현하는 현 세대의 정치인들은 훗날 늙어서 어떤 질책을 받게 될까.

얼핏보면 지금의 아이들이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것 같으나 일부에 국한된 것이며 적잖은 아이들이 열악한 환경속에서 성장하여 성인이 된다.

안전하고 반듯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에서도 가능할지 장담할 수 없는 아이들이 그릇된 성문화의 희생양이 된후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정상이길 바란다면 욕심이다.

인간의 편리함에 대한 욕심 또한 끝이 없다. 코로나19로 자리잡은 거리두기는 배달의 만연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형성했다.

어떤 음식이든 앱만 설치하면 자신의 지출을 전제로 쌓이는 마일리지에 단골이 되는 아둔함을 보이기도 하고 골라먹는 재미로 온갖 배달음식을 쇼핑하는가하면 일부 진상고객들은 후기를 전제로 트집을 잡기도 하며 자영업자들의 등골을 빼먹는 경우도 허다하다.

차츰 자리잡은 배달문화는 이제 가정주부의 자리까지 점령했다. 쌀 씻어 밥 짓고 도마위에 식재료 썰던 칼질소리는 들을 수 없게 됐다.

대신 배달의 민족이 초인종을 누르면 카드로 결제하면 되는 세상이 됐다. 이 또한 문명의 폐단이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인간의 안일함에 일조하는 소재가 됐다.

돈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다보니 돈을 버는 수단과 방법이 갈수록 교묘해졌다. 대표적인 예가 보이스피싱인데 갈수록 조직화, 전문화, 현실화 되어 범죄유형을 수사과정이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서버가 제3국에 있어 국제범죄수사의 공조가 필요하다는 핑계는 이제 식상하다. 당한사람만 바보 되는 세상이라면 경찰의 존재가치는 갈수록 국민적 신뢰를 잃게 되는 것이며 한번 잃은 신뢰는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오죽하면 사이버수사대가 창설되어 일선 경찰서마다 부서가 생겨났으며 전문직을 배치했지만 범죄자들의 뒷북만 치는 게 현실이다.

더하자면 불과 20년 전만 해도 내비게이션이 희귀한 시대였다. 운전자들이 차를 세우고 길을 물어보던 시절,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도로가 생겨나고 고속도로 톨게이트는 요금을 계산하느라 길게 줄을 서던 시절이 분명 있었고 불과 20년 전이었다.

하지만 현재 모든 차량은 과거 항공기에서나 봄직한 인공위성의 혜택을 누리고 있으며 통신, 정보, 교통, 금융, 심지어 자율주행모드까지 스마트폰 하나로 운전의 편익을 한껏 누리고 있다.

톨게이트는 하이패스가 장착되어 충전만 하면 되고 차량 번호판의 인식은 요금뿐만 아니라 과속, 주정차 위반, 범죄차량검거, 세금체납 차량 수배에도 적용되어 문명의 이기에 지배 당하는 현실에 봉착했다.

위에서 나열한 몇 가지만 보더라도 문명의 장·단점을 충분히 체감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사회가 문명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면 어떤 정책이 필요할까. 처음부터 검증없이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여 화를 자초한 것이다.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이 대립각을 세울 때 대표적인 이유가 쇄국정책이었다. 우리 것을 중히 여기는 섭정의 배후 이하응과 일본의 외국문물을 받아들이려는 고종의 엄처시하 민자영이 한판 붙으면서 조선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이때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이 협치하여 소통의 묘미를 갖췄더라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전세계를 주도하는 국가로 성장했을지도 모른다.

문명이란 칼과 같아서 잘 쓰면 주방의 도구요, 잘못 쓰면 사람을 해치는 흉기가 될 수 있다. 편리함이 지나치면 나태가 되고 속도가 지나쳐 달리기만 하면 앞은 보지만 옆을 볼 수 없다.

마치 말의 안면에 눈만 남기고 가린 후 달리게 하는 것과 같아서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좀 천천히 가자. 문명이 운명을 좌지우지 하는 세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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