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대한민국 무형의 자산
[덕암칼럼] 대한민국 무형의 자산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2.06.17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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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전세계를 다 뒤져도 나이가 계급이자 벼슬인 나라는 드물다. 동양은 그나마 덜한 편이지만 서양으로 갈수록 위·아래 없이 돈이나 사회적 신분 또는 성직자나 되어야 대우 받는다.

인간은 동물과 달라 힘으로 우위를 가리기보다 무언의 합의를 통해 위·아래를 설정하고 체계적인 서열을 갖춰 조직적으로 행동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만인이 평등하다고는 하나 현실적으로는 집안에서 부모, 직장에서 상사, 군대에서 고참, 하다못해 폭력배들도 위·아래가 있어 윗사람은 대우 받고 아랫사람은 숙이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암묵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나이다. 어떤 만남이든 몇 살인지를 확인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형님이나 언니·누나 내지 오빠관계가 설정되고 일명 말을 낮추며 인간관계가 시작된다.

꼭 친한 사이가 아니더라도 시비가 걸리거나 대립각을 세우다 보면 흔히 하는 말이 몇 살인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나온 말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어디서” 또는 “나이도 어린것이”라는 말이 앞머리에 붙는 것이다.

지금이야 안 먹히는 말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이가 계급인 사회가 분명 존재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이를 앞세우면 꼰대, 구시대적 유물 정도로 치부되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취급받는 시대가 됐다.

대표적인 예가 담배였다. 불과 40년 전만 해도 열차나 버스 좌석 뒷면에 재떨이가 부착되어 차내 흡연이 당연한 시대가 있었다.

학교 선·후배나 좀 연배가 있다싶으면 담배를 피우다가도 손안으로 감추거나 끄는 예를 갖추며, 특히 머리가 백발인 노인이 있는 곳이면 누구든지 함부로 욕이나 행동을 하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당연했었다.

하지만 교복 입은 남·여학생이 할아버지 같은 연배의 어른 앞에서 담배를 꼬나물고 째려보기까지 변화된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심지어 형편이 어려운 노인이 몇 푼의 돈을 받고 학생들 담배 심부름을 하는 일명 담배셔틀의 경우도 있으니 실제 학생들의 흡연율이 세계최고를 기록하는 것은 공급 통로가 충분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나마 아직 부모앞에 담배 물고 다닐 정도는 아니지만 무식한 일본만 보더라도 그러한 예의를 찾아보기 어렵다.

반면 여성위주의 정책, 여성편의를 위한 가전제품, 화장품, 의류, 유행, 시청률만 높일 수 있다면 방송내용이 어떤 사회적 피해를 끼치더라도 통과되어 안방극장의 주인공인 주부들에게 새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한국사회의 전통적인 현모양처의 처사는 제쳐두고 멀쩡하던 사람도 분노로 현실을 박차고 나가는 반항심을 키우는 프로그램들이 아무런 심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반사회적 분위기를 부추긴다.

시청 가치보다는 흥미위주의 먹방이나 해학보다는 억지웃음을 강요하는 코미디 프로부터 일본의 프로그램 베끼기에 주저하지 않고 국민들의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어쨌거나 자승자박의 길을 걷던 방송국은 나름 시청자들로부터 외면 받는 애물단지로 전락했고 “요즘 누가 텔레비전 보나”라는 현주소에 봉착했다.

이제 한국사회에서 위·아래는 사라졌다. 시어머니가 “나 때는 말이야…”이라는 말을 앞에 붙였다가 무식하다는 말로 치부되며 ‘라떼’라는 말도 못 붙이는 시대가 됐다.

이 또한 서양에서 검증없이 한국사회에 정착한 ‘싸가지 없는’문화이며 언제부턴가 우리 민족만의 장점인 예의가 실종됐다.

대신 매너라는 영어가 자리 잡으면서 사소한 생활까지 법의 잣대가 지배하는 세상이 됐다. 걸핏하면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되고 국민들끼리 서로 신고하고 사소한 시비도 법대로 하는 인내의 부재를 경험하게 됐다.

상대방을 눌러야 내가 당위성을 갖게 되고 우위에 설 수 있으며 양보나 배려보다는 이기적인 사회적 풍토가 당연시 되어 버렸다.

지금같은 속도로 사회가 각박해진다면 적어도 10년 이내 돈이나 힘이 지배하는 현상이 당연해질 것이고 상대방이야 죽든 말든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으며 힘없는 노인들이 폐지수집구역을 두고 쟁탈전을 벌여야 하는 삶의 전쟁터로 변할 것이다.

국민연금은 고갈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잇따르고 물가 대비 줄어든 연금에 현실적인 생활이 궁핍하더라도 버려지는 폐지조차 없는 시대가 우려됨은 지금까지 변해온 과정을 고려할 때 결코 간과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늙은이가 아니라 늙은이도 한때는 젊을 때가 있었으니 이 단순한 사실을 먼 나라 이야기 처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자라나는 젊은이들의 현실이다.

그러한 현상은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한마디로 노인이 대우를 받기에는 각박해진 것이다. 시대가 변하면 적응하는 게 맞지만 대우는 못 받더라도 학대는 받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하기에 오늘의 주제로 삼아보았다.

지난 15일은 ‘노인학대예방의 날’이었다. 필자가 그동안 취재 경험을 통해 체험한 노인들의 세계는 단순하다.

대부분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고 과거에 대한 회상과 벗들과의 대화가 낙이었다. 한때 날고 기는 무용담을 늘어놓고 지갑 사정은 대동소이했다.

나이 먹으면 입은 다물고 지갑은 열라했던가. 자꾸 나서봐야 좋은 소리 못 들으니 조용히 밥이나 사란 뜻이다.

밥살 돈도 없으면 조용히 찌그러져 있으란 뜻인데 지금 상태로 점차 설자리를 잃는다면 현재의 청년층이나 중년층들이 노년층으로 자리잡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어쩔 것인가. 과속으로 달리는 시대적 변화에 제동을 걸어 우리 한민족만의 장점인 위·아래를 다시 설정하고 윗사람다운 존엄과 아랫사람다운 예의를 찾자한다면 이 또한 꼰대일까.

늦지 않았다. 구태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요양원이 늙은 부모의 노치원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더 늦기 전에 노인들이 자식으로부터 버림받는 사회, 부양할 자식조차 없거나 있어도 외면하는 도덕실종의 사회적 분위기를 개선해야 한다.

사람이 먼저라 하지 않았던가. 쓸데없이 예산 낭비하는 부서를 폐지하고 효도청을 신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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