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고자질과 공익신고
[덕암칼럼] 고자질과 공익신고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2.06.27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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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남의 허물이나 비밀을 일러바치는 것을 ‘고자질’이라 하고 ‘공익 신고’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 환경, 소비자 이익과 공정한 경쟁을 침해하는 행위를 소관기관에 신고하는 것을 말한다.

이 두 가지의 공통점은 누군가 신고자가 있어야 하며 신고 내용 또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상대적으로 누군가는 관련법에 의거 처벌을 받는다는 것이차이점이다.

오래 전 필자가 국민학교, 그러니까 지금의 초등학교 재학시절 수업 시간에 교실에서 떠든 사람의 이름을 칠판에 적어 담임선생님한테 혼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청소 안 한 학생, 심지어 등록금 미납 학생의 이름까지 공공연히 적어둠으로써 해당 학생의 수치심이나 굴욕감을 담보로 모종의 결실을 얻던 시절이었다.

이때 고자질하는 반장이나 별것도 아닌 것을 굳이 일러바치는 학생들을 얍삽하다고 표현하며 남자는 남자답지 못하다 했고 여자는 입이 싸다며 핀잔을 주었다.

뿐일까. 학생들간에 다툼은 또래 아이들의 사춘기에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맞짱을 뜨는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었고 서로 쌍코피가 나도록 싸워도 수돗가에서 씻는 동안 누가 먼저 웃느냐에 따라 함께 웃으며 풀리던 시절도 있었다.

세월이 훌쩍 지나 어느 날부터 교실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가 일러바치기 경쟁이라도 하듯 스마트폰을 통해 할 소리 안 할 소리 구분없이 정보의 공유(?)로 비밀이 없는 세상이 됐다.

학원폭력이라는 명칭이 대세를 이루고 나니 때리는 시늉만 해도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어 일명 문제아로 찍힐 수 있다. 지나치게 민감한 경계심, 사소한 일도 무조건 신고하고 보는 고자질 문화가 과연 현세대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얼마 전 11살짜리 초등학생 딸이 30대 아버지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며 직접 지구대를 찾아 신고한 사례가 있었다. 아버지는 등교 시간이 되어도 씻지도 않는 아이의 머리를 때렸고 아이는 아동학대라며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당연히 신고자가 있으니 형사처벌의 과정을 밟아야 할 것이고 이제 부녀간의 사이는 불보듯 뻔한 일이다.

심지어 군부대 내에서 아침 점호와 구보가 왜 필요하냐며 이의를 제기하고 이에 동의하는 군인들이 상당수 나타나는 것은 이미 의견 제시의 선을 넘어 본분을 저버리는 것과 같은 맥락을 보였다.

학교 내의 사소한 고자질에도 사생결단이 날 것처럼 난리를 치는 일도 흔해졌다. 과거 개구리 잡아서 튀겨먹던 시절이 있었지만 반찬에서 개구리가 나왔다고 급식업체의 수사는 물론 전국 급식시설에 초비상이 걸렸다.

새우깡에서 나오지도 않은 쥐머리가 나왔다고 언론에 보도되자 유명한 새우깡의 명성은 하루아침에 회복될 수 없는 추락을 거듭했다.

뿐일까. 우리 사회에서 일러바치기의 흥행은 서로 불신을 초래하고 서로가 경계하며 의심하고 분노와 복수의 복마전을 거듭하게 된다. 이같은 심리를 적절히 악용한 것이 코로나19가 성행할 때 거리두기에 대한 코파라치의 성행이었다.

담당 공무원이 현장을 방문하거나 단속을 통해 방역지침을 관리했어야 하는데 이를 국민들간에 서로 신고하도록 만들어 놓고 정작 담당자들은 책상머리에 앉아 게임이나 즐기는 사례가 한두 번 적발된 것이 아니었다.

이른바 민민 갈등을 부추겨 안일한 공직영역을 지키고 정작 서로 믿고 함께 사는 사회는 말뿐인 구호였다.

국민들간에 신고하는 분위기가 정착되자 이제 새로운 문화가 생겨났다. 바로 교통법규 위반에 대한 신고가 성행하면서 그 범위나 방법이 천태만상으로 달라졌다.

지난 2021년 한 해 동안 전국에서 접수된 도로교통법 위반신고가 총 290만 7,254건으로 2018년 104만 건에 비해 역대 최대치를 나타냈다.

그 전년도와 비교하면 약 36.5만 건이 늘었고 올해는 300만 건 돌파가 확실하다는 예측이다. 포상금이 없더라도 이러한 신고 커뮤니티는 인증샷까지 남기며 보란듯이 증가하고 있다.

블랙박스에 우연히 찍힌 게 아니라 마치 사냥하듯 표적이 될 만한 소지가 보이면 사전에 준비했다가 촬영이 끝나자마자 한건 했다는 성취감과 희열까지 느낀다는 소감이 뒤따른다.

응답자의 적지 않은 이들이 신고를 통해 대리 만족을 하고 참교육을 통해 쾌감을 느낀 경험을 공유하면서 유행처럼 번진 것이다.

게임이나 골프처럼 그냥 재미로 하는가 하면 국고도 쌓이고 도로가 깨끗해지는데 이것만큼 건전하고 유익한 취미가 없다는 반응이다.

대부분 당한 사람들이 보복심리로 하루에도 여러 건씩 습관적으로 신고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당한 사람이 다시 신고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전문가의 조언을 들어보면 법을 어긴 사람이 마땅히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신고를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내 힘으로 타인을 벌 줬다는 일종의 권력 우위에서 오는 만족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신고를 당한 이들은 감시 받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독자분들은 간혹 집으로 날아오는 범칙금 고지서를 보고 어떤 마음이 들까. 반성일까, 아니면 과속단속 방지 카메라에 찍혀서 아차일까, 누군가의 신고라면 대체 어떤 미친X이란 생각이 들까.

불과 20년 전만 해도 단속 경찰들이 고속도로 위에 차선 안으로 뛰어다니며 스피드건을 들고 과속차량에 대해 정지신호를 보내던 시절이 있었다.

만 원 짜리 한 장이면 적당히 넘어가기도 했고 맞은편 차량들은 라이트를 상향으로 깜빡거리며 경찰 단속에 대한 신호를 주고받는 공감대도 형성됐다.

시대의 변화일까, 아니면 일제강점기 마지막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가 조선을 떠나며 남겼다는 “한국인이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역사를 되찾으려면 100년의 세월이 걸릴 것이고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 맞아 떨어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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