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어쩌다 개판이
[덕암칼럼] 어쩌다 개판이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2.07.18 08:3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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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바둑이, 누렁이, 멍멍이, ×개, 순수한 한국 반려견들의 명칭이다.

개별적 이름은 다르지만, 필자 또한 소년기부터 개를 키워본 장본인으로서 각별한 애정을 품고 있었다. 사실 강아지를 싫어할 사람은 드물다. 특히 한국 토종개는 주인을 따르는 충성심은 물론 다정다감함과 곰살맞은 애교까지 있어 늘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머문 바 있다.

기껏해야 동네 어귀 정도가 활동영역이지만 하교 시간이면 어김없이 마중을 나온 기억이 엊그제 같다. 반면 푸들, 치와와, 핏불테리어, 말티즈, 리트리버 등 종자 종류만 해도 수십 종에 매체마다 개별적인 이름까지 붙이니 대한민국은 빠른 속도로 대한견국을 향하고 있다.

그렇게 볼 수밖에 없는 것이 자신을 낳고 정성껏 길러주신 부모는 요양원에 입양시킨 후 이따금 찾아보거나 아예 찾지도 않지만, 집에서 키우는 애완견은 애지중지하며 안고 다니거나 유모차에 태워 끌고 다니기도 한다.

이따금 적색 신호등에 횡단보도를 지켜보노라면 사람 5명에 1명 정도는 개를 안고 건넌다. 보도블록에서 공원에서 사람이 사는 어떤 곳이든 애완견은 이제 가족이나 다름없는 위치에 올랐다. 하지만 함께 다니는 개들의 종자는 100% 외래종이지 토종개는 없다. 언제부턴가 조용히 사라졌다.

물론 진돗개나 특수견은 다르지만, 일반 ×개의 개체수를 보자면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맛있는 점심의 맛점, 영혼까지 끌어 당긴다는 영끌, 현금을 지른다는 현질, 우리말을 쪼개고 뒤집고 줄여서 엉망으로 만들고도 모자라 우리 토종 ×개까지 점차 멸종위기로 가고 있다.

한때 식용으로 도축되어 재래시장의 한쪽을 차지하던 보신탕도 이제는 동물보호나 혐오식품으로 단정되어 찾아보기가 어렵다. 한국 토종 ×개. 불과 50년 전 한국 개가 차지하는 비중은 식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반면 외래종의 애완견을 키우는 반려견 인구는 1,500만 명을 넘어섰다. 애완견 관련 상품이나 콘텐츠를 보면 애견 방송, 애견의상, 애견 운동회, 애견 카페는 물론 애견 가전제품, 목욕용품, 미용실, 호텔, 병원, 장례식장까지 인간과 거의 비등하거나 더 훌륭한 시설과 인프라가 형성되어 있다.

이쯤되자 정치권에서 손을 내밀기 시작한다. 애견 공원 설치와 애견 쉼터, 24시간 진료가 가능한 애견 전문병원을 세우겠다거나 다양한 조건들을 내세우며 개를 위한 것인지 사람을 위한 것인지 어쨌거나 가려운 곳을 긁어 표를 얻겠다는 공약을 남발한다.

좀 더 가면 개의 견권을 존중하는 개정 법안이 나오지 말란 법 없다. 이쯤되면 개가 말을 알아듣지 못한 탓에 그럴 일은 없겠지만 후보들은 개한테 매달려 “너희 주인한테 한 표 주라고 부탁해”하는 선거홍보전도 생각해 봄직하다.

그래서인가 지난 7월 3일 전북 전주에서는 반려동물 전용 공공놀이터가 문을 열었다. 축구경기장 크기와 맞먹는 7천㎡의 넓이에 놀이터, 관리실, 견주들의 쉼터까지 마련됐다. 아무리 애완견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다지만 개와 사람의 구분도 없거나 개가 사람보다 우월적 위치에 있다면 이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개가 시원한 에어컨 냉방장치가 잘 되어있는 차량 안에서 폭염 속에 폐지를 주워야 밥이라도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을 바라본다. 편의점 앞 탁자에서 개는 예방주사에 고급 사료를 먹으며 아무 데나 대·소변을 싸도 주인이 따라다니며 치워주지만, 결식아동이 컵라면 먹고 나서 뒷정리를 하지 않으면 야단을 맞는다.

다 좋다. 귀엽고 예쁘다 보면 그럴 수 있고 애완견이 견주에게 주는 기쁨이나 사람에게 뒷박 맞고 불신하는 대리만족의 수단이 된다면 얼마든지 정성을 다해 키울 수 있다. 다만 개 키우는 정성의 절반이라도 부모에게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싶은 마음에 죄 없는 개를 죄견으로 만들었다.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할 것은 하되 선행되어야할 게 개보다 부모라는 것이다. 필자 또한 외래종인 킹 찰스 스패니엘과 순수 한국 ×개를 키우고 있지만 적어도 개 보다는 부모가 우선이다.

당연한 말이고 비교할 게 따로 있다고 하겠지만 필자는 출생부터 지금까지 늘 당신의 생명처럼 여겨오신 부모와 귀여움 하나로 키우는 개를 어찌 비교하겠는가. 연세가 들어 연로하신 부모에게는 행방을 위한 아무런 조치도 안 하면서 두 마리의 개는 분실을 염려하여 칩을 심어놨으니 누가 누굴 뭐라 할 처지도 못 된다.

개가 아무리 귀엽고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힐링의 수단이라 해도 개는 개일 뿐이다. 동물을 학대해서도 안 되겠지만 한번 친해진 동물은 개든 고양이든 종신토록 책임을 져야 할 것이며, 천 마리의 동물보다 한 분뿐인 부모를 모시는 게 사람의 도리 중 으뜸이다.

개한테 쏟는 정성의 절반만 사람한테 쏟는다면 사람이 사람을 낳아 인구소멸의 위기를 면할 것이다. 아무리 예쁘고 살가워도 개가 사람을 낳지는 않는다. 그러니 예쁨과 대를 이음은 전혀 다르다. 특히 독신 여성들의 애완견 집착은 남성들에 대한 상대적 경계심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라는 전문가의 전언이있다.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적절한 동물 사랑은 공생의 묘미를 살릴 수 있지만 과도한 집착은 자칫 사람이 개를 키우는 게 아니라 개가 사람을 거느리고 사는 세상이 된다.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개들 간에는 “요즘 사람들이 우리 모시는 게 시원찮아”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 같다.

어쩌다 산책길에서 애완견들의 위치를 보면 사람보다 앞서 있다. 하루 1시간 산책에 미용 1시간, 같이 놀아주며 웃는 시간 1시간, 그러나 부모는 애완견에게 할애하는 3시간이 아니라 3분이라도 전화 너머 음성을 듣고 싶어 하신다. 먼저 간 선친들이 나중 온 사자에게 묻는다. “요즘 거기 개판이라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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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타 2022-07-19 17:59:24
뭐라고 글을 싸질러놓은거야 쌍8년도 마인드로 ㅋㅋㅋ 회장이 이 수준이니 그 언론사 수준도 알만하다 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