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진정한 희생이란
[덕암칼럼] 진정한 희생이란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2.07.27 08: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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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덕암 칼럼 독자 분들은 희생의 기준을 어디에 두실까.

부모가 자식을 위해 온몸과 마음을 바치는 희생, 전우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던진 故 강재구 소령의 희생, 아니면 눈먼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삼백 섬에 팔려 인당수에 몸을 던진 효녀 심청의 희생.

희생이란 그 어떤 대가도 전제 되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를 계산 없고 아낌없이 주는 것을 뜻한다. 남을 위해 목숨이나 재물, 또는 권리를 포기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며 때와 장소가 있는 것이다.

오늘은 69년 전 동족상잔의 총성이 멎은 날이다. 1950년 6월 25일 시작된 남북간의 전쟁은 3년 1개월 2일 동안 유엔군과 중공군의 개입으로 자리를 지켜야 했던 한국인들만 곤욕을 치렀다. 차라리 남북한만 싸웠더라면 누가 이기든 지든 막대한 인명피해는 줄었을 것이다. 물론 당시의 군사력을 보면 북한이 유리했지만, 중공군의 개입은 지금도 한반도 역사의 이변으로 남아있다.

오늘은 6·25전쟁의 휴전일이자 유엔군 참전의 날이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기점으로 총 21개국 195만 명이 참전했고 남북간의 밀고 당기는 전쟁으로 한반도는 살육의 도가니였다.

어렵사리 휴전이 체결된 이날을 미국에서는 한국전 참전용사의 날로 정하고 캐나다에서도 한국전 참전 기념일로 정했다. 정작 당사국인 한국에서는 지난 2013년 국회를 통과해 유엔군 창설의 날로 정했으니 전쟁 발발 60년 만의 일이다.

내 나라를 내가 지키는 것은 당연한 것이나 남의 나라까지 지켜주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남의 신세를 지고도 너무 오랜 시간 잘 먹고 잘 살며 망각해 온 것이다. 보다 실감나는 예를 들어보자. 가장 먼저 각자의 침실에서 시작된 나와 외부의 관계가 일차적 방어선이다.

학생들은 공부방, 부모들은 안방에서 각자의 사생활이 있는 것이며 이는 가족이라도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 마지노선이다. 성장한 자녀의 방을 들어갈 때도 노크하는 것이 예의다. 불쑥 열어본다면 무식한 부모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다음 외부인이 집안에 침범할 때인데, 이때 가장이 가족을 버리고 일신의 안녕을 구하기 위해 먼저 피할까. 아니면 강도를 상대로 목숨 걸고 막아낼까. 당연히 후자일 것이다. 이걸 희생이라고 할 수야 없겠지만 가족이라는 테두리 내에서 방어를 위한 공격까지도 감행해야 한다. 바깥으로 나가면 학교에서는 같은 반이 우선이고 군대에서는 소속 부대원이 아군이다.

스포츠에서도 같은 팀의 조화가 더 중요하며 범위를 확대하여 전쟁이 난다면 일상에서 벗어나 총을 들어야 하는 것이 유사시의 자세여야 한다. 그렇다면 자국의 일도 아니고 남의 나라 전쟁에 굳이 목숨 걸고 싸워야 한다면 이야말로 진정한 희생이 아닐까.

하나뿐인 자신의 생명을 걸고 산도 물도 낯선 타국에서 생전 겪어 보지도 못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며 사선을 넘나들던 유엔군의 희생이야말로 한국인이 제대로 신세를 진 것인데 화장실 갈 때와 올 때가 이리 다를까. 물론 대한민국도 베트남 전쟁이나 기타 제3국의 전쟁에 의료지원으로 출병할 때가 있었지만 6·25전쟁처럼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오늘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유엔군의 참전국가중 뉴질랜드의 지원 배경을 짚고 가보려 한다. 뉴질랜드는 한국에서 항공편으로 11시간 남짓 걸리는 호주 아래의 섬 나라다. 오클랜드와 웰링턴이 있는 북섬과 크라이스트처치가 있는 남섬으로 구분되는데 한국전쟁 당시 전체 8,000명의 군인 중 5,350명을 파병한 국가다.

중요한건 전쟁 발발 소식에 가장 먼저 나섰다는 점이며, 사계절 내내 여름만 알고 있는 뉴질랜드 청년들은 추운 날씨에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참전했던 파병 군인들 중 살아남은 노병들 대부분이 90살을 넘기고 있다.

참전으로 인한 뉴질랜드 전사자는 45명, 이중 34명의 유해가 부산 유엔기념 공원에 안장되어 있다. 뒤늦게나마 뉴질랜드 한인사회에서 이를 기념하기 위한 기념비 및 기념관 건립이 추진되어 관심을 끌고 있다. 참전 당시의 고증과 생존자 지원, 후손들로서 할 수 있는 과업이자 숙제였다.

현재 뉴질랜드 오클랜드 한인사회는 약 25,000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들 중 뜻을 가진 한인들이 지난 5월 14일 오클랜드 한인문화회관에서 참전용사들과 교민 약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관 건립의 첫삽을 떴다.

6·25전쟁 참전 용사들 5,000명 모두의 이름이 새겨진 기념비는 향후 한인들이 뉴질랜드 국민들과 우정을 재확인하는 발판이 될 것이며, 후손들에게도 전쟁의 참상을 알리고 평화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게 하는 산 교육장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23년 11월 완공을 목표로 추진되는 이 사업은 뉴질랜드 전역에 조그만 비석 5개가 전부인 점을 고려한다면 진작 추진되었어야 할 남은 자들의 숙제였다.

실제로 지난 2019년 5월 2일에는 호주 멜버른에서 17,000명의 참전용사를 기념하는 참전 기념비가 세워졌고 미국 오렌지 카운티에서도 2021년 11월 11일 36,591명의 미군 참전용사들을 기념하는 비가 세워진 바 있다.

뉴질랜드 참전 기념비를 추진하는 조요섭 오클랜드 한인회장이 지난 18일 필자가 설립한 대한생활체육회를 내방했다. 재외 동포 뉴질랜드 생활체육회장 임명장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이 사연은 이제 적극적인 후원과 협찬에 나설 대한민국 정부의 관계부처와 국내 기업의 뉴질랜드 진출에 교두보를 확보할 홍보전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기대된다.

진정한 희생이란 생색조차 내지 않는 것이 당연하지만 적어도 신세를 진 사람 입장에서 최소한의 도리는 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도 엄동설한에 시린 손을 불어가며 방아쇠를 당긴 뉴질랜드 청년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들은 하나뿐인 생명을 담보로 현재의 대한민국을 지킨 희생을 치른 분들이다. 오늘 만큼이라도 유엔군 묘지에 흰 국화 한 송이라도 올려놓을 수 있는 국민이 되어주자. 지금의 모든 호의호식이 저절로 얻어진 게 아님을 알고나 살자. 백언이 불여일행이라.

부산 유엔공원이라고 내비게이션에 입력을 해본다. 거리가 꽤 된다. 그래도 뉴질랜드만큼이나 멀지 않으니 시동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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