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90분짜리 애국자
[덕암칼럼] 90분짜리 애국자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2.08.10 0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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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한국인들이 지역감정으로 정치적 벽을 타고 넘지 못하거나 계층 간의 위화감으로 노사 분규가 끊이지 않지만 유일하게 단합되는 순간이 있다.

바로 한일전 축구 경기인데 전반 45분 후반 45분 동안 똘똘 뭉쳐 “대한민국”을 외치며 반일 감정의 극치를 달린다. 안타깝게도 7월 19일~27일 개최된 동아시안컵 대회에서 한국 남자축구 대표팀은 일본에 3:0 완패를 당했다.

물론 여기가 끝이 아니라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하며 2022 카타르 월드컵을 4개월 가량 남겨두고 있으니 축구팬들의 기대감까지 사라진 건 아니다. 대표팀은 월드컵 전 마지막 A매치 상대로 코스타리카 등과 진검승부를 벌일 공산이 크다.

이후 11월 출정식의 상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나 조별 리그에서는 11월 24일 오후 10시 우루과이, 28일에는 가나, 12월 3일에는 포르투갈과 접전을 벌인다. 지금까지 축구하면 차범근·차두리 부자의 전설이 있고 최근에는 손흥민의 맹활약이 팬들의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다.

어쨌거나 월드컵의 승리를 기원하는 팬들은 국민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축구는 많은 구기 종목 중 가장 인기가 많고 일반 국민들도 쉽게 즐기는 경기다. 돌이켜 보면 20년 전 오늘, 2002년 8월 오천만 국민 전체가 얼마나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던가.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는 한국축구의 새로운 반환점을 찍는 날이었다.

한국축구는 6·25 전쟁이 막 끝난 시점인 1954년에도 월드컵에 첫 출전하는 국가대표팀을 내보낸 적이 있었다. 더 앞질러보면 일제강점기에도 경성, 지금의 서울과 평양축구팀이 한판 승부를 벌인 경평전이 열린 바 있으며, 1933년 대한축구협회가 창설되었으니 한국축구의 역사는 대략 90년에 이른다고도 볼 수 있다.

한국 국가대표팀의 첫 올림픽 출전은 해방 직후인 1948년이었다. 이때 멕시코와 붙어 5:3으로 이겼고 스웨덴에게는 12:0이라는 최악의 성적을 남기기도 했다. 1954년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한국은 일본을 누르고 어렵사리 헝가리에 도착했으나 최악의 조건이 발생해 헝가리에 대패하면서 월드컵 진출은 32년이나 기다려야 했다.

드디어 1986년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한국 국가대표팀은 지금까지 10회 연속 진출하는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이후 2001년 축구영웅 거스 히딩크 감독이 등장하였고 한국 축구는 2002년 월드컵의 개최국이 되는 영광까지 안았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감동은 붉은 악마의 등장과 함께 거리는 축구의 승리를 응원하는 인파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광장이나 골목길 호프집은 문전성시를 이뤘고 조별 예선에서 2승 1무로 첫 16강 진출의 꿈을 이룬데 이어 토너먼트에서 이탈리아·스페인을 제치고 4강까지 진출했다. 축구 최정상을 눈앞에 둔 대한민국의 축구 열기는 독일 전차부대에 밀리면서 안타깝게 패배를 인정해야 하는 종점을 찍었다. 하지만 한국 축구 발전은 10년을 앞당겼고 당시 신화를 이뤄낸 멤버들은 유럽에 진출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박지성은 에레디비지에과 KNVB 베이커(FA컵) 우승에서 자질을 발휘했고 이영표는 챔피언스리그 4강의 주역으로 손꼽혔다. 이후 박지성은 맨유에서 활약했고 이영표도 토트넘으로 이적하여 한국축구의 실력을 대대적으로 알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국가대표 뿐만 아니라 K리그의 활약도 만만찮았다. 2006년 전북 현대 모터스, 2009년 포항 스틸러스, 2010년 성남 일화가 ACL우승을 차지하며 많은 국내 팬들이 응원을 받았다. 축구는 여성들에게도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여자 축구는 2010년 U-20여자 월드컵에서 3위를 차지하며 국내 팬들의 이목을 받았고, U-17 여자 월드컵에서도 여민지 선수가 골든볼과 골든슈를 받는 영광을 안았다.

국가대표팀, K리그클럽, 여자축구 등 축구 경기의 멤버들이 각기 맹활약을 벌이는 동안 아픔도 있었다. K리그에서 벌어진 승부조작 사건은 2011년 최악의 뉴스가 되기도 했다. 총 54명의 선수들이 연루된 대형사건으로 김수철 감독이 극단적인 선택을 함으로써 국민들의 실망은 더욱 컸다.

지금도 축구 황제를 꿈꾸며 많은 유소년 축구선수들과 청소년팀이 새로운 인재발굴의 출발점에서 각기 기량을 발휘하고 있다. 실력을 키우는 코치나 감독, 프로선수들을 맡아 금전적 후원을 맡은 기업이나 기관, 선수들의 혹독한 훈련과정에서 숨죽이고 지켜보는 가족들, 그리고 오천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축구팬들, 한국 축구의 가장 뜨거웠던 20년 전 오늘의 영광이 재현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한국축구의 미래에 가장 훌륭한 성공요소는 선수들의 각기 다른 재량도 중요하지만 축구를 스포츠 경기 이상도 이하로도 보지 않는 수준 높은 관중의식도 필요하다. 아무 관심도 없다가 한일전 90분짜리 경기에만 온갖 열을 올리며 축구 우승이 일본에 대한 반일 감정의 분풀이 통로가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다시 말해 한일전만 패배하면 선수들을 향한 성토가 뒤따르니 부담스러워서 운동장을 맘껏 뛸 수 있을까. 스포츠와 외교는 별개 문제다. 질수도 있고 졌다고 일본이라는 나라에 진 것이 아니라 단순히 축구경기를 치렀을 뿐이다.

한국 축구가 브라질처럼 우승한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스포츠는 최선을 다하는 경기일 뿐이지 얇은 냄비처럼 조금만 이기면 영웅이고 지면 비아냥을 서슴지 않는 성급함부터 고쳐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할수만 있다면 코로나19도 한풀 꺾인 만큼 K리그라도 관전하는 참여를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K리그는 그나마 다행이지만 K2부터는 아예 관심이 없다. 작은 관심과 응원이 한국축구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 신호탄임을 우리 모두가 공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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