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태극기 거는 게 어려운 일일까
[덕암칼럼] 태극기 거는 게 어려운 일일까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2.08.16 0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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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어제는 절기상 삼복더위 중 가장 덥다는 말복이었다.

기상청의 잦은 오보로 인해 1만 대가 넘는 차량이 침수되고 소중한 인명피해가 생기는 등 작은 한반도에 폭우가 쏟아졌지만, 복구도 하기 전에 언제 다시 추가 물폭탄이 떨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제 비가 그치면 땡볕이 대지를 달굴 것이고 안 그래도 밥상 물가가 치솟고 있는 시기에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하니 가계 경제는 더욱 쪼들릴 수밖에 없다. 일기 예보가 어느 정도라도 맞았다면 어떤 바보가 차량이 침수되도록 방치할 것이며 매장의 물건이 떠내려가고 반지하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탈출하지 않았겠는가.

걸핏하면 물폭탄이란 발표로 폭우를 예고했지만 얼마나 틀렸는지 일기예보 1주일 전이나 3일 전의 기록을 보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차라리 말이나 말지…….

어쨌거나 힘든 국민은 힘들고 별 피해 없는 국민들은 나름 휴가철을 즐기며 전국의 피서지가 만원이다. 때마침 유류비도 인하된지라 너도나도 줄지어 선 차량들이 내리 5일까지 쉴 수 있는 대체 공휴일을 틈타 짐을 싼다.

들뜬 마음과 비통한 마음이 좁은 국토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살고 있다. 수해 복구에 나선 한 정치인은 “비가 좀 와야 사진이 잘 나오겠다”며 망언을 서슴지 않고 여당에서는 당 대표를 두고 이XX 저XX 등 비속어가 공공연히 공개된다. 국민들은 당리당략에 관심 없다. 당장에 먹고 사는 문제가 우선이며 코로나19와 폭우로 겹친 질병과 자연재해에 망연자실한 상태다.

이쯤하고 왜 8월 16일은 대체 공휴일 대상이 되었을까. 앞서 8월 15일이 광복절이었던 덕분인데 광복절 날 고맙다고 집집마다 태극기라도 게양했을까. 필자가 대충만 돌아본 아파트 단지나 단독주택 심지어 공공기관에서도 태극기 게양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다. 간혹 걸려있는 태극기가 초라해 보일 만큼 무색한 장면이었다.

광복절은 우리에게 공휴일을 주려고 정해진 쉬는 날이 아니라 나름 국권을 회복한 의미가 충분한 날이다. 일제 지배를 상징하는 구 조선총독부 건물을 해체한 날이기도 하고 전범국가 일본에게는 공식 패망한 날이기도 하다. 북한에서도 조국해방일로 이날을 기념했고 일본의 항복은 많은 동남아시아의 약소국가들에게 새로운 미래를 선포하는 날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쩌다 평범한 날 묻어두었던 일들이 광복절이라는 기념일이 되어서야 새로운 이슈를 찾은 듯 뉴스 거리로 채워질까. 77년이나 지난 작금에야 한국광복군 17위의 유해가 국립묘지로 안장됐다. 1940년 9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거점 중국 충칭에서 창설된 한국광복군 17명의 영현이 서울 수유리 합동 묘소에 잠들었다가 77년 만에 이장된 것이다. 지금까지 뭐하다가…….

그리고 지난 14일은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었다. 하루 차이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기림의 날에 이어 광복절이 대대적으로 경축행사를 벌이는 것은 같은 아픔을 두 번 겪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도 담겨있다.

故 김학순 할머니가 1991년 8월 14일 자신이 겪었던 위안부 생활을 대외적으로 공표함으로써 일본군의 만행이 본격적인 여론의 도마 위에 올라온 날이었는데 정작 주범인 일본만이 이미 협상을 끝낸 일이라며 시치미를 떼고 있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한일관계 개선만 얘기했고 역사 문제와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한 적이 없어 이용수 할머니로부터 빈축을 샀다. 일본의 반성과 사죄가 먼저이며 이 세대가 다시 한번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전반적으로 경제가 피폐하고 정치가 혼탁하며 성실·근면·자조가 실종된 만큼 안일, 이기, 불신이 팽배해지고 있다. 불과 3주 남은 추석은 물가의 고공행진과 바닥난 지갑으로 어느 해보다 더 청승맞은 명절이 될 공산이 크다. 도덕은 추락하여 제사도 없어지고 명절날 친·인척의 재회는 옛말이 되고 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고유의 민족명절과 풍습이 그 가치를 잃고 있는 것이다. 뿐인가. 애국심도 갈수록 바닥나 나라 잃은 서러움을 겪은 세대들이 점차 수명을 다함으로써 국가관보다는 각자의 이기심이 팽배하니 같은 난국이 되풀이되면 누가 나라를 지키려 애쓸 것인가.

어쩌다 광복절이 노는 날이 되고 그것도 모자라 대체 공휴일로 여겨지며 아이들에게 광복절의 의미를 새겨보는 일이 남의 일이 되었을까. 필자가 해마다 광복절이면 자비를 들여 많은 인파와 함께 대대적인 기념축제를 벌인 날들이 있었다.

경기경찰청과 군부대 군악대의 협찬으로 광장의 교통을 차단하고 대형 태극기를 앞세운 채 거리행진을 하던 날들이 지금 돌이켜봐도 뿌듯하다. 수천 명의 시민들이 폭염의 환경에도 불구하고 함께 공연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며 아직도 애국시민들이 넘침을 확인한 날이기도 했다.

해마다 삼일절의 추위와 광복절의 더위는 물론 개천절의 참뜻을 기념하는 공연들이 연례행사처럼 치러졌었다. 어쩌다 태극기가 보수우파의 상징물이 되어 버렸는지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국군의 의지로 고지에 꽂았던 태극기의 참뜻은 현재 온갖 호강을 누리고 있는 후손들에게 더없이 소중한 자산이다.

돈 들지도 않고 힘들지도 않은 태극기 게양, 얼마 전 미국의 워싱턴과 뉴욕에서 목격한 주거지의 성조기 게양은 참으로 미국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짐작케 하는 바 있었다.

어쩌다 올림픽 경기장에서 금메달 수상자가 시상대에올라가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 함께 게양됐던 태극기, 내년부터는 휴가를 가든, 상관할 바 없지만 적어도 집집마다 나란히 모두 걸려 있어 누가 봐도 놀라움과 감탄을 금치 못하는 장면을 기대해본다. 다시 한번 푸른 하늘에 휘날리는 태극기가 애국심의 상징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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