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사람이 먼저다, 생명의 귀중함
[덕암칼럼] 사람이 먼저다, 생명의 귀중함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2.08.1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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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정치인들의 입에 발린 말 중 하나가 ‘사람이 먼저’라는 말이다.

이는 곧 어떤 천재지변이나 전쟁, 기타 사건·사고 중에서도 사람의 생명을 우선적으로 구해야 한다는 뜻이며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요소들이 원만히 해결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렇다면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을 살펴보자. 한국 사회의 고질적 병폐 중 하나가 저출산, 실업률, 자살률 등 부정적인 통계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중 가장 심각한 것이 청소년들의 교육과 성장환경인데 경제권을 가진 부모의 영향력도 그러하거니와 갈수록 이기적인 인간관계, 또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는 경계심으로 각박한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무엇인가 획기적인 대안이 없다면 밝은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다.

줄어드는 학생 수, 폐교를 맞이하는 지방대학들, 졸업해도 취업을 확신할 수 없는 미래, 반대로 첨단 의료기술의 발달과 몸에 좋다는 건강식품들이 줄줄이 선보이면서 결국 평균 수명은 갈수록 늘고 있다. 아마도 10년 후에는 거리마다 노인들이 넘쳐날 것이며 노인일자리 명분으로 카페는 물론 서비스 직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될 것이다.

대안이 있다면 경계심, 불신, 이기심이 팽배해지는 사회적 분위기를 점차 안정적이고 인정 넘치는 사회로 전환하는 근본적인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는 것인데 너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어서는 안 된다.

선한 마음은 선한 환경에서 생겨나는 것이며 악한 마음 또한 일상에서 습관적으로 보고 듣고 행하는 것에서 생긴다. 가령 눈만 뜨면 죽이고 죽는 게임의 연속이고 모였다하면 욕으로 시작해 욕으로 끝나야 대화에서 밀리지 않는 분위기, 멀쩡한 한글까지 줄이고 줄여 소통하는 것이 유행이고 언론에서는 이를 본떠서 신조어라는 말까지 덧붙여 사용한다.

꼭 전쟁이 일어나고 지진이나 태풍이 몰아쳐야 재앙이 아니다. 오늘은 2003년 8월 19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발생했던 테러로 22명의 인도주의 활동가가 희생된 날이었고 그 사건을 기념해서 2008년 제정된 ‘인도주의 날’이다.

일 년에 하루쯤은 사람 생명의 귀함을 신중히 생각해 보는 날이어야 한다. 의사가 치료로 생명을 구하고 사회적 관심으로 굶주린 아이들을 구하는가 하면 지구촌의 노력으로 전쟁 중인 국가의 난민을 구제하는 것 또한 인도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작은 한반도, 서울 하늘 아래 모여 사는 국민들조차 타워팰리스에서 거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지하에 살다가 졸지에 수해로 목숨을 잃은 빈부격차의 차이를 나타내는 게 현실이다. 이쯤하고 오늘은 북녘땅의 인권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았으면 한다. 남과 북은 분단이후 70년이 다 돼가는 세월이 흘렀다.

비교적 자유가 적고 관리·감독이 심한 북한과 자유의 한계선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는 남한을 비교해 볼 때 인간의 권리, 즉 ‘인권’이 살아있는 국가는 아무래도 남한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 북한이 식량난으로 변두리 국민들이 심각한 기아에 시달릴 때 고난의 행군이라는 명분으로 굶주림을 버티게 했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많은 탈북민들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 탈출을 시도했고 그 무렵 적잖은 북한 국민들이 중국을 경유하여 새터 민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땅에 정착했다. 물론 한국에서 결식아동이 300만 명이 넘고 하루 한끼를 3,000원에 편의점 컵라면으로 때우는 상황이었지만 최소한의 생명을 유지하지 못할 만큼 어렵지는 않았다.

세월이 흘러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로 상당한 경제적 지원을 공언했다. 지금도 북한 주민들이 굶고 있는지는 워낙 폐쇄된 사회라 알 수 없지만 북한 나름대로 핵무기로 버틸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겠지만 같은 민족끼리 돕겠다는 취지는 공감대를 얻을 수 있다.

문제는 굶지 말라고 보태준 재원들이 엉뚱한데 사용된다면 이는 적에게 군량미를 더해주는 것이나 진배없다. 하지만 이미 남한에 정착한 새터민까지 편견과 다문화근로자의 일면으로 여긴다면 이는 어렵사리 자유를 찾아온 동족에 대한 배려의 부족이자 비인도적인 처사다.

가령 동남아시아나 기타 제3국의 외국인 근로자들이야 한국이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본국으로 가버리면 그만이지만 새터민의 경우 그런 시도는 꿈도 꿀 수 없다. 필자가 취재 과정에서 듣게 된 새터민 단체장의 전언에 따르면 새터민들이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절반 이상이 남한을 떠났을 것이라는 말이 얼마나 새터민들에 대한 남한 국민들의 응대가 소홀했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따뜻한 남쪽을 향해 수천리 길을 돌아온 북한 기러기들의 날갯짓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을 면하기 위한 최소한의 선택이었다. 진정한 인도주의는 동족에 대한 배려다. 굳이 남의 나라 얘기할 것이 아니라 남북한이 각 국가의 장점을 더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가장 큰 국익의 하나이자 해당 국가의 국민들이 더 힘들게 되는 길이다.

옛말에 ‘가난은 나라도 못 구한다’했다. 각자의 이득에 눈이 멀어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는지 돌아봐야 할 시대다. 과거에 비하면 충분히 먹고 살만 하지만 차고 넘쳐도 다른사람에게 주는 것도 모르는 각박함이 작금의 상황을 만든 것이며 언제부턴가 훈훈한 인심이라는 단어가 생소해 지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인도주의는 멀리서 찾을 게 아니라 가장 가까운 이웃과 나눔의 배려를 갖출 때 생기는 것이다. 큰 틀에서 현재 진행중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으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고 있으며 국경을 탈출했다가도 돈이 없어 다시 자국으로 돌아가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

죄 없고 힘없는 국민들만 생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며 이대로 가다간 지구촌의 식량부족으로 적잖은 빈민 국민들이 아사지경에 처할 수 있다는 뉴스가 남의 일이 아니다. 뭐라 해도 사람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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