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사람을 찾습니다.
[덕암칼럼] 사람을 찾습니다.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2.08.30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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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사람을 찾는 전단지를 본적이 있는가. 애타게 찾습니다 현상금 000만원.

국어사전에 실린 실종이란 단어의 의미는 '간 곳이나 생사를 알 수 없을 때'를 일컫는 말이다. 오늘은 1981년 코스타리카에서 창립된 NGO 인 실종자 가족들을 위한 협의체의 라킨 아메리카 지부가 재안해 1992년 12월 18일 유엔에서 공식 채택된 실종자의 날이다.

전쟁이나 자연재해에서도 사망자는 확인되지만 그 확인조차 안 되는 실종자는 해마다 늘고 있다. 특히 전쟁 발발시 실종자의 신원확인은 더욱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한국에서 매년 늘어나는 실종자만 해도 최근 5년 간 2185명에 달하느는 숫자가 아직 신원확인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어느 날 사라진 사람들은 어디로 갔으며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까.

물론 당사자만 아는 일이다.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지 못할 어린이나 치매가 심한 환자들의 실종은 가족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므로 지문사전등록이나 안심귀가 팔찌 등 일시적인 대안도 내놓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스스로 가출했거나 누군가에게 납치 내지 사건 사고 현장에서 사라진 실종자는 지난 2021년 한 해만도 529명에 이르며 가출인은 2090명을 찾지 못했다. 

가출인의 경우 18세 미만 아동, 지적·자폐성·정신장애인 치매환자를 제외한 18세 이상 성인 실종자를 말한다. 단순 가출과 실종, 자살의심, 연락두절 등이 모두 포함됐다. 가출인은 2017년 333명, 2018년 346명, 2019년 399명, 2020년 483명, 2021년 529명으로 그 수가 계속해 증가했다. 막상 사람이 없어지고 경찰에 신고하면 그 다음 과정은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물론 경찰이 홀연히 사라진 사람을 찾아주는 능력을 갖춘 건 아니지만 마땅히 찾아 달라고 애걸복걸할 곳이 어디 있을까. 

대다수가 일시적인 가출로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있지만 즉시 찾지 못하면 영영 못 보는 경우도 많으니 증거 불충분으로 인한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가 제일 안타까운 일이다. 요즘은 경찰의 과학수사로 cctv 화면 확보나 기타 스마트 폰의 위치추적 등이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계획적인 납치나 맘먹고 자취를 감춘 경우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남의 일로 여기다 막상 자신의 일이 되고 보면 그 막막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게 된다. 

대한민국은 사실상 지리학적으로 그리 넓지 않지만 막상 숨으려고 작정하거나 숨기려고 계획적인 준비를 하면 찾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지금까지 실종자 확보에 대한 경찰의 미제사건만 보더라도 그 수치는 심각한 실정이다. 각종 대형사고나 자연재해 발생 시, 특히 육지가 아니라 해상 사고 시 신변확보는 더욱 난항을 겪게 된다.

과거마냥 편지로 안부를 묻던 시절도 있었다. 우체부가 몇 날 며칠을 걸려야 상대방의 답장을 받을 수 있었던 그런 시절도 인심은 훈훈했다. 요즘처럼 스마트 폰으로 카톡만 날려도 동시에 수 십 명에게 자신의 사진과 함께 현재 어디에 있는지 위치까지 정확히 알 수 있는 시대임에도 정작 따스하고 사람이 그리운 정은 점차 삭막해진다. 

문명의 발달이 인심의 발달보다 앞서서일까, 아니면 모든게 너무 넉넉하니 식상하고 흔해져서 일까. 어쨌거나 대한민국은 국토도 좁고 온 사방에 CCTV가 촘촘하게 깔려 있으니 실종, 행방불명에 대한 사람 찾는게 그나마 수월한 편이다. 

역발상으로 중국 대륙의 어느 산골짜기에 숨거나 버려진다면 어찌 찾을까. 국토의 끝에서 끝까지 열차로 일주일을 달려야 명절날 고향을 찾는 대륙인들의 기질을 보면 규모면에서 대단한 게 중국이다. 특히 북한의 탈북민들이 대한민국으로 오기까지 거치는 경유지가 대부분 중국이기에 남아 있는 가족들 입장에서는 사라진 가족이 실종으로 처리된다. 

물론 실종된 이후에 생사여부는 알 수 없겠지만 현재 약 3만명이 넘는 새터민들이 광활한 면적의 중국에서 말도 풍습도 낯선 타국의 생활을 겪으며 하늘만 봐도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할 수 밖에 없다. 살기 위해 먼 길 돌아 동족의 품에 안긴 새터민들은 새로운 삶을 살지만 남은 가족들의 애타는 심경은 통일이 되어서야 볼 수 있지 않을까. 

지금으로부터 약 40년 전인 1983년 필자가 태백고등학교를 막 졸업할 시절이었는데 당시 KBS1방송에서 마련한 특별기획,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가 전 세계적인 관심을 모으며 눈물바다를 이뤘다. 

분단과 6.25 전쟁을 생사를 알 수 없었던 시절,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으로 소식을 몰랐던 가족들이 전쟁 이후 30년 만에 TV모니터에서 사회자가 소개하자 전화로 연결해서 당시의 상황을 물어보다 하나 둘씩 과거의 흔적들이 확인될 무렵 펑펑 울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프로그램이었다. 

방송 다음날부터 여의도 KBS 방송국 담벼락에는 수 천장의 벽보가 나붙었다. 어떤 이는 피켓을 들고 또 어떤 이는 끝도 없는 벽보를 돌아다니며 확인하는 장면도 있었다. 혹시라도 통일이 된다면 지금의 새터민들이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를 재현할 수 있을 것이고 더 늦기 전에 가족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40년이 지난 2022년, 이제는 손쉽게 사람을 찾을 수 있는 세상이 됐다. 

하지만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함께 있어도 실종이나 다름없는 시대로 향하고 있다. 가령 집에서 키우던 개가 없어져도 온 사방에 전단지를 붙이며 찾는데 하물며 사람이, 그것도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버리면 어떤 심경일까. 

물론 육체적 실종도 있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살아도 죽은 것이나 진배없는 정신적 실종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밖에서 보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화려한 아파트 불빛이 나란히 켜져 있지만 문만 열고 들어가 보면 퇴근한 가장이나 TV앞에 리모컨만 들고 있는 주부, 하교 후 방문 닫고 게임에 중독된 아이들이라면 이는 함께 있어도 흩어진 것과 진배없다. 아니 실종된 정신이 더 큰 사회적 문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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