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늑대가 나타났다
[덕암칼럼] 늑대가 나타났다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2.08.31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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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을 빙자한 동화 속의 한 대목이다.

같은 거짓말을 반복하면 진실을 말해도 통하지 않아 곤경에 처한다는 결론을 내는 이야기로 지금도 대화 속에 양치기 소년이라고 빈정대면 거짓말 하는 것을 비꼬는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5천만 명이나 되는 국민들을 대상으로 권력이 상식밖의 거짓말로 선동해 어린아이들 코 묻은 돈까지 성금으로 거두었던 시절이 있었다.

강원도 화천에 있는 ‘평화의 댐’이 오늘의 주인공이다. 화천군 화천읍 동촌리 북한강에 위치한 평화의 댐은 601m 길이에 125m 높이, 26억 3천만 톤의 저수량, 1987년 착공해 1차로 높이 80m를 쌓았다가 2002년 2단계 증축으로 2005년 10월에 최종 완성된 댐이다.

댐 위로는 지방도 제460호선이 있고 건설과정은 제5공화국 전두환 정권이 북한에서 물 공격 ‘수공’을 한다고 국민들에게 엄포를 놓아 정치적 산물로 남은 흉물이다. 제6공화국으로 정권이 바뀌고 나서야 대국민 사기극임이 드러났고 공사장에 동원된 인부들은 무슨 죄가 있었을까.

1986년 10월 30일 당시 이규호 건설부 장관이 발표한 대북 성명서를 보면 가관이다. 북한에 금강산 댐 건설을 즉각 중단하라했고 그 이유에 대해 금강산 댐이 북한강으로 흐르는 물을 연간 18억 톤을 차단할 것이라며 난리를 쳤다. 그리고 금강산 댐을 붕괴시켜 200억 톤의 물을 방류하면 서울 여의도 63빌딩 중턱까지 물이 찰 것이라며 국민들을 겁박했다.

순진한 국민들이 뭘 알까. 저수량을 잴 수도 없고 당장에 수도 서울이 물바다가 된 시뮬레이션 영상이 요란한 타악기 연주와 함께 상영되었으니 반대하면 역적으로 몰리는 것이다. 당시 풍수지리에 밝은 전문가나 토목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댐 건설에 납득하지 않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심지어 당시 정부는 북한이 1988년 열리는 서울 올림픽을 방해 하려고 물 공격을 가해 올 것이라고 구체적인 이유까지 덧붙였다. 지금 돌아보면 어이없는 일이고 기가 찰 노릇이지만 당시 권력은 그래도 되는 시절이었다. 총 공사비 1,700억원 중 639억 원이 6개월 동안 국민 성금으로 모였다.

돈의 액수가 문제가 아니라 성금을 거둠으로써 동참의 여지를 만들었고 국민들에게 당위성을 부추기는 일이었다. 초등학생에게도 빈 봉투를 나눠주고 돈을 걷는가 하면 방송국마다 성금 모금에 열을 올렸다. 1986년 필자가 육군 상병시절 월급이라고는 4,100원이 전부였던 당시에도 평화의 댐 성금으로 500원을 냈다.

요즘 시세로 5,000원인데 사기당한 돈이니 받아내야 하겠지만 공소시효가 지났으니 소용없는 일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얼마나 거둬 얼마나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러니 성금 모금 과정에서 일부를 빼먹다 걸리는 일도 있었고 경제의 주체인 기업에도 손을 내밀어 사실상 강제적 금전 거출로 최소 700만원에서 최대 10억까지 할당시키는 일도 있었다.

이후 김영삼 前 대통령이 감사원을 통해 밝혀낸 평화의 댐 진실은 백일하에 드러났다. 처음부터 북한의 수공 위협은 허위였고 댐 건설의 필요성도 부풀려진 것이며 위치와 규모도 한국전력 직원 1명이 구상한 사기극에 불과했다. 저수량도 최소 70억톤에서 최대 200억 톤이라는 부풀리기로 진행됐다.

60억톤도 안 되는 금강산 댐의 저수량을 3배나 확대 해석해 발표했다. 훗날 밝혀진 바로는 금강산 댐을 허물일도 없지만 폭파해서 한번에 물을 방류해도 서울 한강은 요즘의 장마보다 조금 더 수위가 높아질 뿐 평소 30억톤도 안 되는 금강산 댐은 위협 대상이 되지 못 했다. 공사도 경쟁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이니 지금이라도 어느 회사가 얼마에 시공했으며 막대한 공사비는 어디로 갔는지 당사자만이 알 수 있다.

당시 전두환 前 대통령이 공사에 직접 관여했음이 드러났고 서울대 총장도 북한의 위협을 과장했다는 이유로 학생들에게 사과하는 촌극을 빚었다. 오늘은 1993년 8월 31일 감사원이 평화의 댐 특별감사결과 금강산 댐의 수공 위협은 과장됐다고 공식발표한 날이다. 이제 양치기 소년은 운명했다. 하지만 수단과 방법만 다를뿐 목적은 유사한 양치기 소년들이 끊임없이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평화의 댐 이후로도 걸핏하면 남북의 대치상황을 악용하여 선거를 치른 예도 있었고, 망태 할아버지가 잡으러 온다며 겁을 줘서 안 그래도 위태위태한 남북한의 대치 상황을 겁도 없이 악용한 사례들이 줄을 이었다. 당시 온국민들이 들고 일어났을 때 북한에서 얼마나 웃었을까. 철조망 너머로 뭐가 진실인지 알 수도 없었던 시절, 하지만 손바닥에 지구 곳곳을 볼 수 있는 시대에도 남북의 적대관계를 이용하는 세력들이 여전히 대한민국의 안보를 좀 먹고 있다.

진정한 국태민안, 태평성대란 먹고 자고 살아가는 기본이 걱정 없어야 한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을 보라. 지금도 복지라는 명분으로 국민들을 게으르게 만들어 일하려 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를 확산시켜 놓고 있다. 지금의 추세라면 점차 근로의욕 상실과 저출산의 부추김으로 인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정책을 이어나갈 것이고 그러면 얼마 못 가서 대한민국은 멸망의 늪에서 헤어 나오기 어렵게 된다.

아니길 간절히 바라지만 바란다고 될 일도 아니고 불 보듯 뻔한 미래에 대체 어쩔 것인가. 이제 이 땅에서 양치기 소년은 양들을 몰아내야 한다. 양들의 침묵으로 늑대는 여유 있는 포식자가 될 수 있으며 나만 안 잡아 먹히면 괜찮다는 안일함과 이기적 사회풍토가 언젠가는 나도 먹힐 차례가 돌아 올 수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언젠가는 양들을 안전하게 지키는 양치기 소년이 나타나겠지만 북한의 외부적인 위협보다 더 무서운 내부적 국민 게으름이 이미 대한민국 전신을 사각사각 갉아먹고 있다. 차라리 평화의 댐을 하나 더 만드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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