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법원의 날
[덕암칼럼] 법원의 날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2.09.13 08: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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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언제 무더위가 극성을 부렸냐는 듯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가을날이다.

이제 추석 연휴도 끝나고 모든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가 생업에 종사하거나 다가오는 겨울을 서서히 준비해야 할 시기가 됐다. 문명사회에서 겨울 준비라는 게 과거처럼 요란하고 꼼꼼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달라지는 기후에 따라 고이 간직했던 가을 코트도 꺼내 보고 하루가 다르게 녹음에서 붉은 단풍으로 변해 가는 모습에 감탄도 할 만하다.

절기상 8월 7일 입추를 시작으로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도 지났고 백로를 거쳐 추분을 앞두고 있다. 추분은 가을의 정점에 있는 24절기 중 하나로 한로와 상강만 지나면 곧 겨울에 들어선다는 입동에 도달하게 된다. 까마득히 남은 날들 같지만 사실 뒤돌아보면 두달이 금세 지나갔듯이 시간의 흐름은 천천히 그러나 조금도 쉬지 않고 흐르므로 그 속도는 꼼꼼히 기록하고 온몸으로 체감해 보면 알 수 있다.

여러분은 살면서 경범죄나 운전하면서 교통법규위반으로 과태료를 부과 받은 경우가 있는가. 아니면 본의 아니게 소송에 휘말려 재산을 탕진하고 울분을 못 이겨 생병이 난 적이 있는가. 없다면 다행이지만 혹여 겪어본 사람이라면 송사 라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된다. 제 아무리 법대로 살고 나름 사회봉사도 하며 착하게 살아도 사람 사는 과정에서 자칫 사소한 실수로 시작되어 걷잡을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서론이 긴 것은 오늘이 대한민국 법원이 일본으로부터 사법주권을 회복한 날이기 때문이다. 매년 9월 13일 소정의 기념식을 통해 관련 분야의 종사자들에게 시상을 하기도 한다. 2015년 대법원에서 제정한 이날은 법에 대한 다양한 행사들도 개최되어 법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이해를 돕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날이다.

앞서 법의 날은 4월 25일이다. 필자가 법의 날을 맞이하여 법원장이나 기타 관련 종사자들을 인터뷰하면서 판사 중심의 글을 쓰게 됐다. 그런데 법의 날이 판사만 기준이 될까. 경찰의 날은 있어도 딱히 검사의 날은 없다. 검사에 대한 무게감과 일반국민들이 다가가기에 다소 부담스러운 면도 있지만 검사라는 직책만으로 농담이나 환하게 웃는 모습도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선입견부터 고쳤으면 한다.

검사도 사람이고 엄숙한 표정으로 무게만 잡아야 한다는 점은 피의자나 참고인을 불러 조사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상황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필자 또한 검찰의 서슬 퍼런 조사를 수도 없이 받아봤지만 강도 높은 조사를 한다고 혐의를 부풀리거나 원하는 방향대로 기소 내용을 만들 수는 없다.

물론 최근에도 그런 상황을 겪고 있지만 없는 죄를 만드는 검찰의 조잡한 시도에 실소를 금할 길 없다. 판사에 대한 이미지는 근엄하지만 심적으로 두려움이나 경계심은 적은 편이다. 하루에도 수 십 건의 재판을 열어야 하고 고소인과 피고소인의 의견을 객관적으로 청취하여 포청천보다 더 명쾌한 답을 내려야 하는 판사라는 직업도 사실 고도의 정신노동이나 다름없다.

살면서 피하지 못할 범죄, 이를 조사하는 검사와 나름 비겁하고 화려한 변명을 대변해야 하는 변호사, 이들의 상황을 정리해야 하는 판사는 신성한 법정의 3대 주인공들이다. 이 과정에서 법원의 기능과 역할은 참으로 중요하고 많은 사건들이 대법원의 판례를 기준으로 진행된다. 한번이라도 소송에 임해 본 사람들이라면 변호사 선임의 수임료가 판례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공감하게 된다.

죄의 경중에 따라 공정해야 하지만 같은 범죄라도 얼마나 정확하고 꼼꼼하게 사건을 정리하느냐에 따라 판결은 다소 차이가 날 수 있다. 법원의 방청석은 누구나 입장할 수 있는데 굳이 일부러 갈 일은 없겠지만 업무상 재판과정을 방청하다 보면 이런 범죄도 있구나 싶을 만큼 세상은 다사다난하다.

간혹 판결을 기다리는 과정에서 재판 도중 졸거나 엉뚱한 질문을 하는 판사도 있지만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감동할 만큼 정성껏 사건을 파악하여 공정하고 정확한 판결을 하는 경우도 많다. 같은 범죄라도 형량이 달라지면 이는 불공정한 사회다. 거액의 수임료로 대형 로펌을 선임했다고 있던 죄도 줄어들고 축소된 범죄가 집행유예로 끝나거나 판결에 지장을 초래한다면 그 변호, 누군가의 피해를 덮어버리는 반사회적 신뢰 저해로 이어진다.

법뿐만 아니라 이 사회 모든 분야가 보다 공정하고 투명하며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면 법원은 돈이나 인맥으로 달라지는 분노의 장이 아니라 판결을 존중하는 신성한 전당이 될 것이다. 개선할 수 있다면 법률적 용어나 관행적 측면에서 일제의 잔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광복이후 많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도 많았지만 아직 법원은 국민에게 그리 친근감 있고 미더운 인식이 부족하다.

복잡한 이해관계를 풀어가는 인간사회에서 어떤 식이든 소리없이 살 수는 없다. 국민의 현실적인 발전을 위해 법을 개정하는 국회, 국회가 정한 법과 대법원의 판례를 기준으로 판결을 하는 법원은 우리 모두가 질서를 유지하고 지켜야 할 규범을 지킬 수 있는 근본이다. 오늘 하루만큼이라도 법조계에 종사하는 모든 분들의 노고에 격려를 보낸다.

적어도 돈이 없어서 죄 없이 억울한 사람이 생기거나 극악무도한 죄를 짓고도 뻔뻔하게 낯짝을 쳐들고 살 수 있는 세상은 아니어야 한다. 신뢰는 쌓기 힘들지 무너지기는 쉬운 것이기에 많은 법조인들이 세월이 지나도 후회의 여지가 없는 판결을 위해 힘을 모아 국민이 죄 짓지 않고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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