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글보다 사진을…‘포토데이’
[덕암칼럼] 글보다 사진을…‘포토데이’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2.09.14 08: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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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불과 20년 전의 일이다.

카메라에 필름이 있는지 확인하고 촬영한 사진을 사진관에 맡겼다가 촌각을 다투는 현상시간과 본사의 편집부 기사 마감시간을 맞추기 위해 발을 동동 굴렀던 시기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돼 모든 정보를 빛의 속도로 찾아볼 수 있고 키보드만 두드리면 글자가 쳐지고 송고까지 엔터로 마감할 수 있는 시대는 상상도 못했다.

사실 문명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보고 있는 것이 언론이다. 직접 찾아보지 않으면 적용하기 힘들었던 각종 정보를 비교 분석해보고 독자들의 입맛에 맞게 적절히 미사여구까지 쓸 수 있으니 얼마나 편리해졌는지 나날이 감동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도자료만으로 지면을 채우다 보니 간혹 티 안 나게 한숨이 쉬어지는 것이다.

필자가 매주 5회씩 정기 칼럼을 쓰면서도 과연 독자 들에게 얼마나 설득력을 갖고 있을지, 이해를 도와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물론 포털이나 SNS를 통해 조회수나 댓글의 반응으로 어렴풋이 감을 잡고 있기로는 적어도 수 만명의 사람들이 매일 보고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그러면서 아쉬운 것은 글이 아니라 사진이었다면 더 쉽게 관심을 끌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지금까지 필름카메라에서 스마트폰의 카메라까지 약 60만 장을 찍었고 외장하드에 보관한 것 말고 언론에 노출된 것만 20만 장은 족히 넘으니 자랑 아닌 자신감의 흔적이었다. 이런 성과의 이면에는 혹독한 시련이 훈련이 되었고 겨울이 있었으니 월동준비의 노하우로 소정의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었다.

언론분야다 보니 당연하겠지만 실제로 일반 국민들도 공감하는 내용은 사진의 희소성이다. 과거 졸업사진, 돌사진, 수학여행이나 기타 가족사진은 물론 빛바랜 흑백사진은 앨범에 고이 모셔두었다. 이따금 꺼내 보며 과거를 회상하는 인화사진은 요즘처럼 흔하지도 쉽지도 빠르지도 않았던 유물이 됐다.

사람이 살면서 남길 수 있는 것이 이름이라지만 이름은 존재의 명칭일 뿐 사실 생전에 남긴 글이 그 가치를 나타내는 기준이다. 신기하게 글을 남겼다가 위인이 되거나 역사의 흔적이 되어 후세에게도 교훈이 되는 경우는 많아도 사진으로 위인이 된 경우는 본 적이 없다. 그 이유는 글은 뜻이 담겼지만 사진은 의미가 담겼기 때문이다.

사진은 눈으로만 보지만 글은 눈을 거쳐 감동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오늘 필자가 권하고자 하는 내용은 글이거나 아니면 사진이거나 독자들이 바쁜 일상속에서도 흔적을 남겼으면 하는 뜻에서 권장하는 것이다. 평소 무뚝뚝한 표정이었다가도 카메라만 들이대면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하게 웃는 사람도 있다.

아마 이 글을 보며 빙그레 웃는 모습이 연상되는 독자들인데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는 속담이 미소가 가진 가치를 나타내는 듯하다. 자꾸 웃다 보면 인상이 달라지고 달라진 인상은 그 사람의 삶을 여유롭게 한다. 비록 부유하지 않더라도 타인을 배려할 수 있는 삶을 사는 영적 부자라 할 수 있다.

사람이 나이가 들고 세상의 변화를 겪는데 그 달라짐을 확인해 볼 수 있는 게 사진이다. 어릴적부터 현재까지 과정을 타임랩스처럼 1년 주기로 연속장면으로 영상을 만들어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자신의 돌잔치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은 자신만이 안다. 특히 사람은 본능적으로 남의 일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사진과 직결된 부분이라면 민감할 수밖에 없다.

대충 살다 가지 뭐 그리 피곤하게 사느냐고 핀잔할 사람이라면 상관없지만 그래도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하지 않았던가. 기왕 사는 거라면 자신만의 타임랩스를 만들어 과거도 회상하고 미래에 희망과 자신감도 갖춰 보는것이 어떨까. 사실 사진은 예술이다. 사진작가협회가 그런 측면에서 분야별 특수성을 갖는 것이고 신문에서도 취재기자 못지않게 사진기자들의 득세가 한몫하는 것이다.

신문의 글은 구구절절 읽어야 이해가 가지만 사진은 한순간에 보도내용의 의미를 판단할 수 있으므로 기사를 아무리 잘 써도 사진이 빠지면 독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런 현상은 요즘 유행하는 카톡에서도 볼 수 있다. 감동이 넘치는 미사여구가 식상해지면서 아무 감응이 없자 사진 형태의 디자인에 글을 담아 명절인사로 대신하고 특별한 기념일에도 사진인사로 대체한다.

물론 이 조차 흔해져서 읽어보지도 않고 넘기는 빛의 속도에 살고 있다. 독자들은 집에 불이 나거나 전쟁이 발발하거나 홍수가 나서 대피해야 한다면 무엇을 가장 먼저 챙길까. 물론 첫째는 사람의 인명이다. 필자는 그 다음이 사진이라고 본다. 즉 앨범인데 지금처럼 외장하드나 기타 사이버상에 보존할 수도 있겠지만 요즘처럼 사진이 흔한 시대에 누가 일일이 날짜별이나 분야별로 쉽게 찾을 수 있도록 구분해서 보관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집문서야 등기소 가서 재발급 받으면 될 것이고 돈이야 현금 보관한들 얼마나 할까 하지만 앨범은 어떤 경로라도 과거로 돌아가 촬영 하지 않는 한 복구할 방법이 없다. 뭐든지 흔하면 희소가치가 떨어지고 보존의 필요성도 낮아진다. 9월 14일 포토 데이를 맞이하여 자신의 일상과 일생을 차분히 기록으로 남기는 자산가치 1호로 남겨보는것이 어떨까.

문득 문재인 前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판문점 회담 당시 온갖 폼을 어설프게 잡아가며 연신 사진을 찍던 북한의 사진기자의 동작이 연상된다. 사진이 없던 과거에 벽화나 그림으로 남겨졌던 소중한 역사적 유물들이 지금도 그 가치를 인정받는 건 글은 민족마다 다르지만 그림은 같은 공감대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이제 만산홍엽에 불이 붙을 시기가 오고 있다. 멋진 가을을 렌즈에 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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