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엘리자베스 여왕의 세계경영, 찰스 3세의 치국과 한국의 외교정책, 국제정세에 상응하는 “한영(韓英) 관계설정”에서 꼭 필요한 원칙
[사설] 엘리자베스 여왕의 세계경영, 찰스 3세의 치국과 한국의 외교정책, 국제정세에 상응하는 “한영(韓英) 관계설정”에서 꼭 필요한 원칙
  • 이찬엽 논설위원 pinetree0516@hanmail.net
  • 승인 2022.09.15 14:5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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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엽 논설의원
▲이찬엽 논설의원

영국의 영원한 여왕은, “엘리자베스 2세”였다. “빅토리아 여왕”에 견줄 수 있고 “엘리자베스 1세”에 버금가는 영예는 두말할 필요가 없으며 “기도로 유명한 왕 조지 6세”의 후계자로서 손색이 없었다. 2차대전 당시 조지 6세는 영국군에게 희망을 주었고 영국민을 단합으로 이끄는데 원동력을 제공했었다. 

그런데, 그의 기도의 덕분이었을까. 그녀의 재위 기간은 평온했으며 매우 친근감을 느끼게 했다. 성공된 통치 기간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상속자인 찰스 3세의 왕정이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한 우려가 깊다. 신분을 뛰어넘는 평등을 과연 그가 추구할지 자못 궁금하다.

여왕의 치적이 그럴진대, 세계의 문명국가 거의 모두가 버킹엄궁의 엘리자베스 여왕 장례식장에 참석할 예정이다. 윤 대통령 또한 참석한다. 이는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한 애도뿐만 아니라 영국의 외교적 위치가 어떠한가를 잘 말해 준다.

한 때는, 영 연방국이 35개를 넘을 정도였고, 그 당시엔 오히려 미국보다도 강력한 세계적 영향력을 가졌었다. 위세가 꺾기긴 했지만, 지금도 영 연방국의 국력 총합은 러시아나 중국을 압도할 정도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미국이 세계의 경찰로 군림하는 것도 영국의 후견에 힘입은 바 크다.

주지하다시피, 선대 엘리자베스 1세는 대영제국의 토대를 마련한 군주였고 매섭게도 인도를 경영한 여왕이었다. 그러나, 고인이 된 엘리자베스 2세는 인도 경영을 너그러이 단념한 인도(仁道)의 여왕이었다. 같은 점은, 둘 다 장수한 여왕이었다는 점이다(엘리자베스 1세 재위 기간 55년). 엘리자베스 1세가 영토확장에 전념했다면(아메리카 식민지 개척) 엘리자베스 2세는 식민지에 대한 포용정책을 폈다는 점에서 역력히 다르다. 

종전 영국과 한국의 관계는 그리 좋지 않은 흑역사가 주를 이룬다. 즉, 한국에 있어서 영국의 중요성은 두 가지 측면에서 조명을 해 봐야 한다. 

하나는, 영국과 중국의 관계를 되짚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즉, 중국에 굴욕을 주었던 아편전쟁을 상기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도 중국은 미국과 더불어 영국의 군사적 행동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특히 영 연방 국가인 호주의 “쿼드” 안보회의체를 못마땅하게 받아들였다. 이는 중국과 미국(대만) 간의 전쟁발발시 서방세계(영국)의 참전이 두려운 까닭이다. 사방이 적뿐인 중국으로서는 아편전쟁의 기억을 잊을 수가 없었고, 그 트라우마는 지금도 진행 중일 수밖에 없다.

청(중국)은 아편전쟁을 통하여 허약함을 드러냈고, 그 결과 중국에 대한 인식이 “침묵의 강자”에서 “침묵의 호구”로 전락하는 비애를 맞보았다. 그러한 사실을 바로 본 북한도 그 연장선상에서 100배나 큰 중국과 호형호제하는 중 아닌가. 허약함을 북도 잘 안다. 북의 눈치를 따를 국가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영국에 의한 치욕은, 일본, 베트남에 연거푸 패하면서 자존심은 땅에 떨어졌고 소련의 하수인 노릇을 한참 한 터라 지금도 푸틴에게는 고개를 들지 못한다.

두 번째, 우리는, 우리에게 외교적 충격을 안겨줬던 영일동맹을 기억해야 한다. 영일동맹은 당사국 중에 타국과 교전시 일국은 즉시 참전할 의무를 지는 이른바 “공수동맹”이었다. 일본의 든든한 후견을 영국이 자청함으로써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지배가 공고히 되는 계기가 되었다. 즉, 일본과 영국의 동맹에 의한 실질적 피해는 조선이 오롯이 져야만 했다.

예전에, 엘리자베스 2세(여왕)는 23년전 한국을 찾았고, 유교이념의 상징인 안동 하회마을과 극락전으로 유명한 봉정사를 방문한 바 있다. 봉정사는 공민왕이 반원정책을 펴던 대표적 사찰이었으니 수많은 식민지를 가지고 있던 여왕이 이곳을 직접 찾은 것은 800여년 만의 사죄 아니었을까. 

엘리자베스 여왕이 좋아했던 물건으로는 하회탈과 한국의 전통음식, 그리고 “달콤한 곶감”이었다. 한국의 꽃 떡을 좋아할 만큼 서민적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소박한 심성을 지닌 여왕으로 기억됐다. 찰스 3세도 이러할까. 그러나 벌써부터 좋지 않은 말이 전언되고 있어 엘리자베스의 유언이 허망해진다.

엘리자베스 2세의 가장 큰 업적은 뭐니 뭐니해도 레이거노믹스를 뛰어넘는 대처리즘 즉, 대처수상의 경제 및 사회복구를 위한 세금인하 및 복지의 공공지출감축, 민영화, 인플레이션 억제, 법적 제제 완화, 산학협력 등 영국병을 타파하는데,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은 여왕이었다는 사실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말을 그녀에게 붙이기 딱 좋았다. 아무리 수상이 국무를 총괄한다고 하지만 승인은 “국회와 국왕의 몫”이었기 때문에 더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그런데, 엘리자베스 2세의 전직은 여군이며 탄약관리자였고 군용트럭 수리공이었다는 점이다. 세월도 무상하지,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던 때가 한나절 전인가 싶은데, 그녀는 이미 다정한 이웃을 등지고 말았다. 타국의 왕이었지만 부단한 헌신에 존경심을 일게 한다. 아주 오래전, 그 유명한 책략가이자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도 약관의 여왕에 대하여 머리를 조아릴 정도였다니 그녀의 품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겠는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선대왕들보다도 유화정책을 폈고, 그로 말미암아 영국의 왕 중 가장 인기 있는 왕으로 칭송을 받았다. 그에 대해, 세상 사람들은 말하곤 했다. “영국에서 왕이 무슨 권력이 있는가”라고. 그러나, 그건 정치학책에서나 써먹는 말 아닌가.

영국은 “자연법”을 소중히 여기는 국가이다. 이건 무엇을 말하는가. 국민의 가슴속에 흐르는 보편적 가치관을 중시하는 국가다. 그렇기 때문에 엘리자베스를 신망한 것이다.

즉, 영국에서, 실정법을 경영한 사람은 수상이었지만, 국민의 심장에서 자연법을 경영했던 사람은 엘리자베스였다.

그렇다면, 그러한 원동력은 어디에서 왔을까. 동양이나 서양이나 사리사욕을 과감하게 뿌리치고 국민과 특히, 항상 서민들과 함께하고자 했던 지극한 봉사 정신과 희생정신에서 오지 않았을까. 아무리 신사의 나라라는 “겉치레를 쓴 영욕의 국가”가 영국이라고들 하지만, 엘리자베스 여왕의 “헌신적 행동”에 의해, 종전에 씌워졌던 프레임이 일시에 거친 것은 한마디로 “기적”이었다. 영국을 새로운 길을 가게 했다.

그러나, 언급했듯이, 지금은 찰스 3세 시대다. 찰스 3세가 “어떠한 행동과 영향력을 행사할 것인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우리의 외교 노선은 “영국과 동맹의 길로 가야 한다”는 점은 확고하다. 

즉, 신패권주의를 앞세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영국과의 동맹은 필수적이다. 과거 중국에 쓰라린 참패를 안겨주었던 영국은 중국에 트라우마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젠 영국도 변했다. 세계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순수함을 모두 보았고 헌신에 경의를 표했다. 

전통과 예법을 우리가 존중한 것처럼, 영국의 여왕은 낯선 한국에서 우리의 예법을 존중했다. 중국의 거만한 행동과 비교하여 그건 차원이 다른 “품격”의 행보였다. 그녀에 대한 신망은, 굳건한 동북아 평화에 버팀목으로서 영국이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찬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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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17 19:53:51
헐 일왕에 대해서도 이렇게 써봐라. 군주제 옹호는... 무슨일제시대 보는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