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다른 말 다른 글 같은 마음
[덕암칼럼] 다른 말 다른 글 같은 마음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2.09.30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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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지구상에 존재하는 언어는 약 4,0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광활한 중국 대륙의 소수민족에서만 800가지가 넘는 언어가 통용되고 있다고 하니 말에 따른 글도 그만큼 다양하지 않을까. 중요한건 어떤 말과 글이든 의사소통의 목적을 두고 있는 만큼 말하는 자와 듣는 자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다면 이미 그 의미를 상실한 것이고 아무리 떠들어봐야 하나마나인 것이다.

하지만 말없이 서로의 눈빛만 봐도 다음 생각까지 읽을 수 있다면 이는 실로 대단한 것이다. 오늘은 2017년 5월 24일 유엔 총회에서 결정된 날로써 매년 9월 30일을 ‘세계번역의 날’로 정했다. 번역과 통역은 다르다. 번역은 글을 전하는 사람에서 보는 사람 중심으로 적은 것이고 통역은 말하는 사람의 뜻을 듣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전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전세계인들의 인권보호에 가장 필수적인 요소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기 위해서도 대화가 원활하게 통해야 하는데 소통의 부재는 사소한 불신의 출발이 되어 전쟁도 불사하는 경우를 초래하게 된다. 가령 농담으로 한판 붙자고 했다가 진담으로 들어서 핵 발사 버튼을 누른다면 어찌될까.

미국에서 영어로 새롭게 출발하자며 렛츠고를 했다가 북한에서 선제공격으로 오인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단순한 오해뿐만 아니라 각국의 정체성, 의사소통, 사회통합, 교육 및 개발에 대한 복잡한 의미를 지닌 언어는 사람과 전 지구적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분야다.

특히 다문화가 글로벌 세계에서 폭넓게 자리잡고 있는 가운데 조화로운 의사소통은 필수적인 요소라고 볼 수가 있다. 번역에도 상당히 세부적인 영역이 있는데 글자나 말에 대한 통역, 작가, 프로덕션, 기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감대 형성을 돕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FIT(Federation Internationaiedea traducteurs)에서 해마다 주제를 정해 번역의 날에 대한 행사를 개최하고 있는데 올해는 장벽 없는 세상, 문화구축, 이해 그리고 지속적인 평화를 위한 언어전문가의 역할로 정했다.

만약 번역이 없었다면 성경에 담긴 내용들이 어찌 일반에게 보편화 되었을 것이며 불경이 어찌 부처님의 자비를 온 세상의 전파할 수 있었을까. 필자가 지난 2008년 In Korea 라는 주간신문을 창간해 발행한 적이 있었다. 매주 수요일 16면의 신문을 발행하는 지면에는 하나의 기사를 영어, 중국어, 한글로 번역하여 보도하다보니 100가지의 기사를 실을 수 있는 지면임에도 30가지도 채 못 싣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는 국내에서 최초로 시도한 다국어뉴스로 항공기, 선박, 국내 외국인들이 볼 수 있도록 무료로 배포할 계획을 세웠으며 광고시장도 호텔, 여행사, 관광명소 등을 대상으로 노크할 계획이었다.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었다가 암초에 걸린 게 번역이었다. 취재, 편집, 인쇄, 배달 비용을 다 합쳐도 번역비용이 높았으며 한 단어라도 잘못된 번역에는 책임이 뒤따르는 만큼 검수과정이 필요했다.

결론적으로 출발후 몇 번 발행하지도 못 하고 2009년 3월 창간한 것이 안산, 시흥, 광명을 대상으로 발행하는 광역 주간신문 ‘서부뉴스’였다. 3개 국어로 고민하다 한글만 쓰니 수월했고 우리글의 과학적 우수성을 직접 체험하게 됐다. 전세계 많은 나라에서 한글을 중심으로 문자를 사용한다면 편리하고 작은 내용까지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으니 적어도 대한민국의 한글이 문자 올림픽에서 연속 우승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음이다.

한글이 번역 필요성의 최고 위치에 올라서는 그날, 글을 읽는 말이 뒤따를 것이고 말을 하다보면 우리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적 찬란함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볼때 오늘은 참으로 중요한 날이다. 필자가 올해 2월 대선후보로 출마하면서 공약한 것이 한글의 수출이었다.

자원도 경제력과 국방력도 빈약한 나라가 딱 한가지 독창성 있는 자산이 있다면 우수한 한글이었다. 독자들은 몇 개 나라의 번역을 할 줄 아시는가. 필자는 고구려, 백제, 신라 언어를 할 줄 안다고 큰소리친다. 오래 전 베트남으로 단체여행을 갔다가 일행 모두가 베트남 언어는 물론 영어조차 못해 부득이 필자의 콩글리시 실력으로 일정을 소화한 적이 있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영어라도 배워둘 걸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물론 그때 뿐이고 막상 현실로 돌아오면 바쁜 일정 속에 미루기 마련이었다. 적어도 영어, 일어, 중국어, 3개 국어만 술술 한다면 먹고 사는 걱정만큼은 없으리라. 뭘 해도 밥은 먹을 것이며, 현세대는 못하더라도 다음세대에서 유학을 권유하는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외국에서 한글을 배우기 위해 모여드는 그런 날을 만드는 것이 필자의 욕심이다. 과거 죽어라 영어단어를 외우고 단어장을 씹어 삼키는 노력이 있었다. 먹고 살기 위해 타국의 언어를 배워야 했던 과거 조상들의 어려움도 있었고 또 강제로 우리말을 빼앗겨 일본어를 사용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문명의 발달도 스마트폰에도 번역기 앱만 쓰면 소통에 어려움이 없는 세상이 됐다. 심지어 번역을 위한 화면을 지정해 어떤 나라의 글자든 갖다 대기만 하면 원하는 국가의 글로 번역되는 세상이 됐다.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 동물이나 사람이 교통하던 날도 있었다. 지금처럼 사람이 독차지하던 자연환경 속에서 소리만으로 욕심없이 공존하던 시절, 성경에도 그러한 문구는 많고 군사용 쪽지를 전하는 비둘기나 시키는 대로 냄새 하나만으로 적군의 위치를 찾아내는 탐지견이 그러하다.

정작 소통이 필요한 가족이나 단체에서 입을 함구하고 뜻을 차단한다면 오해와 불신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고 불신이 불신을 낳는 사회가 될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외국어 번역도 중요하지만 가까운 가족과 지인들 간에 소통을 한다면 이는 현실적인 통역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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