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시월의 마지막 밤
[덕암칼럼] 시월의 마지막 밤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2.10.31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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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가수 이용씨가 부른 ‘잊혀진 계절’의 한 대목이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연령층을 벗어나 이 노래는 많은 이들이 가을을 만끽하는 주제가처럼 쉽게 연상되는 곡이다.

1982년 히트한 곡이니 약 40년이란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국민가요 중 한 곡인데 당시 무대에 오른 이용 가수의 등장에 오빠를 연호하며 환호성을 질렀던 여고생들은 지금 50대 후반을 넘어선 중년이 되었으리라. 10대들의 열광은 이미 오래전부터 가요계의 탄탄한 기반이 되어 음반 판매나 기타 인기차트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바 있다.

한창 뜨거운 피가 흐르는 10대·20대들의 열정과 끼가 훗날 각자의 소질을 계발하고 때로는 세상을 놀라게 하는 창의력의 기초가 될 수 있음에도 대한민국의 현실은 그저 자제, 절제, 인내, 억누름이 장악하고 있기에 마땅히 분출할 곳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인가 어쩌다 축제나 공연이 있을 때면 해당 지역의 숙박비가 천정부지로 올라가도 온갖 애를 써가며 관객이 되려는 노력이 가히 놀랄만하다. 이미 우리 것을 버리고 오로지 미국의 문화·예술이 자리 잡는 건 피할 수 없는 대세다. 기실, 진행 중인 모든 행사나 축제가 그러하고 비단 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우리 것은 왠지 허접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인 상황이 현실이다.

특정 분야에 몰입한다는 것은 잠재적인 DNA를 활성화한다는 측면에서 권장할 일이다. 하지만 어차피 미쳐야 할 에너지가 있다면 그 방향을 제대로 잡아보면 어떨까. 엊그제 29일 밤 발생한 서울 이태원 참사는 이유여하를 떠나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한창 피어날 10대·20대 꽃다운 나이의 연령층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생목숨을 잃었다는 것은 희생자에게도 비통한 일이지만 유가족들 입장에서 보면 더더욱 기가 막힐 일이다. 이미 언론에는 서서히 마녀사냥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나 진배없는 뉴스가 생산되고 있다.

탈출구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인근 상가들의 외면, 아비규환의 비명소리에도 여전히 음악소리에 춤을 추고 있었다는 비윤리적 행태, 불법주차들로 인해 4m 폭의 도로에 소방대원들이 진입할 수 없었다는 등 구실을 찾는 언론보도가 속속 이어지고 있다. 평소 같았으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원망의 표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해 가고 있다.

이번 사고의 원인이나 속출하는 사망자의 신원이 하나 둘씩 밝혀진다면 온갖 논란이 확산될 우려가 크다. 근본적으로 핼러윈 축제의 한국 상륙이 언제였던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청소년들과 젊은층들의 영역에 쓰나미처럼 밀려와 자리 잡았던가.

그 중심에 어떤 과정이 있었으며 근본도 모르는 축제를 부추기는 상업적 전략은 무엇이었으며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들은 이러한 무분별 문화 도입에 어떤 검증과 거름망 역할을 했던가. 진정한 문제는 벌어진 참사도 중요하지만 제2의 서울 이태원 참사는 얼마든지 재발할 소지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미 세계적으로 압사 참사는 여러 곳에서 유사하게 발생한 바 있다. ‘사후약방문’이라 했던가. 죽은 다음에 약국에 간들 무슨 소용이 있냐는 속담이다. 압사로 인한 대형 참사는 건국 이래 처음이다. 같은날만 해도 보수·진보층의 군중집회가 있었고 그 전에도 촛불집회는 물론 노동자 대회 등 많은 인파들이 광장에 모였지만 압사로 인한 사고는 없었다.

당연히 설마 했을 것이고 순식간에 벌어진 비극을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으리라. 이렇듯 대형사고는 예고도 없고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재발할지 예견할 수 없는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3년 동안 움츠리고 있던 인파라서 사고가 생겼을까. 아니다. 그 어떤 소재도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필자가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면에는 문제가 발생하면 티끌만한 원인도 마녀사냥감으로 떠올랐다가 다시 잠잠해지거나 시간이 지나면 그러한 문제가 아무것도 아닌 일상이 되는 냄비 근성이기 때문이다. 참사의 원인은 시기에 따라 이유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어서는 안 된다.

제대로 원인을 찾아서 명확한 규제조치가 따라야 하는 것이지 침소봉대하여 특정인이나 분야에 뒤집어 씌워서도 안 된다. 특히 중대한 실수를 덮기 위해 작은 원인을 확대하여 뒤집어 씌우는 일은 더더욱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세계 각국 정상들이 속속 애도의 뜻을 표해온 만큼 서울 이태원 압사 사고는 대한민국 사고사에 사상 초유의 기록으로 남게 됐다.

한국인의 정서상 듣도 보도 못한 외국 축제에 덩달아 춤추다 벌어진 어이없는 참사였다. 30일 오후 5시 30분 현재 153명으로 늘어난 사망자의 숫자도 그러하지만 누구보다 유족들의 마음은 어떨까. 가히 짐작도 못할만큼 비통하고 그 충격은 국민들 전체에 세월호 침몰사건 다음으로 크게 와 닿을 것이다.

이 지면을 빌어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유족 분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아울러 같은 참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관계당국의 모든 담당자들은 현실적인 대안을 내 놓아야 한다.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증언을 빌리자면 언덕에서 내리막길로 인파들이 밀려 내려가기 시작했고 한쪽에서는 고성의 음악소리가 깔린 사람들의 비명소리를 뒤덮었다고 한다.

내리막 아래쪽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상황에도 위쪽에서는 여전히 춤을 추고 있었고 이 상황에 대해 극단적인 이기심이 지배하는 아비규환이었다고 한다. 16살 피해자도 있었던 해당 현장은 폭 4m, 길이 45m 밖에 안 되는 좁은 골목이었다. 153명의 사망자, 해밀톤 호텔 앞 골목은 이제 죽음과 추모의 기억으로 남게 됐다.

아랫부분의 사람들이 죽어가는 와중에도 5겹·6겹의 인파들이 덮쳐 비명소리가 처절하게 밤하늘을 울부짖을 때도 군중들의 밀림은 계속됐다. 이번 서울 이태원 압사사고의 원인을 세계적인 압사사건과 비교해 볼 때 나만 살고 보자는 이기심이 가장 큰 원인이다.

짓눌려 소리치는 사람과 그 위에 덮쳐진 사람, 그리고 그 위에 덮쳐진 사람, 맨 나중까지 몸무게를 실어 간접 살인이나 마찬가지인 불특정 다수의 인파들 모두가 가해자인 것이다. 자연재해가 아닌 이상, 축구장의 폭동 사태처럼 경찰의 강제 진압이 아닌 이상, 축제장에서 죽기 살기로 사람이 사람을 눌러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슬프고도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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