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외우내환 민생은 어디로
[덕암칼럼] 외우내환 민생은 어디로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2.11.07 0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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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외우내환을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안팎으로 근심과 환난이 끊이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밖으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유가, 식량문제가 간접적으로 우리나라에 타격을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의 미사일이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나라의 공해상으로 날아들고 있는 가운데 한반도는 전운이 감도는 불안감이 조성되고 있다.

양국이 어떤 식이든 실수로 방아쇠를 당기면 휘발유에 불씨 던지듯 할 터인데 정작 자국의 국민들은 이를 불꽃놀이 구경하듯 남의 일처럼 여긴다. 실제 북한의 미사일이 미국 하와이를 공격하겠다고 엄포를 놓을 때 하와이 주민들은 사재기는 물론이고 미국 본토까지 긴장하던 날도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일체의 사재기가 없었다.

배짱이 좋은 것인지 만성이 된 것인지 구분할 수 없으나 현재 남북의 대치 상황을 바라보는 국민적 견해는 아무런 요동이 없다. 외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책임소재를 찾느라 더 분주하다.

안으로는 이태원 참사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과연 어느 과녁을 향하느냐에 따라 분노의 표적이 될 것이고, 보란 듯이 지난 5일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에 이재명 대선후보 캠프의 상임 본부장을 맡았던 자가 집회를 주도하자 더불어민주당 현역 의원 10명이 집회 참가 독려에 활용되는 텔레그램 1번방에 포함됐다.

이태원 참사 추모를 위한 집회가 윤석열 대통령 퇴진 운동으로 바뀌면서 전국에서 전세버스가 대대적으로 동원되었고 주최측은 부인했지만, 국민의힘은 이에 대한 성토를 아끼지 않았다. 국민들은 모른다. 먹고살기 바빠서 이태원이 어찌 생겼는지 참사의 원인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참사의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두 번 아프게 하는 행동은 정치권에서 도맡아 하고 있다. 이번 이태원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이 무엇일까. 특정인이 주도한 총이나 칼도 아니고 자연재해로 인한 물이나 불도 아니다. 정치권은 더더욱 아니다. 정확히 짚자면 망자가 된 피해자들을 불특정 다수인이 체중으로 눌러 지목할 수 없는 가해자들이 상황 판단을 못한데 있는 것이다.

모두가 입을 다물어야 한다. 어처구니없는 참사에 갑론을박 하는 자체가 요란 떠는 것이며 온 사방에 분향소 차려놓고 정치인들의 얼굴도장 찍는 인주가 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슬퍼하지 말자는 게 아니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재발방지를 위한 정부의 노력을 무시하자는 게 아니라 거리마다 검은 바탕에 현수막을 달고 국회의원들의 이름을 게시하는 모양새가 이런 와중에도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도구로 사용되는구나 싶은 가증스러움이다.

한번씩 대형사고가 터질 때마다 누구는 대놓고 울고 누구는 속으로 웃었다. 누구는 고맙다고 했고 누구는 미안하다고 했다. 수 십 만명의 희생자들이 전쟁터에서 생목숨을 잃고 징집을 피해 자국의 청년들이 망명을 호소하는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에 조문을 표해왔다.

조문 자체는 고마운 일이지만 외교상인지 우크라이나 편을 들지 말라고 경고까지 했던 러시아의 회유 외교가 아닐까. 외신들이 바라보는 이태원 참사는 사상 초유의 사태이지만 이를 두고 책임 전가 전쟁을 벌이는 사태 또한 외신들 입장에서는 상당한 뉴스거리가 될 것이다. 이래서는 안된다.

156명의 희생자가 정당 전쟁의 도구로 전락해서는 안된다. 304명의 세월호 희생자들이 정치도구로 전락했던 과거가 있었다. 추모의 본질이 훼손되어 정권이 바뀌는 도화선이 된다면 앞으로도 대형사고 터질 때마다 수습은 뒷전이고 책임 소재로 마녀사냥을 벌이는 일만 되풀이 할 것이다.

사람 목숨은 소중한데 한꺼번에 젊은 사람들이 희생되어야 주목을 받고 보상 대상이 되며 국민적 조의와 애도를 받아야 되는 것은 아니다. 통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듯 한국의 지난 2021년 자살 사망자는 1만 3,352명이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우울감 증가 등이 원인으로 손꼽히고 있다.

청년, 노인 등 정신건강 취약계층 및 자살 고위험군의 적극적 발굴과 지원대책이 시급하다. 연령별로 보면 50대부터 노인이 될수록 높아지고 있다. 노인들의 죽음은 당연하고 젊은이들의 죽음만 애도의 대상이 되어야 할까. 어제도 30대 젊은이가 인천대교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인천대교에서만 5년간 41명이 투신한 언론보도가 연이어 대서특필됐다.

목숨은 다수가 한꺼번에 사망했다고 중요하고 젊은이라고 중요한 건 아니다. 단 한 사람의 목숨도 중요하며 나이가 든다고 그냥저냥 넘어갈 일은 아니다. 자연사가 아닌 경우 누구의 목숨이든 귀한 것이며 실질적인 대책이 중요하다. 인천대교에 난간을 설치한다고 막힐 일도 아니다. 그것을 미봉책이라고 한다.

마치 손으로 두 눈을 가림으로써 안 보이는 하늘이 없다고 하는 것과 같다. 원인은 돈이든, 기타 고민이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것을 대책이라고 세우는 것인지 아연실색이다. 세월호 304명의 희생자와 이태원 156명의 희생자들은 아무 죄 없이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것이나 진배없다.

그렇지만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버릴 정도라면 그럴 수밖에 없을 만큼 몰리고 몰리다 선택한 것이다. 필자도 과거 수차례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한 것일진대 세금을 모아 적시적소에 쓰는 것 중 생명존중을 위한 현실적 대안과 효율적 예방에 사용하는 것이 정치의 기능과 역할이 아닐까.

민생의 현주소가 이럴진대 술자리를 놓고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다. 서울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국정감사에서 처음 제기한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국회의원도 그렇지만 오마이뉴스에 보도된 내용을 인용하자면 특정 제보자가 청담동 술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의 목소리와 마신 테이블 위치, 술집 주변에 주차된 차량과 경찰의 경호범위는 물론 주변 차량 블랙박스에서 대통령이 술집으로 들어가는 장면까지 있다면 어쩔 것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반대로 청담동 술자리의 참석자로 지목된 대통령은 가짜뉴스라고 일축했고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장관 자리를 걸고 사실이 아님을 주장했다.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정당의 전쟁보다 민생을 위한 소재가 이렇게 빈곤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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