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없고 검소하게 산 인생
부패없고 검소하게 산 인생
  • 원춘식 편집국장 kmaeil86@naver.com
  • 승인 2010.02.02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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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한지 30년이 지났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엇갈리고 있다. 하지만 그의 후임자들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달리 평가하고 있다. 후임 대통령들의 경우 각종 비리에 연류 됐다. 반면 박 전 대통령의 경우 30년이 지났지만 감춰진 재산은 지금까지 발견된 것 없다. 찢어지게 가난하게 자란 그는 그처럼 방대한 자금을 관리하면서도 왜 치부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성격을 잘 설명해주는 것은 그의 역사관이다. 그것은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했던 부친의 생애에서 시작된다. 그의 모친은 어린 박정희에게 아버지가 그때 처형당했더라면 너는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라곤 했다. 부친 박성빈은 부패하고 무능했던 조선왕조를 뒤엎으려 했던 혁명운동에 참여했던 인물이다.
역사는 그에게 두 가지 측면에서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첫째는 조선 왕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다. 부친의 행적에 대해 듣고 이순신 장군을 음해하는 얘기를 읽은 박정희는 구시대의 질서와 행태를 배척할 수밖에 없었다. 박정희는 시련을 이겨내는 강한 의지를 타고 났다. 20리 산골길을 혼자 걸어서 등교해야 했던 어린 박정희가 우등생이 되었고 줄곧 급장이 되었다는 데에서 그의 성격을 알게 된다.
그가 읽은 역사책의 주인공, 마음속의 영웅은 이순신장군과 나폴레옹이었다. 아버지는 프랑스에 대항해서 싸왔던 코르시카 반군에 참여했던 인물이지만 나중에 아들을 프랑스의 육군사관학교로 보내 프랑스의 황제가 되게 했다. 박정희의 이순신흠모는 아산 현충사에서 볼 수 있다.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에서 최고의 엘리트교육을 받았다. 그는 일제시대에 태어나 일본식 교육을 받았고,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기에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갔을 뿐이다.
박정희 몸속에는 이란성(二卵性)쌍둥이가 들어 있었다. 하나는 총을 좋아한 냉혹한 혁명가다. 다른 하나는 서민의 가난탈출을 꿈꾸고 서민과 어울렸던 막걸리형 인간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한국이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혁명이 불가피하다고 믿었다. 그리고 수단으로 총과 개발독재장기집권을 택했다. 그는 권력에 대한 위해(危害)요인을 냉혹하게 제거했다. 그러나 박정희의 쿠테타와 독재는 자신의 영화(榮華)를 위한게 아니라 근대화혁명이라는 게 많은 학자들의 평가다.
독재였지만 박정희, 육영수는 필리핀의 마르코스 이멜다와 달랐다. 청와대엔 ‘3,000켤레 구두’ 대신 파리채와 벽돌이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전기를 아끼느라 에어컨을 틀지 않고 창문을 열어놓았고 파리채로 파리를 잡았다. 욕실 변기 물통엔 벽돌이 들어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부패 없고 검소하게 산 인생(人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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