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연천, 국도건설계획 누락 유감
[특별기고]연천, 국도건설계획 누락 유감
  • 경인매일 webmaster@kmail.com
  • 승인 2006.08.31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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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균형발전 먹구름 특정지역 위화감 우려
우리나라가 고조선 이후 반만년의 역사가 이어져 오는 동안 수백차례 외침이 있었다 한다.

그 중에서도 전국토가 침략당한 경우는 조선시대에 이르러 원에 의한 병자호란과 왜에 의한 임진왜란 등 두 차례라는 사실이다.

역사의 자료상 확실치는 않으나 997번의 외침에서 단 두 차례만 점령을 당한 것이라면 이는 실로 대단한 전적이 아닐 수 없다.

결론은 외적의 침략에 대비를 철저히 해 굳건한 국토 수비에 최대의 성과를 거두었다는 뜻인데 그 이면에는 도로와 관련된 사연이 있다.

우리나라는 전국토의 70% 이상이 산악으로 형성된 지형지세로서 선조들은 의도적으로 도로를 뚫지 않고 도로의 개설은 국법으로 다루었다는 것이다.

단지 우리만이 알 수 있는 소로만을 만들어 사용하면서 외침이 있을 시는 험준한 지형지세를 이용해 도로가 없는 곳으로 적을 유인해 고립 시킨 후 그 세력을 약화 시키면서 섬멸하는 등의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도로와 연관해 존재 하였던 것이다.

그 옛날 수나라의 양제나 문제도 대군을 동원해 고구려를 침공했다, 실패했고 그 후 당나라의 태종도 고구려를 넘보다 실패함으로서 이를 계기로 주변 강대국이 망하고 새로운 왕조가 탄생되는 결과를 낳았다. 여기에는 도로가 없는 우리나라의 방어전술이 주요했던 것이다.

반대로 조선시대 선조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몇 년 전에 발생된 것으로 한반도 침략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왜구가 어느 날 갑자기 해안변이 아닌 경기도 여주 땅에 나타나 노략질을 했다.

조정에서 관군을 급파해 섬멸한 후 사영을 알아본 즉, 당시 강릉 현감이 개인적으로 한양 가는 길을 수월하기위해 고을 백성들을 동원해 대관령을 넘는 도로를 개설한 것을 왜구들이 정보를 입수해 그 도로를 통해 아무런 저항 없이 그 당시 여주목까지 도달한 사례를 볼 때 도로는 단순한 수송은 물론 군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시설물 이라고 판단된다.

세계 최초의 고속도로는 독일의 나치 정권에서 탄생됐다.

그 당시 히틀러가 국가경제 발전을 위해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자동차 전용도로인 아우토반 건설에 착수해 공사를 진행 중 세계대전이 반발 하자,군수 물자의 신속한 공급을 위해 군 작전 전용도로로 서둘러 개통함으로서 오늘 날 라인 강의 기적 이라는 독일 경제 부흥의 원동력이 되었다.

우리나라도 독일의 발전을 본받아 박정희 정권 시절, 수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함으로서 오늘 날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가 있었다.

세계 각국이 경악할 정도의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게 된 근본이 바로 도로였다는 것을 실감 하면서 저 자신도 도로 업무를 다루는 입장에서 자부심을 느끼는 한편, 아쉬운 것은 근간에 도로를 건설 하면서 국가전체의 균형 발전 보다는 지역적이면서 나누어 먹기 식의 공사가 일부 진행되어 도로건설의 본질적인 의미가 퇴색되는 것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런 맥락에서 경기북부권의 대동맥이라 할 수 있는 서울지방 국토관리청에서 시행 하고 있는 국도37호선 4찬선 확, 포장공사의 문산-가평 구간의 노선 중 연천지역만 누락시킨 부분은 지역의 균등발전 이라는 취지를 무색하게 할 뿐 아니라 특정지역에 대한 소외감과 위화감을 유발한다는 차원에서 시정돼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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