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鯨)을 칠' 중국의 역사왜곡
'경(鯨)을 칠' 중국의 역사왜곡
  • 이학근 kmaeil@
  • 승인 2007.06.10 19: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국 사람들의 생활속이나 우리 속담에서 흔이 사람에게 해로운 일과 나쁜 죄를 저지른 자에게 악담으로 '경(鯨)을 칠놈' 이라고 멸시하고 호통을 친다. '경'이란 죄인의 이마에 먹물을 들이는 형벌을 말한다고 한다. 그러니 '경을치면' 얼굴을 들고 다닐수 없게 된다. 중국은 2004년도에 이어 2006년도에 1909년 9월 당시 청국 북양대신 이홍장과 왜국(일본)총리 이등박문사이에 왜국이 부산, 서울, 평양 신의주 만주봉천을 잇는 대륙진출 철도인 경의선 안봉선 철도부설권과 조선 영토인 동북삼성 길림성, 요녕성, 흑룡강성 3성의 조선 영토를 청국에 활양해 주는 만주협약을 일방적으로 조선의 사전사후 양해나 협조없이 이루어졌는데, 일본제국 주의 정권은 이미 청일전쟁 러일전쟁에 승리한 이권으로 조선의 외교권을 강압적으로 빼앗는 1905.11 을사조약을 조선 정부와 맺고 나서 일어난 일이다. 일제 강점기 36년을 지나 1945.8.15 유엔군 승리로 일제가 패망하고 중국은 미국 소련과 같이 전승국이 되었는데 일제강점기 36년동안 러시아 만주 중국내륙지에 조선 임시정부 산하 조선독립군과 동맹협약하여 일제에 항거 독립투쟁을 같이한 혈맹지국인 중국이 1950.6.25 전쟁시 중국군을 북한공산군에 투입하여 북한의 남한 적화통일 전선을 도왔고 1953.7.23 휴전당시 북한과 같이 중공군 유엔군 휴전을 맺고 한반도 통일전선을 방해해 왔다. 1945.8.15 중국은 혈맹국인 조선에 1909년 9월때 여간 동북3성을 조선에 돌려주어야 했었다. 최근에 한국의 눈부신 발전과 남북통일의 조짐이 보이자 동북3성 반환청구를 예상하고 2002년에 동북공정을 발표하여 동북삼성의 옛 고조선 고구려 발해는 중국의 변방의 역사라고 주장한데 이어 2006년도에는 한술 더떠서 고구려 발해국은 중국의 변방국이며 고구려가 망할때 당시 668년 조선의 신라와 중국의 당나라국이 변합하여 멸망시킬 당시 수도가 지금의 평양이니 북한의 평양까지 중국의 변방이라고 주장하고 고구려 옛 서울 만주읍안에 있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와부근 장군능 벽화와 북한의 강서 고분벽화 등을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록시켜 공식적으로 세계에 중국 영토화로 공인작업에 들어갔다. 우리국회 한나라당 소속 김문수의원(현 경기도지사)이 2004년 조사단을 관광객으로 가장하여 동북공정 현장즙안 광개토대왕 비를 비롯 고분전 발해  유적지를 할빈(당시 발해수도 상경용천부)까지 답사하고 돌아와 국회 외교통상부에서 반기문 장관(지금 유엔 사무총장)에게 중국의 동북공정 획책으로 역사왜곡과 우리 영토실지회복에 대한 대정부 질문을 끈질지게 하여 대책을 강구하여 외교부에서는 중국과 한국정부간의 외교통상 업무나 국민 감정에 악영향을 미칠 염려가 있으니 동북공정이나 우리나라 고대사 고구려 발해사를 더이상 왜곡 거론치 않기로 했는데 최근 또 고조선과 고구려에 이어 고려 역사도 중국의 고대 역사 일부라고 주장이 중국학계에서 제기됐다 한다. 중국 지린(길림)성 사회과학원 산하 역사연구소의 스창러(사장악)연구원은 과학원이 주관해 발행하는 격월간 역사지 '동북사지' 3호(5~6월)에 실린 '당나라 명종이 고려태조왕건의 족적을 밝히다' 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한다. 논문은 우선 왕건이 한반도 토착 신라인의 자손이 아니라 중국 화이허(희하)유역에서 온 한인의 후예라고 단정했다.
화이허는 황허(황하)와 창강(장강) 중간지점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강이다. 논문은 태조 16년(서기 933년) 당명종이 보내는 책봉 조서를 근거로 제시했다 하는데 즉 조서의 경은 장희의 무족이며 장해의 웅번이란 구절에 나오는 '장희'가 바로 회화유역을 의미한다는것이다. 논문은 또 조서 가운데 '주몽의 개국땅의 상서로운 조짐을 쫓아 그 군장이 되고 기자가 이룩한 번국의 자취를 밟아 행복과 화락을 펴도다' 라는 구절을 지목하면서 '이말은 고려가 중국 출신 통치자가 세운 나라라는 뜻'이라고 단정했다 한다. 논문은 그이유로 '왕건의 건국은 주몽(고구려 시조)의 개국과 기자의 입국에 직접 비유한 것은 한반도 역사에서 이들 두사람에 이어 또 한 사람의 중국 출신 통치자가 생겼다는 의미이기 때문' 강변했는데 중국 중앙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던 '동북공정'이 간판을 내린후 지린성 사회 과학원 후속 및 응용 연구를 추진하고 있는데 중국 사학자 사마천이 쓴 '사기는' 712년 발해 시조 대조영의 동생 역사학자 대야발이 쓴 '한단고기'에서 BC323년 번조선(중국 요동성 일대 점유) 제 69세 단군 수안의 아들이 없자 장군 기후가 70세 단군으로 즉위하여 이때부터 기씨 조선이 BC108 지금의 북경 부근에 있던 단군조선의 후예위만조선이 만주로 한무제 밀려오고 부여국의 황손고모수가 화백의 딸 유화와 사이에 탄생한 고주몽이 BC58년에 고구려국을 개국 졸본 국내성의 만주지역과 중국내륙지 까지 번성한 나라가였고 918년 6월 신라왕손 궁예를 몰아내고 개성에서 고려국을 세운 왕건은 선조대대로 무역상을 하는 집안으로 송악 개성 토착민이다. 아버지 왕릉과 어머니 몽녀 한씨 사이에 877년 1월 태어났다. 조부 작제건 배를 타고 중국 무역을 갔을때 중국인들이 그를 향해 이미 '고려인'이라고 하였고 그 당시 고구려와 고려를 같이 중국 일본에서 호칭한 것으로 코리아(korea) 나꼬레(core)  등의 알파벳식 명칭도 고려가 아니고 고구려로 보고 고려는 고구려 후예로 본다.
'경(鯨)을 칠'  중국의 역사왜곡 중국학자들 제발 역사를 왜곡 마라 역사는 거울과 같고 역사는 사실이다. 우리학계 학자 정부는 점잔만 빼지말고 정정당당하게 우리 역사 주장하고 알려주고 정립하자. 역사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이학근
이학근
kmaeil@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