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평행선을 달리는 철도 레일의 의미
[덕암 칼럼] 평행선을 달리는 철도 레일의 의미
  •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1.06.28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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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지금으로부터 약 120년 전인 1900년, 일본에 의해 한반도에 처음 철도가 생긴 이래 1945년 광복이 되기까지 약 6,300km의 노선이 설치됐다.

이후 목재 땔감으로 국토의 산천이 헐벗던 1955년 석탄이 본격 생산되면서 태백선이 개통되었고 기차가 터널을 지날 때면 콧구멍까지 시커메지던 증기기관은 1967년부터 디젤 기관으로 발전(?)되면서 1974년 정선선까지 이어졌다.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필자는 방학 때 마다 철암역에서 친척집인 춘양역까지 수시로 무임승차를 시도했고 남는 돈은 짭짤한 군것질의 비상금 역할을 했다.

우연인지 그렇게 지은 죄는 세월이 흘러 2009년부터 철도 사랑에 푹 빠졌고 주간신문 (주)서부뉴스를 창간하면서 철도인의 다양한 에피소드와 코레일의 고객 단장으로 임명되어 나름 철도 발전에 일조할 수 있었다.

처음 주간신문 서부뉴스를 창간하고 인구 65만의 경기도 안산에서 어떻게 하면 대중들의 공감대를 살 수 있는 신문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얻은 아이디어가 철도였다.

1년이 넘도록 철도에 대한 관심과 집필로 수많은 특집을 보도하면서 느낀 점은 코레일에 종사하는 많은 분들의 소박한 삶이었다. 정해진 틀 속에 묵묵히 일하면서 누구 하나 알아주는 사람 없어도 박봉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잘한 건 당연하고 어쩌다 탈선사고나 사소한 문제라도 발생하면 여지없이 언론의 직격탄을 맞았다. 물론 대중교통에는 철도 말고 버스나 기타 항만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명절이나 기타 휴가철이면 여지없이 국민들의 가장 큰 다리가 되어 왔다.

총 16면의 지면 중 코레일에 2개 지면을 고정으로 배정하여 싣기 시작한 철도 사랑은 한번 불이 붙자 온갖 명분으로 이야깃거리가 생산되는 보물창고였다. 열차 시간표 고정 게재, 시인들과 함께 작품을 전시하여 대합실과 탑승공간을 문화예술의 전시장으로 활용했다.

처음에는 절대 거절하던 관리역장도 필자의 제안에 호감을 표했고 그렇게 시작된 역무 시설의 활용은 명절 때 마다 역 광장에서 콘서트를 개최하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명절에 고향에 가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개최된 콘서트는 인디언 아파치와 필자의 유머 섞인 사회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역무원들도 한복을 입고 커피를 대접하는가 하면 모처럼 경직된 분위기를 탈출한 철도인들의 표정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새벽을 여는 철도인, 명절 때마다 격무에 시달리는 역무원들의 애로사항,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간이역을 지켰던 사람들, 철도의 급성장에 하나 둘씩 기계화되면서 사람은 줄어들었으나 여전히 철도인 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과 정성은 변함 없었기에 많은 국민들이 편안하고 안전한 여행이 가능했다.

수 많은 부품으로 제작된 기관차의 하부와 길게 평행선으로 연결된 레일 위를 달리는 열차는 타본 승객들에게 셀 수 없이 많은 추억을 선물했다.

필자가 참여하여 기획된 상품 중에도 태백과 분천을 잇는 V트레인과 영주~제천을 잇는 O트레인이 있었고 이후 영동의 와인트레인 등 전국 각 지역의 특산물과 명물을 배경으로 다양한 상품이 속속 출시됐다.

유년기 시절 협곡을 달리던 추억으로 제안된 V트레인은 탄전지대에서 공단도시로 이주한 많은 광부들의 회귀본능을 살리는데 일조할 수 있었고 2013년 영주와 제천을 거쳐 강릉을 경유하는 수학여행 코스는 식상한 제주코스 대신 내륙과 동해안의 문화, 관광을 겸하는 코스로 개발됐다.

일명 동녘관광, 이스트 투어라는 상호로 여행사까지 개업하고 2014년 3월 처음으로 경기도 안산에서 모 중학교장의 수락으로 현지답사까지 추진되었던 국내 열차여행은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면서 모두 물거품이 됐다.

서울·경기의 학생들이 강원도 내륙을 수학여행지로 삼아 탄광지대의 지역경제 활성화와 대한민국 에너지 산업의 변천을 공감하게 하려는 꿈은 그렇게 수포로 돌아갔고 팸투어로 다녀왔던 영주 선비촌의 어느 식당 주인과 한 잔의 술로 마감했다.

오늘은 ‘철도의 날’이다. 한국 최초의 철도 창설일자인 1894년 6월 28일이 기원이니 약 130년 이라는 역사를 가졌다. 총 6,100km 중 전철이 5,000km인데 그 긴 노선을 달리는 철도는 사람이 타는 객차와 화물을 싣는 화차로 구분될 수 있다.

국내 물동량의 90%를 담당하고 있으니 보이지 않는 기차 레일 위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진행되고 있는지는 알고가자. 어떤 일이든 절로 되는 건 없으니 오늘 만큼이라도 철도 인에 대한 감사와 격려를 나누면 어떨까.

주변의 친구나 선·후배, 친척이라도 코레일에 근무하는 사람이 있다면 수고 많다던가, 늘 안전하게 잘 근무 하라던가 말이다. 돈 들어가는 것도 아니지만 사람의 마음 이란 게 기념일 날 말 한마디면 감사를 느끼고 그렇게 느낀 감사는 다시 돌고 돌아 훈훈한 사회가 되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 시골 간이역에서 둥근 정차표지판을 주고받는 풍경이야 없어졌지만 좁은 열차 복도에 리어카를 끌고 다니면서 오징어·땅콩을 팔던 홍익회 판매원의 구수한 멘트는 기억에 남아있다.

짧은 시간 정차를 틈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우동을 게 눈 감추듯 한 그릇 해치우던 시절, 열차 복도에 둘러앉아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러도 같이 박수를 쳐 주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그 열차는 북한과 러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달릴 수 있는 시대로 가고 있다.

항공기 타지 않고도 전 세계를 다닐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하며 철도인 들에게 감사의 뜻을 남긴다.

평생을 달려도 만날 수 없는 열차 레일이 한쪽이 없으면 남은 한쪽도 무용지물이듯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교훈의 상징으로 여겨보자.

김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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