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전쟁보다 더 한 멸종의 징조
[덕암 칼럼] 전쟁보다 더 한 멸종의 징조
  •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1.08.27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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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과거나 현재나 결혼식에서 한결 같이 병행되는 풍습이 있었으니 바로 폐백이다. 예식장에서 결혼사진을 찍고 난 다음 드레스와 턱시도를 한복으로 갈아입은 신랑·신부는 식장에 별도로 마련된 폐백실로 자리를 옮긴다.

원래 ‘폐백’이란 혼인을 치르고 신부가 시집으로 가서 첫날밤을 보내고 아침에 신부 집에서 장만해온 음식을 드리고 시부모에게 절을 올리는 현구고례라는 혼인절차였다.

이 과정에서 신부가 가져온 폐백음식은 대추, 밤, 육포인데 대추는 자손의 번창을 의미하고 밤은 한 송이에 3개나 들어있어 아들을 삼형제로 낳으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지금이야 많이 변해버린 예식문화에 소중한 우리문화가 송두리째 사라져 가고 폐백에서 절값이 신혼여행을 다녀오는 경비조달의 절차로 자리 잡았다. 아마 절값이 없었다면 진작 생략되었을 폐백이었지만 생존의 이유치고는 무색한 지경이다.

결혼해서도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회임을 위해 백일기도를 하거나 달이 밝은 날 정한수 떠 놓고 천지신명에게 기도를 하는 등 치성을 드렸던 우리네 조상들의 정성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다.

때로는 불임의 원인이 남편에게 있을지도 몰라 온갖 한약재는 물론 정력에 좋다는 보약이나 해구신까지 찾아먹는 사례도 빈번했다.

아이가 늦으면 남성의 성기 모양을 한 자연석을 찾아다니거나 배가 불룩한 동상을 만지며 임신을 고대하던 시절도 있었으니 작금에 시대 이런 글을 쓰다간 라떼(나때)는 내지는 꼰대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1955년부터 1963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는 전쟁 직후 본격적인 번식(?)이 지금 대한민국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허리이자 동력이 된 셈이다.

통계상 약 900만 명이 이 시기에 출생했는데 2020년 한해 동안 출생한 신생아수는 약 27만 명으로 전년대비 3만 명이나 줄었다.

계산상 8년 동안 200만 명 남짓 태어난 것인데 5남매·7남매를 업고 안고 손목잡고 키우시던 전쟁직후 여성들의 삶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이제 한국은 통계상 2021년 들어 가임여성 1명당 0,84명으로 1인당 1명의 자녀도 못 낳는 시대에 봉착했고 2117년에는 1,500만 명밖에 남지 않는다고 한다. 인구문제는 지구온난화 문제보다 더 심각해졌다.

어쩌면 국가시책 중 가장 급하고 중요한 일임에도 급격한 감소현상에 대해 강 건너 불구경 하는 안일함이 대부분이다.

여성들만이 겪었던 낙태도 1990년대초 매년 150만 건이나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한 채 수술실에서 사라졌고 이는 1994년 신생아 73만 명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였다.

사람사는 세상에 사람이 흔한 것도 문제였지만 이때를 기점으로 낙태도 출생도 급격히 줄기 시작했다.

과거 금지했던 낙태는 2021년 1월 1일부터 전면 폐지되면서 이제 원치 않는 출산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며 임신부터 출산까지 별탈 없이(?) 자궁에서 사람이 되는 일도 쉽지 않게 됐다.

게다가 과거에 죽어도 시집간 댁에서 귀신이 되겠다는 각오와는 달리 이혼은 제2의 선택, 아니다 싶으면 빨리 갈라서는 것도 방법이라며 뱃속에 든 아이는 선택의 여지도 없이 운명을 달리한다.

각자의 삶이 존중받으면서 1세대를 기점으로 확연히 달라진 여성들의 사회적 위치와 운신의 폭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남성전용 직종의 진출은 물론 모든 사회활동에서 여성과 출산은 이제 별개의 소재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이제 이런 사실을 부인하거나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면 장애인 취급을 받게 된다.

급격히 줄어드는 출산율의 이면에는 너도나도 다 아는 이유가 있지만 가장 첫번째가 경제적 문제다. 아이를 낳아도 잘 키울 자신이나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것이다.

아이가 힘이 아니라 짐이 되고 임신부터 출산, 육아, 결혼하기 까지 뒷바라지와 결혼 이후에도 기대고 살기 보다는 재산상속 문제로 서로 눈치를 보는 정도이니 누가 아이를 낳고 싶을까.

둘째는 여성들의 삶의 질적 향상과 평등이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이기적 사고와 맞물리면서 제동장치가 없다는 점이다.

각 개인의 취향과 특기를 살려 얼마든지 행복하고 편하게 살 수 있는데 굳이 결혼하고 출산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지금와서 그런 환경을 변경할 수도 없는 것이고 이러한 분위기는 대세이자 자연스런 시대적 흐름이므로 변경이 불가능하다.

끝으로 염려할게 아니라 포기하고 급감하는 시대에 걸맞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요 때다 싶어 잽싸게 인구증가에 대한 공약을 남발하며 자신만이 대안인 것처럼 대선후보들이 온갖 선심성 정책으로 장밋빛 공약을 남발한다.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만큼 아이만 낳으면 돈으로 도배를 하자는 논리다. 이는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봐도 인구 감소가 매우 시급한 문제임을 알 수 있으며 이를 정치적 호재로 악용하고 있으니 얼마나 가증스러운 일인가.

지난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16년간 저출산 대응을 위해 중앙정부 차원에서만 투입된 예산이 198조 7,000억원 이며 2020년 한해만 해도 42조 9,000억 원이 투입됐다.

그 많은 돈이 어디로 어떻게 사용되었기에 여전히 신생아는 늘어날 줄 모르고 돈만 날아간 것일까.

언제까지 저출산 문제를 울궈 먹으며 쓸데없는 예산만 낭비할까. 이걸 보고 밑 빠진 독에 물붓기가 아니고 무엇일까.

언제까지 물만 계속 부울 것이며 겉도는 행정에 인력낭비만 할까. 인구가 늘어나지 않으면 정책이 실패한 것이고 이를 인정하고 왜 실패했는지부터 역순으로 돌아보는 게 순서다.

성과도 없으면서 계속 같은 짓을 하는 것이야 말로 관계 공무원이 놀고먹었다는 증거이며 이는 명확한 징계 대상이어야 한다.

김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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