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덕암 칼럼]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1.11.19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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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지난 2004년 모 출판사에서 발행한 책자의 제목이다. 배우 김혜자 씨가 아프리카에서 봉사 활동을 하면서 겪고 느낀 점을 쓴 책인데 전쟁과 기아에 허덕이다 영양실조로 굶는 아이들과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간절한 도움을 요청한 내용이다. 

지나치게 굶주린 나머지 뼈만 앙상하게 남아있거나 분쟁과 에이즈 등으로 고통 받는 아이들의 어려움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굳이 외국의 사례를 논할 것도 없이 한국의 실태만 보더라도 어린이들이 열악한 현주소는 쉽게 알 수 있다. 

독자들이 조금만 시간을 할애해서 포털 검색란에 결식아동 숫자 또는 아동학대의 실태를 쳐보면 믿기 어려운 통계들을 속속 발견할 수 있다.

2020년 영양실조로 사망한 인구가 345명 결식아동은 33만 명, 뿐인가 통계에 포함되지 않고 복지의 사각지대에 내몰린 아동들의 숫자까지 더하면 결과는 참혹하다. 

오래전 1988년 서울 올림픽이전에 정부의 묵인하게 처참한 인격파괴의 대명사로 알려진 부산 형제원 사건은 부랑아방지를 명분으로 얼마나 많은 아동들이 끔직한 피해를 당했는가. 

힘이 없거나 보호자가 부실하다는 이유로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해외로 입양되어간 아이들만 미국만 보더라도 26만 명중 12만 명이 아시아요한국출신이 5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부모 품을 떠나 낯선 타국에서 성장하고 싶은 아이들이 어디 있을까 마는 현실은 부끄러우리만치 자기자식하난 책임지지 못하는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오늘은 2012년 제정하여 매년 11월 19일 기념하는 아동학대예방의 날이다. 아동학대 문제의 심각성과 예방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제정되었으나 이때만 아동을 보호하면 되는 것일까. 

어린이 보호가 무슨 기간이 있으며 기념식과 각종 행사가 필요할까. 

이쯤하고 구체적으로 아동학대란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이 아동의 건강 또는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적ㆍ정신적ㆍ성적 폭력이나 가혹행위를 하는 것을 말하는데 그 선이 애매모호하다보니 가정교육과 훈육이 자칫 가정폭력으로 치부되는 경우도 있고 표시 안 나게 굶기거나 정신적으로 학대하는 경우 자신의 생존권을 쥐고 있는 보호자로부터 반항이나 항변을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경찰이나 기타 시설에서 아무리 관심을 갖고 챙기려 해도 24시간 지켜줄 수 없다면 피해를 당하는 아이입장에서는 도움이 아니라 자극만 주는 만큼 되려 가해자의 눈치만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맞고 자란 아이의 본능에는 피해의식과 더불어 약자에 대한 괴롭힘으로 되갚음으로서 해소되는 보복심리가 작용할 수 있는데 이는 권력이나 금전에서 성공할 경우 더 심각하게 나타난다. 

잔인한 심리와 겉으로 웃으며 남모르게 상대방을 괴롭히다 극단적 선택을 할 때 까지 가학적 방법을 동원하는 사이코패스가 여기에 해당한다. 결국 피해아동이 성장해서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끊이지 않는 것인데 간혹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하는 역행의 경우도 없지 않다. 

특히 여아의 경우 아동포르노의 희생물이 되거나 가까운 친인척이 가해자로 등장하는 범죄유형을 자주 볼 수 있다. 실제 발생되는 사건에 비해 신고로 처벌까지 이어지는 과정이 한국사회의 특성 상 쉽지 않다. 어떤 일이든 공급과 수요의 원칙이 있다. 

구매자가 없으면 공급자가 생산의 가치를 못가질 텐데 인터넷에 제목만 떠도 굶주린 좀비들이 피 냄새를 맡은 마냥 아동포르노에 환장하듯 몰려든다. 

좀 더 파고 들어가 보면 생리적 쾌락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 성장과정에 자아의식이 기형적으로 자란 자들이 본색을 드러내는 결과 치다. 

대표적으로 강호순 사건도 그러하고 최근 구속된 제주도 친부의 성폭행사건도 그러하다. 당하는 아이 입장에서는 쾌락이 아닌 고통뿐이며 남자에 대한 두려움으로 성인이 되어서도 행복한 연애가 어려운 것이다. 

요즘처럼 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이 되면 금전적으로 위기에 내몰린 가정의 불안정한 틈을 타 악마의 눈초리는 더욱 빈틈을 노리기 마련이다. 성폭행뿐만 아니라 신체적 폭력 또한 마찬가지다. 

아무 반항도 못하고 맞는 아이의심경은 어떠할까. 일단 때리는 당사자의기분이나 감정에 따라 폭행의 강도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한 대라도 덜 맞기 위해 온갖 눈치를 다 보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자존감이나 긍정적인 의지가 꺾이게 된다. 흔히 말하는 눈칫밥을 먹게 되는 것이다. 

갈수록 출산율이 줄고 있다.더 낳지는 못할망정 있는 아이들이라도 제대로 키워야 대한민국의 명줄을 이어갈 사람이 유지될 것 아닌가. 국가 기간산업이나 기반시설을 아무리 잘 만들어놓고 사회복지제도와 국방력을 키워놔도 그걸 이용하고 유지관리 해나갈 사람이 없다면 무슨 소용일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피하지 못할게 나이 먹는 것이다. 아이가 계속아이지 않듯, 기성세대가 노년이 되어 하나 둘씩 물려주는 것 또한 자연의 순리와 같다. 농사가 풍년이 되려면 봄에 종자씨앗을 잘 뿌려야 하듯 아이를 곱고 이쁘게 키워야 하는 것은 사람농사의 근본이자 기본이다. 

청소년 시절부터 이백 번은 맞아보고 백번은 패본 장본인으로서 폭력은 어떤 경우라도 정당화될 수 없다. 특히 아이는 패서 가르쳐야할 대상이 아니다. 우연히 시작한 일도 번복하면 무뎌지고 하다보면 길이 나서 쉽게 할 수 있으며 종래에는 아무 감각조차 없어진다. 

맞는 아이는 몸과 마음이 동시에 멍들지만 몸에 멍은 나아도 마음의 멍은 평생 상처로 남는다. 

아동학대의 가해자는 엄한 벌로 다스릴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해서라도 나라의 미래를 망치는 일만큼은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가해자를 보면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는 짹소리도 못하면서 약한 아이들에게 군림하려는 비겁한 경우가 많다.  

김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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