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소비자가 왕이면 왕 다워야 한다
[덕암 칼럼] 소비자가 왕이면 왕 다워야 한다
  •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1.12.03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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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얼마 전 개그 프로그램의 소재로 자장면 배달하는 직원과 의류점 직원간의 상반된 입장을 나타낸 장면이 있었다.

의류점에서 자장면을 배달시킨 직원이 단무지가 적네 고춧가루는 왜 안가져 왔네 하며 타박을 하자 연신 쩔쩔매던 배달원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진열된 의류의 가격을 물어보며 이건 얼마냐 저건 얼마냐고 살 것처럼 자세를 바꾸자 거드름을 피우며 닦달하던 의류점의 직원이 다시 을의 입장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이다.

물론 코미디 소재로 웃음을 자아냈지만 단순한 내용에서도 소비자는 왕이라는 인식은 누구나 짐작할만한 대목이다.

오늘은 1973년 12월 3일부로 시행된 ‘제26회 소비자의 날’이다. 1982년 민간단체에서 정한 소비자보호법이 국회를 통과한 날이기도 하다.

정식으로 정해진 날은 1996년 5월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의거 법정 기념일로 정해졌다가 2000년 11월 다시 정식 명칭인 ‘소비자의 날’로 변경됐다.

‘소비자는 왕’이라는 인식은 이를 착각한 일부 소비자들에 의해 근본 취지가 훼손되기도 하는 데 가령 진상으로 불리는 별난 고객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왕이면 왕 다운 행동을 해야 하는데 하는 짓은 거지왕초에 심보는 놀부 심보를 갖고 있으니 정상적으로 소비자를 대하던 업소 입장에서는 여간 속상한 게 아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음식점의 진상 고객 사연을 들어보면 음식을 주문해서 온갖 트집을 잡아 공짜로 먹는다거나 언어폭행으로 극심한 인격모독을 주는 등 상식 이하의 매너로 상처를 주기도 한다.

특히 노래방의 주류 판매와 도우미 고용이 불법임을 악용하여 무전취식을 일삼는 행위나 인터넷상에 평가별표의 후기를 담보로 가격인하를 요구하는 등 그 방법도 기상천외한 실정이다.

만약 모두 그런 소비자라면 장사할 사람이 없겠지만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나름 격을 갖추며 상호간의 예의를 지키는 편이기에 그런대로 세상이 굴러 가는 게 아닐까 싶다.

여기서 모두가 공감해야 할 것은 소비자가 왕이라는 인식의 발로다. 어렵게 번 돈을 내고 원하는 걸 얻게 되는 과정이 거래라는 것인데 소비자가 무조건 ‘갑’이라는 인식이 문제다.

정확히 말하자면 갑이 아니라 구매자일 뿐인데 돈을 내는 입장이니 이를 존중한다는 것일 뿐이다.

앞서 자장면 배달 직원처럼 언제든 입장을 바뀔 수 있으며 누구든 사회구성원으로서 돈을 버는 과정에서 ‘을’일 수밖에 없는 것이므로 역지사지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돌고 돈다 해서 돈이라 불리는데 이를 버는 과정에서 인간의 가치까지 무시당한다면 이는 당한 사람이 다음 사람에게 돈을 줄 때 똑같이 앙갚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돈이 사람위에 군림하는 모양새로 이어지는 것이다.

흔히 ‘사람 나고 돈 났다’는 말을 한다. 그만큼 돈보다 사람이 중하다는 것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갈수록 돈이 우선인 세상으로 변해간다.

돈이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살아가는 수단에 그쳐야 하는데 목적으로 변해가니 안타까운 일이다.

소비자이기에 앞서 누구나 재화를 얻는 과정에서 ‘을’의 입장일 수밖에 없기에 진정한 왕이란 왕 다운 격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왕의 입장에서 자상한 배려와 친절한 입담으로 원하는 바를 돈과 바꾸는 일상이야말로 훈훈한 사회를 이루는 근간이 될 것이기에 필요한 것을 준비한 상대방에게 감사의 마음을 갖는 게 필요하다.

아울러 어렵게 번 돈을 주는 주체에게 높은 손님, 즉 고객으로 모시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속임수로 간접적 사기를 치는 것도 금지해야 할 대목이다.

가령 저렴한 수입산을 국내산이라 속이는가 하면 화려한 포장지로 눈가림도 하고 원가 대비 지나친 마진으로 폭리를 취하다가 인터넷상의 가격경쟁에서 속보이는 경우가 그러하다.

세상의 모든 이치는 적당한 마진까지 고려해서 구입하는 것이 당연하다. 흔히 음식점의 경우 코스트라 불리는 원가의 %가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60%이상을 상회하는 경우도 있는데 대형 뷔페의 경우 30%선을 웃돌고 밀가루를 소재로 음식을 만들면 20%에 그치기도 한다.

이러니 너도나도 음식점을 차렸다가 예상외로 수입이 적자 다시 업종을 변경하거나 폐업하는 경우가 속출한다.

마진만 계산하고 간접적으로 투자되는 자신의 인건비나 각종 공과잡비는 당장의 매입에 포함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가 그동안 수 십 가지 업종을 겪어보았던 경험들을 대략 되돌아보면 어떤 업종이든 자본이나 노동력이나 기타 노하우가 투자대비 수익이란 게 보장되어 있다.

다만 성공했다고 생각되는 시점의 차이일 뿐이다. 우유배달, 덤프트럭, 굴착기, 슈퍼마켓, 신문배달, 북세일, 노래방, 식당, 생활정보신문, 여행사, 보험, 기획사, 대형 뷔페, 숙박업소, 다양한 업종을 두루 섭렵하며 얻은 경험을 토대로 소비자는 가격만 깎는 게 능사가 아니라 마진도 인정할 줄 아는 격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오늘처럼 소비자의 날, 가까운 동네 편의점에 가서 거드름 피우는 날이 아니다. 소비자는 자신뿐만 아니라 이웃이며 사회를 구성하는 모두가 같은 입장인 것이다.

돈과 필요한 것을 서로 바꾸는 과정에서 싸게 사려는 것과 많이 벌려는 욕심을 적절히 조절하는 것, 그래서 장사하는 사람은 첫 개시를 ‘마수’라 하고 마지막 판매를‘떨이’라 하며 그 가운데 적절히 더 얻어주는 걸 ‘덤’ 이라한다.

사람이 살면서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 중 하나가 편의점의 원 플러스 원(one plus one)이 아니라 한웅큼 더 집어주는 인심이다. 이 세상에 싸고 좋은 건 없다.

그래서 “밑지고도 팝니다. 왕창세일, 코로나19로 인해 폐업합니다. 망했습니다.” 등 요란한 문구들이 판을 치는데 남의 아픔을 싸다고 반색하며 구입하는 것은 동물의 세계에서 사자의 사체를 독수리와 개미까지 먹어치우는 것과 뭐가 다를까.

자본주의 시장 경쟁 논리를 벗어나 돈을 내는 자가 파는 자의 적절한 마진을 인정하고 자신 또한 그러한 마진을 인정받기에 사회는 원만히 굴러가는 것이다.

다만 돈보다 사람이 귀하고 중요하다. 돈이 인간의 존엄성까지 구매 대상으로 만드는 세상은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오늘도 모든 사람들은 어떤 목적이든 누구를 대상으로 삼든 돈을 사용해야 하는 소비자이자 벌어야 살 수 있는 을의 입장이기도 하다.

배려와 양보로 위해주는 사회는 각자의 마음에서 비롯되기에 그 출발의 주인공이 되어보면 어떨까.

김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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