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인재와 천재의 차이
[덕암 칼럼] 인재와 천재의 차이
  •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1.12.15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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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51년 전인 1970년 12월 15일 거문도 동쪽 해상에서 남영호 침몰사고가 발생, 326명이 사망했다.

그로부터 23년 뒤인 1993년 10월 10일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 앞바다에서 서해 훼리호가 침몰, 292명이 사망했다. 

다시 21년 뒤인 2014년 4월 16일 인천을 출발해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가 침몰해 304명이 사망, 실종됐다. 이렇게 3차례에 걸친 해상사고는 모두 무리한 적재와 출항으로 인한 인재였다. 

반면 경신 대기근은 조선 현종 재위기간인 1670년과 1671년에 있었던 대기근으로서 한국 역사상 전대미문의 기아 사태였다. 

당시 조선 인구의 1200~1400만 명중 약 최소 15만에서 최대 85만 명이 사망하는 피해를 입었으니 지금으로 치자면 500만 명은 사망한 것이나 진배없는 비율이었다. 

이후 1894년에 동학교도 전봉준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동학혁명은 조선 봉건사회의 억압적인 구조에 대한 농민운동으로 확대되어 전라도·충청도 일대의 농민이 참가했지만 청·일 양군의 진주와 더불어 실패한 운동이었는데 이 또한 막대한 인명피해를 냈다. 

자국의 군인이 타국의 군대와 함께 자국의 백성을 살육하며 권력을 유지한 사건이었다. 최근 전 세계에 확산된 코로나19와 신종 바이러스의 창궐은 사람이 조심하면 막을 수 있는 인재와는 차원이 다르다. 

자연재해나 다름없이 피할 수 없는 천재지변과 유사하니 역병의 창궐은 피할 수 없는 천재라 할 수 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역병이라 하더라도 사람의 지혜와 의지로 어느 정도 예방하거나 막을 수 있음에도 위기를 기회로 악용하는 사례가 있으니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일이다. 

동학농민혁명도 그 원인에는 혼자 먹고 살겠다고 아우성 친 관료들의 부패가 있었고 경신대기근에도 도처에 굶어죽는 백성이 있는가하면 온갖 고리사채와 혹세무민으로 피고름을 짜내는 계층이 있었으니 지금의 무리한 세금징수와 다를 바 무엇인가. 

나라에서는 역병창궐의 원인도 모른 채 힘없고 전문지식 없는 국민들만 들볶아대니 어찌 올바른 방역대책이라 할 수 있을까. 

오늘도 코로나19로 인한 확진 자와 사망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고 발만 동동 구르는 정부의 대책에 막연함만 늘어간다. 

자영업자들이 그러하고 자라는 청소년들도 백신에 대한 불안감으로 방향을 못 잡고 있으니 어느 부모인들 안심하고 학교 보낼 수 있을까. 

연일 백신 부작용으로 인한 죽음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코로나피해연대가 분향소 준비는 착수했지만 관련 기관에서 이 핑게 저 변명으로 허가를 미루고 있다. 연일 일반 국민들은 울고 대선후보들은 웃는다. 

대선후보들이 단 한번이라도 유가족들의 손을 잡고 울어주었더라면 단 하루라도 구름 같은 인파를 해산시키고 방역 지침을 준수하겠다며 다짐했더라면 적어도 양심 있는 대권주자라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찌하든 역사는 흐르고 지구는 돌아가며 사람은 적당히 살다가 수명을 다한다. 몇 백 년 살 것처럼 권력을 향해 어지간히도 나대지만 그저 기암절벽의 일송정이 지켜볼 뿐이고, 춘하추동 사계절의 절경을 자랑하던 강산만이 제자리를 지킬 뿐이다. 

천재는 못 막아도 인재는 막아야 한다. 정권에 대한 탐욕이 우매한 국민들의 죽음을 재촉하고 백신 안 맞는다고 오도 가도 못하게 하다못해 더 나아가 일상생활조차 금지시킨다면 어찌 사람 사는 사회라 할 수 있을까. 

전문 의료진들이 너도 나도 백신은 안전하지 못하다며 양심선언에 동참하고 있는데도 방역당국은 여전히 인과성이 없다며 백신접종을 독촉하고 있다. 훗날 문제가 커지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어제부터 백신을 맞지 않으면 식당에 가서 밥조차 먹을 수 없고 얼마 후면 그 어떤 사회생활도 못하게 될 터이니 또 한 번의 암흑기가 도래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 또한 지나간다. 하지만 후사에 어떻게 기록될지는 누구도 모른다. 두고 볼 일이다. 일국의 왕을 뽑는 일이 중요한지 사람을 살리는 일이 중요한지 말이다. 

어제는 미국의 토네이도로 수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가 하면 제주도 일대의 지축도 흔들렸다. 

외국에 비해 그나마 한국은 지리적으로 자연재해가 덜한 편이지만 대선판도 보란 듯이 요동치고 이대로 가다간 투표시기에 일상이 멈춰 전자투표로 전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보나마나 부정선거라며 들고 일어날 것이고 국론은 또 한 번 흙먼지 나는 이전투구의 장이 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위기에 도달하면 당장이라도 천지가 개벽될 것처럼 긴급대안을 제시했다가 위기만 넘기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입 닦은 처사가 한둘이며 그렇게 희생양이 되어 시간 속에 묻힌 사건들은 또 한둘인가. 

대형 사건이 발생할 때 마다 걸핏하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주인공들의 침묵이 그러하고 각종 부패사건도 오랫동안 묵혀두었다가 국민정서상 분노가 끊기 시작하면 케케묵은 일까지 들춰내어 세간의 이슈로 만들어낸다. 

더욱 기막힌 것은 언론이 그런다고 부화뇌동하며 그 장단에 춤을 추는 국민들이 문제다. 사람 사는 세상은 어떤 일이든 변화와 지각변동이 있기 마련이다. 

앞서 어필한 것처럼 사람이 막을 수 있는 인재와 막지 못하는 천재가 있는데 위기에 봉착할수록 서로 협력하고 도와주는 분위기가 중요한 것임에도 서로 미워하고 신고하며, 놀고먹는 복지로 게으름을 길들이고 분야마다 일거리는 죄다 외국인들에게 내어주면서 무슨 부국을 기대하며 태평성대를 꿈꿀까. 

어쩌다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선 선수들의 자질과 함량을 보면 이런 자들을 내세워서 지도자를 만들어놓고 얼마나 많은 한량들이 달라붙어 한자리 달라고 조를까. 현대판 경신대기근이 재현될까 두렵다. 국민들의 안위가 한없이 염려된다. 

김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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