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여론조사에 대한 염려
[덕암 칼럼] 여론조사에 대한 염려
  •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2.01.28 08: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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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최근 대통령선거를 두고 온갖 여론조사가 대외적으로 발표됐다.

특히 후보 지지도와 이에 대한 성별·연령별 분석 등 다양한 질문들이 전제되었는데 같은 내용이라도 조사업체에 따라 결과가 다르다는 것이 문제다.

같은 제품의 무게를 달았는데 저울마다 결과가 다르다면 누가 신뢰할까. 어떤 일이든 불신을 사기는 쉬워도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몇 배의 반성과 노력과 대가를 치러야 한다.

돌이켜 볼때 먼저 언론이 그러했다. 필자 또한 현존하는 기자들 중 가장 많은 글을 썼다고 자부하고 지금도 매일 글을 쓰지만 쓰고 싶었던 분량이나 질적 면에서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하루해를 넘긴다.

언론이 입법·사법·행정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사실을 근거로 현실을 직시하며 공익에 이바지 한다는 것은 사명이자 본분임에도 왜 국민들에게 믿음을 얻지 못했을까.

답은 언론 자신에게 있다. 필자가 이미 20년 전 이대로 가다간 기자가 쓰레기 취급받을 것이며 보도사료를 먹고 자라는 가축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예상은 적중했고 10년 전 더 늦기 전에 모든 기자는 각각의 전문성을 갖추고 개발기사를 작성하지 않으면 종래에는 존립기반을 잃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또한 SNS와 포털 사이트에 자리를 내주면서 여론조성의 기능과 역할을 상실한 것이나 진배없게 됐다.

다음은 정치다. 정치가 국민들로부터 분노를 사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고 그러한 현상은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앞으로도 여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큰 이유는 국민으로부터 걷은 세금을 적시적소에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며 인사권과 행정적 권한을 오·남용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발전이 늦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정치의 타락이다.

그 다음 의료·법조·교육·국방·문화예술·체육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가령 영화 변호인의 한 대목처럼 멋진 변호사를 꿈꾸는 법조인이라면 현실과의 괴리를 감안해야 할 것이다.

의뢰인의 까다로운 요구와 온갖 대법판례를 뒤져 형량을 낮추어야 하는 경우와 반대로 어떤 구실이든 찾아서 피고인의 죄를 물어야 하는 경우 평생 한번 있을까 말까하는 송사에 기대는 심리를 충족시켜야 한다.

당연히 이러한 업무를 주 업으로 사는 변호인이 사건마다 자신의 일처럼 여긴다면 아마 스트레스로 탈모나 정신병자가 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같은 일이라도 입장이 다르다 보니 대하는 비중도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며 요즘 웬만한 준비서면이나 답변서는 인터넷의 발달로 원·피고인이 직접 작성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불신이 초래한 자업자득의 결과다. 문화예술도 동일하고 체육분야는 더하다. 오래 전 대한민국미술대전이 뇌물로 얼룩져 그 가치가 추락한 적이 있었다.

물론 지금은 신뢰를 회복했지만 다시 복구하기 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병행되었던가.

오늘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같은 공적 기구가 제 역할을 하지 않으면 사회가 병들고 일시적인 이득 추구가 가져오는 병폐는 사회적으로 부패의 원인이 되기도 하겠지만 해당 분야의 불신을 해소하기까지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이 투자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인터넷 댓글과 여론조사가 그러하다. 앞서 어필한 여론조사의 면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일단 난립하는 조사기관이나 업체들의 조사방법이 불신의 첫째 단추다.

같은 질문이라도 전화를 거는 시간대, 내용, 의도, 심지어 조사원의 말투에 따라 얼마든지 결과는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신뢰도와 표본오차 등으로 전제를 달지만 샘플링 이라는게 전체 중 일부를 표현하는 것임에도 마치 전부인 것처럼 착시현상을 갖게 하는 마력이 있다. 물론 처음에는 먹힌다.

여론조사에 전문지식을 갖고 있거나 오랜 시간 지켜본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대부분 순박한 국민들이 그러려니 하고 믿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 아닌가.

중앙에서 이러니 지방으로 갈수록 같은 폐습을 본받기 마련이다. 언론사가 의뢰하거나 기타 정당과 단체들이 우후죽순으로 의뢰하는 여론조사, 유권자의 오판을 이끌어내기에 가장 폼나고 그럴듯한 통로이기도하다.

당장은 그럴듯 하겠지만 이또한 장기적인 측면에서 볼 때 불신의 텃밭을 조성하는 것과 같다. 한 두번은 몰라도 계속 결과치가 다르면 누가 신뢰할까.

앞서 거론한 언론, 정치, 법조계에 대한 신뢰 추락과 다를 바 없다. 끝으로 댓글이다. 이미 드루킹이 어쩌고 댓글 부대가 있네마네 하는 말들이 그리 어색지 않다.

댓글은 특정 뉴스나 소재가 인터넷상에 올랐을 때 이에 대한 일상적인 반응이 글로 표현된 것이다.

당연히 불특정 다수가 각자의 다양한 의견이어야 하는데 누가 봐도 동원된 댓글 알바들의 노골적인 표현이 도배질을 하니 이 또한 자가당착의 출발이다.

하다하다 자연스러워야 할 댓글까지 임의로 활용하니 어찌 믿음이 생겨나며 모두 짝퉁 천지니 뭐가 진짜라고 여길 수 있을까.

그래도 이 사회가 면면이 흘러가는 건 다 가짜 같아도 진짜들의 말없는 희생이 있어서가 아닐까.

필자가 이같은 지적을 아끼지 않는 건 대상 분야의 폄하가 목적이 아니라 개선으로 인한 제 기능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모든 분야가 각기 제 기능을 발휘한다면 현재의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의 나라가 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전쟁의 폐허에서 지구촌의 화려한 선진국이 되기까지 불과 50년도 걸리지 않았다.

이만한 DNA를 가진 민족이 또 있을까. 살다보면 욕심이 날수도 있고 게을러 질 수도 있으며 잔머리를 굴릴 수도 있다.

그러다가도 본래의 목적과 스스로에 대한 존재가치를 자각한다면 소신과 원칙을 지키는 게 맞는 것이다. 그래야 오래 살아남을 수 있으며 훗날 동종업계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종래에는 후배들에게 뭐라도 해줄 말이 있는 것이며 그렇게 조약돌이 모여 거대한 돌탑이 쌓이는 것이다.

김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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