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임명장 삽니다, 쩔겅 쩔겅
[덕암 칼럼] 임명장 삽니다, 쩔겅 쩔겅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2.02.18 1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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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오랜 옛날 리어카에 엿을 싣고 다니며 큼직한 가위를 쩔겅거리던 엿장수가 있었다.

지금은 사라진 옛 풍경이지만 고물을 수집하던 당시 자원재활용업자는 빈병이나 종이, 고무신은 물론 구멍 난 양은냄비까지 모두 받아 주던 만물상이었다.

고물이면 다행이겠지만 너도나도 멀쩡한 책과 부엌에서 쓰던 주방기구까지 몰래 엿 바꿔 먹던 악동들도 있었으니 아마 독자분들 중에서도 용의자가 있지 않을까 싶다.

누런 엿판에 쇠칼을 얹어 톡톡 치면 갈라지는 선이 야박하게 느껴질 즈음 허연 가루가 묻은 엿이 한 움큼 손에 들어온다.

대선 스토리는 이제 그만 쓰고 싶은데 연 이틀째 필자에게 전달되는 임명장을 보며 벌써 몇 장 짼가 세어보다 문득 이것도 모아두면 골동품이 되겠다 싶은 발상이 떠오른다.

필요해서 받은 사람이야 신줏단지 같이 중요하겠지만 필자처럼 개인정보도 주지 않았는데 연일 날아든 임명장은 이제 선거법 위반의 선을 넘어 현대판 개그 정도라 할 수 있겠다.

이쯤되면 고마 해라 마이 받았다 아이가, 제대로 파악해볼 방법이 없어서 그렇지 적어도 수 백 만장 아니 그 이상은 족히 될 법도 한 임명장, 대체 아무 의미도 가치도 공감대도 얻어내지 못하는 임명장을 남발하는 발상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혹시 준다고 덥석 받아서 감동할 것이라는 예측에 유권자를 호구로 알아서 인지 일단 감투를 씌워놓으면 한 표라도 더 확보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거부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전화라도 해보면 전자임명장이라고 듣도 보도 못한 번호에서 애매모호한 답변을 한다. 이제 대선 끝나면 지방선거에서는 안 그럴까.

위에서 그러니 보고 배운 게 완장 채우기인데 그런 꼴이 안 나려면 지금 진행중인 대선에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

미친 듯이 남발하는 임명장을 거둬들일 방법은 없다. 다만 유권자들이 이를 모아 준다면 아마 상당한 시사성을 갖출 수 있을 것이고 훗날 올바른 민주주의 성장에 대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뒷생각 없는 임명장 남발, 일단 뿌리고 보자는 선거 전략은 일단 당선되고 보자는 것과 뭐가 다를까. 이를 받아든 사람은 과연 새치기 사회의 공범이 아니라고 자신에게 당당할 수 있을까.

이러다 임명장을 수여한 후보자가 낙선하면 슬그머니 휴지통으로 들어가고 당선되면 출세의 보증수표가 될까.

필자가 추측컨대 그러기에는 수요와 공급이 언밸런스다. 1962년 북한이 소련의 원조중단이 시작되자 실시한 4대 군사노선중 하나가 전인민의 간부화다.

전국민의 간부화를 시킬 공산이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당장 임명장을 모두 취소해야 한다.

그래야 실질적인 선거업무를 맡거나 중책을 맡아 사회적 봉사를 할 당사자들이 남발하는 임명장에 실망하지 않고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질 것이며 멀쩡한 국민들까지 동원되지 않는 것이다.

이를 방지하려면 지금부터라도 임명장이 안 먹힌다는 것을 알려둘 필요가 있다고 본다.

혹시 신줏단지처럼 귀하게 모시고 있는 분이라면 굳이 달라할 수 없겠지만 원치 않은 임명장을 모아 3·9 대선 퍼포먼스나 이벤트성 전시회를 한다면 후보자들에게도 경종을 울릴 것이며 유권자들 또한 당당한 권리를 주장하게 되는 것이고 자라나는 학생들이 본다면 우리는 저러지 말아야지 하는 교육적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

훗날 수 십 년이 지나면 작금의 현상이 어떻게 평가될까. 방역지침도 하다하다 안 되니 자가 격리와 하루에도 확진자가 수 만 명씩 증가하는 추세에 손을 놓아야 할 시점이 도래했다.

대체 나라꼴이 국민에게 어떤 신뢰를 심어 줄지 정녕 이정도 밖에 못하는 것인지 대략 난감이다. 1년 동안 대통령 후보를 준비했던 당사자로서 심히 우려를 감출 길이 없다.

사실 나라 살림이라는 게 특별히 잘하지 않아도 대한민국 국민처럼 말 잘 듣고 순진하면 기본만 잘 지켜도 돌아간다.

그 기본을 못해서 예산확보로 피터지게 당쟁을 벌이다보니 광복이후 빈부격차는 물론 살만한 나라를 만들지 못하고 이 모양 이 꼴인 것이다.

그런고로 임명장을 모아 경종을 울리겠다는 것이지 현 정치판을 비난하거나 부정적 의도는 아님을 참작해 주었으면 한다.

임명장 하나에 엿 한 가락씩이면 얼마 안 되는 것 같지만 100만장이면 1000원씩만 해도 십 억대가 넘는 엿 값이 들어간다.

다만 마땅히 바꿀 게 없으니 엿이 적당하다는 뜻이지 굳이 엿 먹으란 얘기는 아니다. 문득 멀쩡한 책과 냄비를 엿 바꿔 먹다 혼나던 추억이 떠오르는 건 달콤한 엿 맛에 참으로 귀한 걸 잃어버린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괜히 특정 정당의 힘 있는 자들에게 미운털이 박힐 수도 있겠지만 필자 또한 유권자로서 어설프게 받은 임명장에 대해 이 정도는 말할 자격이 있지 않을까.

그리고 원하는 사람은 몰라도 원치 않게 받은 유권자들이 자신명의로 발급된 종이를 당사자가 엿 바꿔 먹는다는데 누가 뭐라고 탓할 것인가. 선거법도 참으로 묘하다.

이런 위법과 허위, 과장, 불법이 난무하는데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고 한다. 정당을 위한 선거법인지 선거를 위한 선거법인지 개정의 여지가 차고도 넘친다.

간단히 비교하자면 쌍방간에 협의되지 않은 임명장은 위조지폐나 다름없다. 위폐를 복사해서 발급한 자나 알고도 사용하는 자 모두 공범이다.

구성원이 없는 단체의 장은 평소 개근상장 하나 받아보지 못한 일반 국민들에게는 먹힐지 모른다.

각자 본분을 지키며 성실하게 잘 사는 국민들에게 헛바람을 넣어 들뜨게 하는 전략은 이제 구시대적 발상이자 시대적 변화에 앞서가는 후보로서 취해야 할 자세가 아니다.

임명장 삽니다, 쩔겅 쩔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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