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덕암 칼럼]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2.04.05 08: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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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우리 민족 속담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는 말이 있다.

문제가 발생한 후 때늦은 후속조치를 뜻하는 말인데 작금의 코로나19의 방역지침을 보면 공감대가 가는 속담이다.

당초 확진자 수 십 명만 나와도 전국이 초비상이었다. 자영업자들은 언론매체의 보도내용을 보며 누구든 국민건강이라는 정부방침에 짹소리도 못하는 동작그만 이었다.

의료계는 면역세포의 중요성에 대해 다양한 채널을 통해 주장했지만 국민들의 공감대를 얻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정부의 대대적인 통제는 수많은 자영업자들은 물론 구제의 사각지대에 내몰린 모든 분야의 생존기반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착실하게 협조한 국민과 온갖 노력을 기울인 의료진, 나름 한다고 애쓴 관계 공무원들,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간다.

하루 수 십 만명의 확진자들, 그 살벌한 악명이 단순한 감기로 치부되면서 코로나19의 명성도 힘을 잃어가고 있다.

발생 800일이 넘는 동안 겨울왕국이었다. 살벌한 단속 못지않게 과태료 부과나 방역지침의 잣대는 엄격했고 민심은 흉흉해졌다.

이제 그 어떤 방역도 무용지물이 되어가는 것은 필자뿐만 아니라 방역당국과 모든 국민들의 공감대가 가는 형국이다.

지금이야말로 상황은 다르지만 발병 초기에 “일상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표가 어울리는 시기다.

다만 ‘포기하고’라는 전제가 붙어야 가능한 말이다. 대체 누가 언제 왜 중국인 입국의 문을 활짝 열어 ‘문 열고 모기 잡는 격’이라는 비난이 있었을까.

마치 울진산불의 방화범처럼 원인 제공을 한 사람이 책임져야 하지 않을까. 산불로 다 타버린 국토나 코로나 유입으로 망가진 국민의 애간장은 유사한 점이 많다.

작은 불씨가 화근이라는 점과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는 점, 하지만 전자는 방화범이 잡혔지만 후자는 누구도 원인 제공에 자수하는 범인이 없다는 점이다.

이제 정부, 아니 방역당국은 외양간을 고친다며 오는 18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를 전면 해제할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미 지난 4일부터 사적 모임 10명, 영업시간 밤 12시까지로 풀어놓은 상태에서 아예 전면해제로 간다는 것은 사실상 방역을 포기한 것이나 진배없다.

얼핏 보면 잠긴 열쇠를 풀어주는 것 같아 고마운 일 같지만 방역의 실패에 대한 인정이나 사과는 병행되지 않았다.

어차피 고의성도 없었고 나름 열심히 애쓴 과정임에도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못했으니 인정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다.

뒤늦게 전면해제로 처방을 한다지만 이미 소는 탈출한 상황에서 외양간을 고쳐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모든 게 때가 있다. ‘사후약방문’이다.

이미 죽은 다음 약을 써봐야 소용없다는 뜻이다. 필자가 운영하고 있는 매체 중 안산가로수와 시흥알림방 이라는 생활정보신문이 있는데 수 십 년째 시민들의 일상적인 정보를 모아 광고로 알리는 오프라인 신문이다.

수입의 대부분이 요식업 주방인원 모집, 제조업이나 공장 근로자, 전·월세 등 사람 사는 주택의 현주소를 실시간 파악할 수 있는 분야다.

통상 자영업이 고객 입장에서 보면 모르지만 한번이라도 운영해 본 사람이라면 현재 벌어진 사회적 거리두기가 얼마나 치명적인 조치인지 알 수 있다.

거리의 점포마다 종이로 써 붙인 점포정리, 상가임대, 급매, 생활정보신문이나 달리 광고를 낼 여유도 없거나 돈 들여 낸다 해도 찾는 사람조차 없는 빈 상가에 을씨년스러운 겨울이 지나갔다.

생활정보가 줄어드는 건 광고수주 또한 급격히 줄어드는 도미노현상의 연속이었다. 같은 광고라도 절실한 환경과 각박한 상황에서 어렵게 견디는 고객들의 입장이 충분히 짐작되는 경우를 허다하게 겪어 본다.

진정한 민심의 현주소를 파악하면서 정치·행정의 공직자들이 한번이라도 현실을 살펴보는 정성과 노력의 소홀함을 체감한다.

다 죽어갈 때 아프다고 소리칠 때 필요한 건 약이지 절차나 이론뿐인 행정조치가 아니었다. 딱히 기준도 모호하고 먼저 챙기는 사람이 임자였던 엄청난 방역지원금은 누가 얼마나 받았는지 정부만 알지 국민들은 모른다.

코로나를 빙자해 줄줄 새던 예산들 중 불필요하게 남용한 사례는 없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야 환난의 시기에 얌체처럼 실속을 챙기는 족속들이 더 기생하지 않는 것이다.

필자가 이런 지적을 할 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며 현장에 나가보지도 않고 책상에 앉아 탁상행정을 일삼고 있으니 언론인으로서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자가 후회하는 열 가지, 중 ‘춘불경종 추후회’라는 말이 있다. 상식적으로 판단해 볼 때 농사도 봄에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추수를 할 수 없다는 뜻인데 모든 분야가 시작과 끝이 있는 법이다.

자영업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시작했다가 영업시간 늘려준다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주머니 속 유리구슬이 아니다.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방역대책에는 의료진도 필요하고 방역지원금 정책에는 실물경제를 설명할 수 있는 일선 자영업자들의 조언도 참고했어야 한다.

먹고 살만한 여유가 있으면 자영업 안 한다. 없으니 한 푼이라도 벌려고 대출해서라도 하는 것이며 별의별 고객들을 상대하면서 참고 견디는 이유였다.

이제 한번 무너진 시장은 재건에 상당한 시간과 투자가 병행되어야 복구가 가능하다. 지금까지 코로나 관련 예산이 100원이었다면 적어도 10배·20배 이상의 재원이 지원되어야 겨우 수습될지 의문이다.

화려한 궁궐 안에서 백성들의 아우성이 들릴리 만무고 관가에서 주는 녹봉으로 살던 공직자들이 어찌 피폐해진 일반 서민들의 살림을 이해할까.

이제 그 대단한 방역,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K방역, 아무 책임자도 없이 슬그머니 시간이 약인 코로나19의 현주소, 텅 빈 외양간을 살펴보며 허연 입김의 누렁이 황소가 푹 삶아낸 여물을 우적거리며 먹던 시절이 있었나 싶다.

훗날 역사는 지금의 상황을 뭐라고 평가할까. 한 달에 6,000명인 넘게 코로나로 사망하고 1,000명이 넘게 자살하는 시기가 있었으며 난국에도 서로 국민을 살리겠다는 지방선거의 구호가 요란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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