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세월호 100년 뒤에도 추모하려면
[덕암 칼럼] 세월호 100년 뒤에도 추모하려면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2.04.18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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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2014년 4월 16일 아침 여느 때처럼 바쁜 일상속에 해장국집에서 아침 식사를 하던 중 TV 화면에 비친 세월호의 참사 현장은 안산뿐만 아니라 전국, 전세계를 충격에 빠트렸다.

거짓말 같은 사고 소식에 수저를 놓고 달려간 단원고등학교 실내체육관은 수학여행을 보낸 학부모는 물론 학교 관계자, 소방당국, 마침 선거에 출마하려던 후보들까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전원구조’라는 언론 최악의 오보도 잠시, 설마 하던 일들은 현실이 되었고 경악을 금치 못했던 시민들은 누구 자식이라고 할 것 없이 오열과 통곡 소리로 체육관을 메웠다.

그렇게 시작된 세월호 참사는 역사상 최악의 해상사고로 기록되면서 숱한 의혹과 함께 진실규명에 대한 유족들의 한 맺힌 절규가 시작됐다.

필자 또한 안산지역 출신의 언론인으로서 전남 진도 팽목항을 향한 주행 길에 몇 번이나 차를 세우며 눈물을 삼켰는지 모른다.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 터졌다.

300명이 넘는 희생자 대부분이 단원고 10대 학생들이었다. 기자들을 동행한 선박은 사고지점을 향했고 선장실에서 “잠시후 사고지점에 도착한다.”라는 방송이 나오자 곳곳에서 울음소리와 희생된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며 엄마가 왔다고 소리치는 유족들에게 차마 어떤 신문이나 방송사도 카메라 앵글을 맞추지 못했다.

유족이나 기자들이나 동행한 관계자들 누구도 울음만 참을 뿐 아무 말도 못 하는 동안 사고해역을 표시하는 부표가 떠 있었고 국화 송이를 던지며 목놓아 불렀지만, 세월호를 집어삼킨 바다는 말이 없었다.

사고 당일 고려대학교 안산병원으로 돌아온 생존자들의 소식을 전하는 과정에서 병원 관계자의 과잉 방어를 지적하다 국민적 공분까지 샀던 필자의 입장에서는 어떤 기사나 사진도 쓰고 찍을 수 없어 망연자실한 상태였지만 전남 진도 팽목항으로 귀항하는 뱃길에서야 평소 지인이었던 유족에게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었다.

경기도 안산은 인구 70만이었지만 98% 이상이 외지인으로 구성된 신흥 공업도시다 보니 먹고 사는 과정에서 한 다리만 건너면 모두 지인이었다.

희생자들이 300명 넘었고 유족들과 친·인척, 직장 동료나 거래처, 단체 회원 들을 연결해 보면 한 집 건너 한 집이 초상집이나 다름 없었다. 처음 1년은 누구든 거리에서 웃을 수 없었고 박수나 큰소리조차 낼 수 없는 초상집이었다.

2년·3년이 지나도 안산은 엄숙한 추모의 도시였고 거리마다 검은색 휘장과 배너 깃발이 나부끼며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화랑유원지 입구에 수 백 장의 만장이 나부꼈다.

전국과 인근 도시의 추모가 당해 연도에 그쳤다면 핵폭탄의 탄착지점인 안산의 초상집 분위기는 수년간 여진이 이어졌다.

상권몰락은 당연한 것이고 우울한 지역사회 분위기상 모든 행사는 취소됐다.

지금의 코로나19보다 더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면서 그해 개최된 지방선거나 2년뒤 개최된 총선까지 후보들의 운동원들 율동이나 선거로고송은 들을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 유족들의 진실규명에 대한 절규와 노력은 서울 광화문으로 이어졌고 전국민들이 공감하는 의문점에 대해 정부가 답해야 할 차례가 됐다.

누구 하나 뚜렷하게 답을 줄 수 없는 날들이 지나면서 박근혜 정부의 붕괴, 그리고 문재인 정부 탄생의 도화선이 됐다.

언론에서는 연일 국민들의 분노에 퍼즐처럼 맞춰진 뉴스가 쏟아졌고 사실 유무를 떠나 한번 불붙은 정권퇴진 운동은 겉잡을 수 없이 들불처럼 번지면서 세월호는 정치, 경제, 국민안전은 물론 옳고 그름을 떠나 말 한마디조차 언급할 수 없는 한국사회의 함구령으로 자리매김 됐다.

한 해 두 해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세월호의 진상규명은 이렇다 할 명쾌한 답을 찾지 못한 채 8년이 지났다.

퇴임을 며칠 앞둔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년 진실에 한발 다가섰지만 아직 밝혀내지 못한 일이 있다고 했고 윤 당선인은 가장 진심어린 추모, 대한민국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공감대를 표했다.

모두 맞는 말이고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는 그 어떤 정치인도 시민단체도 말을 아껴야 했다.

국민적 공분이라는 공감대에 대해 누구 하나 아니라 할 수 없는 것이고 그러한 상황은 고인들의 희생에 대한 예의이자 재발방지를 위한 항구적인 대안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가 더불어민주당의 정권창출 도구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추모와 대안도 중요하지만 참사가 참사 그 이상의 도구로 활용된다면 이는 희생자들과 유족들의 아픔을 반복하는 것이며 본질을 벗어나 후손들에게 두고두고 폄하와 비난의 소지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고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는 백년을 두고 해도 부족하지 않다.

하지만 세월호와 아무 상관도 없는 도심의 심장부에 납골당을 건립한다는 점에 대해 필자는 재고를 요청했다.

누구 못지않게 많이 슬퍼했고 규명되지 않은 진실에 분노했으며 지금까지 투입된 예산의 몇 십 배를 더 사용하더라도 같은 일이 없기를 기대했다.

일반 국가유공자 보다 더 많은 보상과 간접적 관련 시설들이 건립되어도 모두 공감했다.

지금은 공감하지만 50년, 100년, 200년이 지나도 유지될 수 있는 도심 한가운데의 대규모 납골당이 후손들에게도 안전의 성지로 남게 될지 우려했기에 재고를 주장했다.

안산시의 주인인 시민들이 공감한다면 당연히 적극 찬성하겠지만 절대 다수가 모르는 일을 정권의 힘에 밀려 지방자치단체장이나 관련 공무원이 밀어 붙였다면 훗날 이 일을 어찌할 것인가.

묵시적 동의로 찬성한 더불어민주당의 정치인들이 늙어 어떤 천대와 괄시를 받을지, 삭발투쟁으로 재고를 요구했던 야당의원의 주장이 묵살되어도 오직 개인의 영달과 출세를 위해 그 어떤 명분으로도 막을 수 없는 일을 강행한 작금의 사태를 어쩔 것인가.

희생자들을 두 번 희생시키는 일을 추진하려면 시민 모두의 동의를 얻어야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가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명칭만 화려한 416생명안전공원이 몇몇 권력자들의 욕심이 낳은 공동묘지로써 영구히 죽음의 도시로 만들었다는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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