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경의 기자수첩] 이외수 작가를 생각하다
[박미경의 기자수첩] 이외수 작가를 생각하다
  • 박미경 기자 miorange55@naver.com
  • 승인 2022.05.04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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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 작가 사진

이외수 작가가 하늘나라로 떠났다. 문학과 가깝지 않더라도 이외수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듯 하다.

향년 76세인 고인은 1946년 경상남도 함양 출신이며 1972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견습어린이들’로 등단했고, 이후 「꿈꾸는 식물」,「들개」,「칼」,「‘벽오동학도」,「황금비늘」등의 베스트셀러 소설과 다수의 에세이집, 시집을 출간하며 이어령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현역작가로 사셨다.

이외수를 작가로서 성공하게 한 작품은 1978년에 낸 「꿈꾸는 식물」이었다. 나비 한 마리로 온 세상을 눈천지로 만들기,그림 속의 신선세계로 들어가는 방법을 평생 탐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서 마술적 리얼리즘과 탐미적인 초현실세계를 즐겨다룬다는 평가를 받았다.

필자의 젊은 날 이외수는 하나의 현상이었다. 작품보다는 작가의 기괴함이 여성지 등에서 돋보였다. 예를 들면 머리를 며칠씩 안감는다는 둥 하루에 담배 세 갑씩을 피워 잠들 때까지 담배를 입에 물고 있는 다는 둥하는 일화들이 떠올랐다.

춘천하면 공지천과 물안개 그리고 이외수가 떠올랐다. 작가의 기괴함과 천재성을 보여주는 일화들이었다. 80년대를 살아가는 대학생들은 최인훈의 「광장」과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그리고 이외수의 「들개」를 함께 읽었다.

이후 이외수 작가는 단번에 베스트셀러 작가로 부각되면서 그의 책은 우리 같은 인문학도들에게는 웬지 문학성과는 거리가 먼 필독서 같은 느낌이었다.그리고 40여년 선생은 줄곧 집필 활동을 하셨다. 장르도 시,소설,에세이,우화집,작법서 등 다양했다.

그를 따라다니는 풍문도 여전했다. 미스 강원출신이었다는 그의 아내의 모습이 매스컴에 등장하기도 하였다. 결국 작가가 병원에 입원하자 다시 아내로 돌아와 지극정성으로 이외수를 간호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죽음까지도 함께 하는 부부상을 보여주었다. 

한국문단에는 이상한 풍토가 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면 모든 문학적 평가가 사라지고 이상하게도 평가 절하된다. 마광수 선생이 그랬다. 아무도 마광수 작가의 초기시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단 한 권의 절창 시집이나 소설집을 갖고 요절한 작가들의 명성이 우상처럼 자리잡고 있다. 1981년과 1982년에 발간된 이외수 선생의 소설집 「겨울나기」와 「장수하늘소」는 뛰어난 문학성을 가지고 있다.

고 김현 평론가는 이외수의 작품의 치열한 감수성의 흔적을 말하면서도 일부분 불편하다고 말씀하셨다. 이후 그는 트위터 등에서 감성적인 촌철살인의 글로 대중들의 인기를 끌었다.

‘존버’라는 유행어를 창출하면서 트통령이라는 애칭이자 별칭까지 얻었다. 그는 젊은 감각의 패셔니스타로도 유명했고, 화가로서도 활동했다.

류근 시인은 이외수 작가의 죽음을 ‘고아가 된 심정’으로 말하면서 작가를 기리켜 ‘높은 사람, 낮은 사람, 부자와 빈자, 남녀노소에 차별을 두지 않았고 누구에게나 고르게 진정과 진심을 베푸셨으며, 아프고 외롭고 슬픈 사람들에게 늘 친구가 되어주었으며, 불의한 자들을 미워하고 올바른 사람들을 사랑하신 분. 그리고 일찍이 이름을 얻었으나 오만하지 않았고, 선량하고 순수하고 겸손하신 분’으로 평가했다.

필자는 이외수 선생의 책 ‘사랑외전’을 찾아 읽는다. 놀랄 만한 통찰력으로 구절구절 박혀있는 명문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소설로도 에세이로도 잠언으로도 보기 어려운 장르에 누구도 선뜻 비평의 메스를 대기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되어서 안타까움 또한 더하게 되었다.

책 중간에 작가가 마흔에도 가난했으며 ‘사노라면’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술 마시며 울었다는 고백이 있다.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인데 마흔을 넘었으니 그 새파란 밑천마저 털린 기분이었다고 말했으나, 예순이 넘고 보니 가난이 가장 값진 밑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작가가 시와 소설 그 어느 장르에 안착하지 못하고 ‘소망상자’‘사색상자’‘우화집’‘인생정면대결법’ 등의 이름을 건 짧은 에세이풍의 글을 쓰게 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짐작해 보았다.

선생은 책 속에서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과거에 고통 받은 적이 있거나 현재 고통받고 있거나,과거에 슬퍼본 적이 있거나 현재 슬퍼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 저는 글을 씁니다. 저는 언제나 작가에게는 고통이지만 독자에게는 행복인 글을 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외수,「사랑외전」,해냄출판사,2012 295쪽)

우리에게 희망이었고, 소중한 이름이었고, 하나의 현상이었으며 다시 없을 아름다운 이름, 이외수! 그 분의 글을 다시 한 번 찬찬히 읽어보고 나름대로 재해석해야 겠다는 한때의 문학도다운 다짐을 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선생님! 선생님 덕분에 춘천의 물안개와 공지천을 사랑했습니다. 한 번도 뵌 적 없지만 저와 동시대를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단한 이 세상에서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여 애써주셔서 고맙습니다.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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