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착한 국민 갖고 놀지 말아야
[덕암칼럼] 착한 국민 갖고 놀지 말아야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2.06.28 0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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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윤석열 정부가 용산시대를 연지 한 달이 넘어선 가운데 여소야대의 국회를 어떻게 소화할 지 처음부터 우려가 컸다.

예측은 보란듯이 빗나가지 않았고 지방선거가 끝나자 서서히 야당 의원들의 발목잡기가 시작됐다.

문재인 정부의 인사 참극이 이번 정부에서도 유사한 형태로 나타났고 집권 초기의 살벌한 지침에 누가 감히 이의를 달 여지도 없었다.

꿈의 궁전으로 불리던 청와대는 국민들의 구경거리가 됐지만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난장판이 되면서 관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윤 대통령은 여론에 대한 관심을 보여 주듯 가장 먼저 기자실에 대한 방문과 함께 한미관계의 출발선에 도장을 찍기도 했다.

무엇보다 국민의 의견에 다양한 채널을 열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청와대와 직결된 국민청원 홈페이지다.

처음 국민청원이 시작될 때 국민들의 기대는 상당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운영하는 국민신문고와는 달리 국민의 의견이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된다는 점에서 새로운 소통의 창구가 개설된 듯했다.

20만 명의 서명을 채우면 답해야 한다는 전제도 정했고 날마다 새로운 이슈가 떠올라 언론에서도 체크포인트로 활용됐다.

5년이 지난 지금 어떤 평가를 받을까. 필자는 처음부터 청와대 국민청원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일상적으로 보통의 사람들은 남의 일에 관심이 없다. 특히 억울하다거나 자기중심의 주장에 대해서는 더더욱 관심이 없지만 반대로 남의 불행이나 자극적인 소재가 될만한 일에는 지나치게 과민한 반응을 보인다.

이러한 감정적 군중심리는 어느 한쪽의 의견만으로 편중될 소지가 있으며 자칫 사실이 확인되기도 전에 확정적 평가로 진짜 억울한 사람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령 독한 시어머니의 시집살이에 죽을만큼 힘들다며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정작 시어머니의 말을 들어보면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며느리를 아무리 가르쳐도 반항심뿐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당연히 중간에 끼여 있는 남편, 즉 아들과의 갈등만 커지고 집안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것이다. 무릇 의견이란 양쪽 말을 모두 다 들어보아야 한다.

한쪽말만 들어보면 과장되거나 말하는 사람의 중심적인 의견으로 편견에 빠지기 쉽고 그렇게 전달의 오류는 다음 사람에게 개인적인 감정이 더 포함되면 최종적으로 듣는 사람은 코끼리란 짐승은 길다란 뱀과 같다는 오인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고로 청와대 국민청원은 처음부터 편견의 소지가 있었고 실제 20만 명의 서명을 채우기 위한 방법으로 온갖 정성이 다해지지만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것이었다.

문제는 그렇게 어렵사리 충원된 동의를 구해도 청와대가 답하는 수준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대통령에게 불편한 사항은 삭제되거나 심지어 해당 의견은 직접 처리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 관할 부처로 이관했다는 답변도 있었다.

대체 뭐하는 짓인지, 애타는 심경으로 두드린 신문고의 북소리는 국민과의 소통을 하고 있다는 전시용품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국정지지도를 올리기 위한 쇼였는지 해도 너무하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고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자 이러한 단점의 밑바닥은 여지없이 드러났다. 청와대국민청원이 폐지되고 국민제안이라는 새로운 체제로 운영된다는 발표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5년 동안 약 111만 건의 청원이 접수됐지만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답변율이 0.026%에 불과했다.

애타는 국민을 갖고 놀았다면 틀린 말일까. 처음부터 실효성 없는 짓거리는 하지 말았어야 했다. 얼마나 착한 국민들인가.

아직도 넓은 바다에서 공기 좋은 산속에서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걸 보며 바보인지 착한건지, 이런 국민 데리고도 정치 못하면 그 정치는 심각한 것이다.

그동안 취재과정에서 수시로 체크해본 청와대 국민청원의 제보내용을 보면 말초 신경을 자극하거나 성적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는 내용에 동의가 많았다.

어쩌다 언론이 맞받아친 교통사고나 집단간의 대결양상이 이슈가 되었으며, 특히 정치 분야에서는 특정 지지층에 편향된 동의건수가 조직적으로 뒷받침 되면서 불특정 다수의 세력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으로 악용되기도 했다.

청원법상 비공개가 원칙인 청원 내용을 전면 공개하면서 국민들간에 갈등을 조장하는 정치 이슈로 변질되는 문제도 있었다.

이익집단의 노골적인 민원이 발생할 때 이에 해당되는 반대 입장의 경우 며느리 말만 세간에 화제가 되어 지독한 시어머니로 몰리는 경향도 많았다. 사람이 모여 산다 해서 사회다.

모여 살면 당연히 크고 작은 소음이 있는 것이고 거미줄처럼 촘촘한 사회구조에서 서로 먹이사슬이 형성되었으니 어떤 형태로든 충돌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나라가 어째 개인이나 집단의 이해관계에 일일이 나설 수 있는 것이며 마치 해결해 줄 것처럼 나선다면 법원이 왜 필요하고 사법기관이나 언론의 존재의의는 뭐란 말인가. 할 수 있는 일에만 나서야 한다.

어느 집단이나 생태계든 모두 상호관계가 맞물려 있는 것이다. 개구리나 쥐들이 민원을 제기하여 뱀을 이 땅에서 사라지게 해달라면 그렇게 해 줄 것인가.

게으른 자가 일하지 않고 월급이 적다며 하소연 하면 고용주만 혼낼 것인가. 자신의 잘못을 감춘 채 상대방만 나쁘다고 하소연 하면 상대방 의견도 들어보지 않고 회초리를 들 수 있는가.

그래서도 안 되지만 신문고란 기존 사회구조에 맡겨야 한다. 나라는 국정만 잘 운영하면 되는 것이지 설자리 앉을자리 구분하지 못하다보니 너도나도 걸핏하면 청와대 민원 올린다며 동네 어린 아이들도 설치는 것이다.

인기가 아쉬우면 지금같은 쇼보다 암행어사 제도라도 만들어 못된 관료들이나 악덕기업을 색출해 내는 것도 방법 중 하나다.

감사원이나 지자체 감사실의 안일한 감사만 제대로 돌아가도 굳이 청와대 어쩌고 할 일은 없는 것이며 대통령은 국가적 사안에만 치중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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