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강간치사죄에 대한 이성적(異姓的) 경종(警鐘), 대학구성원의 연대책임과 사회책임, 책임소재를 명확히 밝혀 누구도 억울함이 없도록 하라!!
[사설]강간치사죄에 대한 이성적(異姓的) 경종(警鐘), 대학구성원의 연대책임과 사회책임, 책임소재를 명확히 밝혀 누구도 억울함이 없도록 하라!!
  • 이찬엽 논설위원 pinetree0516@hanmail.net
  • 승인 2022.07.18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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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엽 논설위원
▲이찬엽 논설위원

후회스럽게도, 세속을 떠난 산속의 승려로 그리고, 오로지 믿음만을 추구하는 예배당의 목회자였었으면 오히려 좋았으련만.

학문과 미래를 꿈꾸고자 했던 당사자들이 왜 이런 파국을 스스로 맞이했는가. 충격적이고 야속하기까지만 하다. 그렇게도 진실성 있는 “범죄교육”을 받아왔건만 왜 세상에서 가장 참혹한 범죄를 나 스스로 저질러야 했는가.

왜 견디지도 못하는 알코올에 의존하여 범죄를 저질렀단 말인가. 그러나, 이제와서 누구를 탓하겠는가. 누구한테 하소연하겠는가. 그리고 법적 구제를 어떻게 바라겠는가. 물질만능주의, 결과만을 쫓고 과정을 무시하는 “부실교육의 폐단”이 이제야 드러날 줄이야.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 곳은 대학 캠퍼스(인하대)였고, 사망한 여학생의 범죄 혐의자로 지목된 자는 다름 아닌 동급생이었다. 일반적으로 강간살인과 강간치사범죄는 우발범이 많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우발범으로 생각하기에는 다소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왜 그랬을까. 이들은 동아리 파티에서 만취 상태로 기숙사에 들어왔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렇다면, 일차적 책임은 동아리 책임자 및 선배‧동료에게 있다.

대학 풍속을 모르는 신입생에게 술을 강요하는 것은 명백한 범죄행위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 이 사건은 소위 말하는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라고 판단된다. 즉, 자신의 과실(음주)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가 범죄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원한에 의한 범죄를 배제하는 것은 또한 아니다. 얼마 전 빚에 못이긴 한 가족의 자살 사건을 떠올리면, 이 모두가 개인 문제가 아닌 “사회문제”로 귀착된다.

거기다, 나아가, 혐의 남학생은 추락한 여학생의 옷과 화장품을 내다 버리는 증거인멸을 했다는 점에서 충격은 더한다. 이런 것은 어디서 배웠을까. 혹시 “모방범죄”는 아니었을까.

통상, 제3자가 친구를 강간하려 달려들면 오히려 이를 방어해줘야 하는 것이 우리의 “미풍양속” 아닌가. 

이번 사건은, 대학문화의 “구태의연”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망자는 사건 당시 옷을 입고 있지 않았으며 3층에서 떨어진 지 얼마 안 되었는지 머리에 피를 흘리고 있었음에도 태연히 집으로 돌아간 가해자의 냉혹함이 구태였다. 그렇다면, 당시, 기숙사 건물을 관리하는 사람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이건 학교 당국의 총체적 문제다. 

필자는, 이번 사건을 보면서, 가해자가 “디지털 문화”에 대한 중독성 소유자였을 가능성을 점쳐본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을 너무나도 태연하게 저지른 것은 범죄에 대한 무감각증으로 보였다.

범죄 혐의자는 대체로 사건에 대한 책임을 시인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당시는 술에 취해 사물을 분간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이건 무엇을 뜻하는가. 

수사기관은 CCTV를 동원해 누구와 함께 술을 마셨는지를 조사 중이다. 만일 그중에 책임자가 있으면 형사책임을 피할 수 없다.

또한, 피해자가 정신을 잃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도 본 사건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오직 둘만 그 장소에 있었는지 아니면 “조력자”가 있었는지도 문제 된다. 종전에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고, 당시에도 벌거벗겨진 채 여성이 추락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는, 당사자 이외에는 다른 사람의 관여는 없었다. 

이 사건의 충격은, 종전 “한강 대학생 실종사건”과 더불어 “사회적 파장”으로 이어질 태세다. 사건의 대상이 대학생이라는 점은 물론, 가해자가 동료로 의심 내지는 지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번 사건은, 그동안 쌓여왔고 조용히 덮어버리려 했던 많은 “강간살인(치사) 사건”에 대하여 다시 한번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었고,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일탈뿐만 아니라 이를 유발시킨 “사회연대 책임의 실종”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사회성을 잃은 “이기주의의 종합세트”였다. 

그러나. 사건의 과정도 파헤쳐봐야 한다. 술을 마시고 심신이 상실될 정도인 사람이 자발적으로 그것도 나체로 9m 아래로 떨어졌다는 점이 석연치 않다.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할 여지 또한 있다. 결정적 가해자가 지목된 남학생이 아닐 수 있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만일 남학생도 “만취 상태”였었다면, 어떻게 상대방을 폭행하고 간음(나체)할 수 있었을까.

그러니까, 한편으로는 혐의자가 “수사기관의 신문”에 겁을 먹고 자백을 했을 가능성도 열어놓아야 한다. 즉, 사건을 미리 추단해서도 안 된다. 

즉, 위와 같이 본다면, 박지현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발언은 잘못된 발언이다. 남학생의 성폭행을 미리 특정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즉, 만취해 다른 동급생에게 성추행을 당하였든, 아니면 또 다른 원인으로 이에 수치심을 느껴 자살을 택했을 가능성 또한 있다는 것이다. 당사자인, 둘은 세상을 모르는 말 그대로 신입생이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다른 원인도 있을 수 있다.

또한, 술을 함께 마셨다면, 한쪽은 정상인 상태 내지는 심신미약 상태 및 상대방은 심신상실 상태인 경우와 둘 다 심신상실 상태인 경우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핸드폰을 놓고 갈 정도였다면 가해자 또한 심신상실 상태였을 수 있다.

그런데, 기숙사 건물 구조로 봐서는 창문을 통한다 해도 쉽게 넘을 수 있는 공간은 아니다. 그렇다면, 협동으로 떠밀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즉, 둘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존재했을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그 다른 사람은 기숙사 내에 “이미 존재했던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한편, 경찰 수사는 대략 정리되는 듯하다. 즉, 동료 학생을 참고인 신분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하여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아무리 실토를 했더라도 경찰 조사는 신중해야 한다. 

허나, “기가 막힌 것”은, 동료 남학생과 망자는 인생의 꽃을 한 번 피워보지도 못하는 파국을 맞았다는 점이다. 가해자는 최소 몇 십년은 교도소밖으로 나올 수 없다. 그렇지만, 이러함에도 사인에 대한 실체적 진실은 반드시 밝혀야 한다.

강간과 강체추행을 피하려다 사망했는지 아니면 다른 원인으로 인해 사망했는지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당일 오후 1시 30분(입실)부터 오후 3시 40분(발견)까지(약 2시간 10분)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조사가 필요하다. 

우리에게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학문의 전당인 대학교정에서의 사건이었기 때문이고,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나이 어린 신입생이었다는 점이다.

가장 평온해야 할 대학 기숙사에서 발생했다는 점도 충격적이다. 일차적으로는 당사자가 책임을 져야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동아리 책임자, 기숙사 관리인, 나아가서는 “대학 총책임자의 문책”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믿고 맡긴 학부모에 대한 배신행위 아닌가!

언급했듯이, 만일 대낮에, 신입생에 대한 과도한 요구에 의해, 불가피하게 음주를 강요했다면 그 책임은 연대책임일 수밖에 없다.  

자. 지금은 국가의 영속을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시대고, 사회구성원들도, 어찌 보면, (상당 부분) 도덕적 해이에 빠져, 오로지 금권만능만을 추구하는, 매우 불안정한 시대다.

사람의 인격도 생명도 하찮게 생각할 수 있는 “아노미(무규범)시대”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사회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높은가. 가지지 못한 자. 어린 사람. 여성이 그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지 않은가.

따라서, 이 문제는, 쉽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법의 준엄함을 통해 일벌백계로 다스림이 필요하다. 우선, 직접적 관할 책임자를 엄벌하고 포괄적 책임자 또한 형벌로 다스려야 한다.

즉, 시대에 역행하는 초미의 사건이 대학 캠퍼스에서 일어났는데도, 약소한 일로 치부하고 간과한다면, 결국, 국가와 사회가 왜 필요하겠는가. 이번 사건은 “사회연대감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충격적 사건이었다.

따라서, 사회와 국가는 책임감 있게, 사건의 실체를 철저히 규명하고 “망자의 한”을 풀어주는데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찬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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