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사회 복지의 날
[덕암칼럼] 사회 복지의 날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2.09.07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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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해마다 장마가 끝날 즈음이면 연례행사처럼 태풍이 한반도를 거쳐 갔다.

올해도 보란 듯이 ‘힌남노’가 혼자 오기 그런지 많은 비와 강력한 바람까지 동반하여 남동부지역인 부산을 중심으로 지나갔지만 다행히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 힌남노는 당초 기상청이 19년 전 우리나라를 강타한 초강력 태풍‘매미’보다 더 큰 위력이라며 전국민을 상대로 공포의 발표를 했음에도 여전히 누구나 알 수 있는 위성사진 해석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기상청의 오보가 어제 오늘 일도 아니지만 이럴 때 틀리는 것도 불행 중 다행이다. 태풍 힌남노는 라오스에서 제출한 이름으로 돌, 가시, 새싹을 의미하는 단어다. 이렇듯 자연재해 뿐만 아니라 인재로 인한 인명피해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재난이지만 이런 어려움조차 빈부의 격차에 따라 받아들이는 폭이 달라지니 사람 사는 세상 참 아이러니다.

같은 더위라도 누구는 다리 밑에 자리 깔고 부채질 하는가하면 냉방장치 빵빵 돌아가는 거실에서 더위가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사는 사람도 있다. 물론 추위도 마찬가지이며 먹고 자는 것 보고 느끼고 입고 씻는 것조차 천차만별이다. 어찌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사람이라도 살아가는 모습이 이리 다를까.

잠시 살다가는 이 세상 삶의 굴레 속에 천년을 누릴 것처럼 뻐기며 권세를 앞세워도 기껏해야 4년짜리 단체장들이고 임기가 임박하면 비굴한 웃음을 흘리며 손바닥 지문이 닳도록 표를 구걸해야 재임할 수 있으니 권불십년이란 말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서론이 긴 것은 사람은 누구나 잘 먹고 잘 살고 싶지 열악한 환경 속에 겨우 버티는 삶을 원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 현실이 그렇던가. 자본주의 근간인 시장경제 논리가 그러하고 거미줄보다 더 촘촘한 먹이사슬이 그러하기에 나름 돈을 벌기 위해 각자의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야 입에 풀칠이라도 하는 것이다. 필자는 취재 도중 선거철이면 온갖 미사여구가 담긴 현수막들이 즐비하고 그 현수막 아래 파지를 높이 쌓아올린 손수레의 힘겨운 이동 장면을 몇 번이고 메인 사진으로 올린 바 있다.

굳이 비교우위에서 독자들의 관심을 끌려는 것이 아니라 정치를 하는 사람이 후보시절 뱉은 말을 절반이라도 실천했다면 빈부격차나 기형적인 사회구조를 근절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의도에서 보도한 것이었다. 사람 사는 사회에 사람이 우선이고 중심이며 전부여야 한다. 적어도 먹고 자는 문제만큼은 기본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며 각자의 자유에 따른 책임을 다하지 못해 본능적인 민생고에서 허덕인다면 이는 세금을 걷은 자들이 사각지대를 해소해야할 소정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마련된 정책이 사회복지이며 제도권의 사각지대에서 소외된 계층일수록 그 수혜의 가치는 높아지는 것이다. 오죽하면 선진국의 가치 잣대가 해당 국가의 복지 수준을 기준으로 할까. 제 아무리 정치를 잘 해도 사람이 일 하려 하지 않고 손만 벌린다면 이 또한 가난은 나라도 못 구한다는 말이 맞는 것이다.

진정한 복지란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놀고 있다면 외면해야 하는 것이고 일할 능력이 안 되는 어린아이와 노인과 환자들은 어떤 식이든 구제해야 맞는 것이다. 따라서 복지란 사지 멀쩡한 사람에게 게으름의 환경을 만들어 주고 그 대신 표심을 구걸하는 수단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사람의 본능적 이기심은 끝이 없으므로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충분히 일할 수 있는 사람에게도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수당이란 명목으로 놀게 하니 귀한 세금 걷어 적시적소에 사용하지 못 하는 예산편성의 부실함이 망국으로 가는 지름길이 되는 것이다. 오래 전 모 시청의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가구를 대상으로 벌인 범죄는 참으로 끔찍한 현대사회의 모순을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수급자 기준을 평가하여 수혜 대상 가구에 포함하는 업무를 맡은 담당 공무원이 해당 가구에 지급하는 금액의 일부를 다시 자신의 주머니로 돌려받는 조건을 제시하는가 하면 조손 가구임을 파악하여 어린 손녀를 성폭행해도 할머니는 그 돈이라도 받으려고 문밖에서 외면한 채 울고 있어야 하는 현실.

고급차 굴리며 골프장은 다녀도 차량 유리창에는 장애인 주차스티커를 붙인 채 온갖 복지혜택을 누리는가 하면 기초생활 수급뿐만 아니라 정부가 고육지책 끝에 내놓은 온갖 복지정책을 교묘히 챙기는 얌체족들까지 복지를 위한 혈세는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줄줄 새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차마 표현하지 못 하는 불편한 진실까지 다 표현한다면 불우이웃이나 불행한 나라의 어려움에 동정심을 유발하여 걷는 기금까지 손절할까 염려되어 여기까지만 한다. 오늘은 22년 전인 2000년 9월 7일 정부가 사회복지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어려운 이웃을 구제하고자 정한 ‘사회복지의 날’이다.

사회복지는 이미 사회 전반에 걸쳐 중요한 분야 중 한곳으로 자리 잡았고 대학에서는 사회복지과에 대한 지원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일반인들도 사회복지사 자격증은 기본이며 행정기관에서도 사회복지과의 업무량은 광범위한 만큼 근무자 인원수도 증가했다. 사회복지의 날이 제정된 지 22년, 이제는 가짜를 걸러내야 할 만큼 성숙한 시기가 됐다.

정부가 전시행정의 시스템을 개선하여 보다 현실적인 수혜자를 찾아내야 사각지대가 없어질 것이며 지난 잘못보다 앞으로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조금 힘들고 귀찮더라도 허위 수혜자를 걸러내는 거름망의 칸을 좀 더 촘촘히 짜야할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정작 필요한 수혜자들을 위해 허위 수혜자들 스스로가 양심적 가책에 의해 복지예산을 축내지 않는 것이다.

일할 수 있다면 일해야 하고 땀의 대가로 당당하게 받은 돈으로 금전의 귀한 가치를 공감해야 한다. 놀고먹는 버릇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생활이 되며 생활은 그 사람의 삶이 된다. 놀고먹으라는 못된 버릇을 들이는 자는 복지예산이라는 돈을 주고 자신의 표를 사는 정치인이며 그 버르장머리를 고칠 수 있는 것은 부정한 수령자였던 얌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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