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엄마 십 원만
[덕암칼럼] 엄마 십 원만
  • 경인매일 김균식 회장 kyunsik@daum.net
  • 승인 2022.10.05 0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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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1970년 필자가 5살 때 지금의 노모에게 졸랐던 말이다. 당시 10원이면 눈깔사탕이나 뽀빠이 같은 과자 한 봉을 살 수 있었는데 세월이 흘러 초등학교 5학년쯤 어느 날 마룻바닥 틈새로 빠진 백원짜리 동전을 찾기 위해 높이가 30cm밖에 안 되는 마루 밑을 기어서들어가 보니 온갖 잡동사니 사이로 10원, 50원, 100원짜리 동전이 약 20개는 널려 있었다.

속담에 ‘마당 쓸고 동전 줍고’라는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세월이 흘러 1981년도에는 지폐로 사용하던 500원짜리가 동전으로 등장했다. 이때만 해도 500원이면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화폐가치가 있었고 동시에 10원짜리가 돈 취급 받지 못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다시 말해 길바닥에 10원짜리가 떨어져 있어도 줍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만약 1,000원짜리 지폐가 있었다면 당연히 주웠겠지만 10원이 100개 모이면 천원일진대 산술적으로 알면서도 돈 취급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은 100원짜리가 그런 신세가 됐다. 필자의 모친이 하시는 말씀에 의하면 자고로 돈은 버는 자랑말로 쓰는 자랑하라했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매년 동전 발행으로 사용되는 국고손실이 엄청나다.

사실상 유통되지도 못하고 저금통이나 심지어 길바닥에 떨어지면 쳐다도 안보는 금속조각이 되었기에 이쯤되면 동전 발행에 대한 의미나 활용도가 전무해진 셈이다. 필자가 지난 2019년 겨울 미국 뉴저지 공원에서 만난 노인의 행동에 유독 눈길이 가는 이유를 소개한다. 이어폰을 낀 채 손에는 금속탐지기가 들려있었는데 공원이나 특정 공간에 대한 점유비를 내고 동전을 줍는다는 것이다.

1센트짜리까지 금속탐지기를 통해 모두 주울수 있으니 하루 평균 한국 돈으로 약 5만원 이상의 수입을 챙긴다고 했다. 물론 버려지는 동전의 재활용은 다시 은행을 통해 불필요한 동전발행의 여지를 그만큼 줄일 수 있는데 한국은 그러한 직업 자체가 없다. 지금이라도 금속탐지기를 구입해 온 사방을 다니며 동전을 줍는다면 적어도 파지 줍는 것보다는 더 수입이 짭짤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현재 파지가격은 kg당 120원이다. 라면 박스 한 개면 약 30원이고 하루 종일 이를 모아봐야 20kg정도이니 약 2,500원 정도에 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국내 파지수집 노인의 숫자는 약 수 만명에 달한다. 이는 인천시 만 65세 이상 인구 38만명 중 폐지수집 노인은 2만 2천명, 먹고 살기 위해 폭염이나 한파에도 파지를 주워야 하는 생계형 수거노인은 약 1만8,000명을 추산된다고 하니 이를 대한민국 전 인구와 비례 해보면 대략적인 답이 나온다.

길바닥에 널린 임자없는 동전들. 언제부터 한국이 이렇게 부유한 국가가 되었으며 잔돈을 무시하고 저축이란 단어가 생소해졌는지 돌아볼 일이다. 돼지저금통이 집집마다 돈을 아끼고 모으는 상징물이라면 모두 카드로 오고가는 시대에 동전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마는 돈에 대한 터부시는 이제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문득 엄마 십 원만 하던 시절이 그립다. 이제는 팔순을 바라보는 노인이 되었지만 늘 모시며 어릴적 받았던 무한금융지원을 환불중이다. 안타깝게도 호의호식해 드려야 할 금전이 병원비로 지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얼마 전 뉴스를 통해 보도된 청소년들의 동전 취급에 대한 인식이 달라도 너무 달라졌음을 공감케 했다.

서울시내 버스 안에서 현금 없는 버스가 등장할 정도로 교통카드가 보편화했지만 카드 소외 계층인 청소년들이 가끔 현금으로 버스요금을 내면서 귀찮거나 부끄럽다는 이유로 거스름돈을 외면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전언을 빌리자면 편의점 과자 하나도 1천원을 넘는데 거스름돈으로 동전을 받아봐야 쓸데가 없다는 것이다.

괜히 주머니에 굴러다니는 동전이 움직일 때마다 소리도 나고 귀찮다는 것이다. 버스 운전기사의 전언을 빌리자면 학생중 10%는 현금을 내는데, 거스름돈을 가져가지 않는 비율이 절반 이상이며 심지어 1천원을 내고도 450원의 거스름돈이 필요 없다는 말을 들을 때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는 것이다.

물가 상승으로 인해 잔돈이 제 역할을 하지는 못하지만 잔돈이 모여 목돈이 되는 진실이 외면당하는 것이기에 더욱 안타깝다. 한푼 두푼 모아 절약해서 목돈 모으자는 말이 구시대적 전설인 반면 젊은 세대의 편의주의와 화폐가치 하락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의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금이라도 자라는 아이들에게 잔돈도 모으면 태산이 된다는 사실을 경제 교육으로 가르쳐야 할 필요성이 분명하다. 무조건 카드로만 모든 걸 결제하는 시대가 됐기에 잔돈은 돈도 아니라는 인식이 팽배해진 것이다. 숫자 개념은 이러하다. 10,000원짜리 물건을 9,900원 하면 싼 걸로 착각한다.

작은 걸 무시하는 개념이 어찌 큰걸 모을 수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작은 정성이 모여 대업을 이루듯 아이들, 뿐만아니라 기성세대도 작은 걸 귀히 여기는 사회적 인식과 정신적 재무장이 필요한 시기다. 이제 다시 500원짜리 동전이 모아지는 돼지저금통이 필요한 시기가 온 것 같다. 어쩌면 얼마 지나지 않아 1,000원짜리 동전이 등장하지 않을까. 갈수록 은행의 환수율이 떨어지는 동전들.

이제는 현실적으로 쓸모가 줄어든 만큼 정부의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한 시기다. 하지만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격언만큼은 되새겨야할 시점이다. 오늘따라 10원짜리 동전만 50만개도 더 모은 필자의 노모에게 얻은 교훈이 문득 떠오른다. 돈은 버는 자랑 말고 쓰는 자랑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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