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50년 전의 일이다. 초등학교 재학시절 민방위의 날, 화생방 경보가 울리면 운동장 한가운데로 나가 비닐을 뒤집어쓰고 사이렌이 울렸다가 그칠때까지 쪼그리고 앉아 있던 시절이 있었다. 화생방이란 화학전, 생물학전, 방사능전의 줄임말인데 북한에서 미사일로 화학전을 벌이면 국민들이 그런 상황을 대비해 미리 예방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훈련이 얼마나 어이없고 말도 안되는 지를 돌아보자. 세월이 15년 정도 지난 1985년도 필자가 육군 일병으로 한창 군사훈련을 받던 과정에 얻게 된 상식은 비닐 한 장으로 화생방을 피할 수 있는 확률은 0에 가깝다는 것이다.
방독면을 쓰고 해독제로 피부를 소독하는 등 실제 전시에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하는 과정은 군인들만이 아는 섬칫함이 전제된다. 이를 체험하려고 만든 곳이 가스실이다. 훈련소나 자대 배치 이후에도 유격훈련이면 한번씩 겪어야 하는 가스실은 일반 시내에서 경찰이 쏘는 최루탄과는 비교도 안 된다.
구멍난 방독면을 쓰고 가스실에서 앉아 일어서를 몇 번만 하면 참았던 산소는 다 소진되고 이후 군가를 한 두 곡 부르고 나면 고스란히 가스를 마시게 되는데 훈련용이라 인체에 치명적이지는 않다. 눈에 들어가면 비비지 말고 흐르는 물에 씻으라는 단순한 방법이 전부지만 전쟁에서 사용되는 인마 살상용 화학탄 가스가 살포될 경우는 상황은 다르고 극심한 공포를 동반한다.
무색·무미·무취, 아무런 기미도 없이 독가스가 사용되면 그냥 여기저기 픽픽 쓰러지고 온몸의 구멍에서 거품과 피가 쏟아지는 현상이 나타날텐데 언제 비닐 한 장 쓰고 버틸 것인가. 다시 시간이 15년쯤 지난 2000년 어느 날 언론사 기자로 활동하면서 일선 행정복지센터에 비치된 방독면과 지하 대피소의 실태를 조사한 바 있다.
기한이 1년 지난 것은 보통이고 지하 대피소랍시고 정해진 곳을 조사해 보면 일반 상가 지하나 땅속이면 죄다 대피소 목록에 올라가 있었다. 간혹 민방위 대피소랍시고 가보면 발전기는 녹이 슬어 시동걸어본지가 몇 년이 되는 것에다 누렇게 곰팡이가 피어 사용이 불가한 각종 장비들이 창고에 쌓여있었다.
반대로 이 같은 민방위 대비에 얼마의 예산이 투입되었는지를 살펴보면 더더욱 가관이다. 일단 전쟁은 나지 말아야 한다. 6·25전쟁이후 70년이 지났고 이제 평화와 자유는 넘칠 만큼 호사스럽게 누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할 수만 있다면 이 평화, 깨지지 말고 자손만대로 갔으면 좋겠지만 어디 원한다고 그리 되던가.
단군이래 오천년 동안 수백 차례나 침탈당한 역사가 있었고 지금의 평화가 영원하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정치인들은 서로 할퀴고 싸우며 자신들의 합리화에 침 튀기기에 바쁠 뿐이다. 순환주기로 보자면 지금 당장 전쟁이 발발한다고 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평화의 시간이 지났다.
필자는 전쟁 위험을 확대 해석하여 관심을 끌거나 예언처럼 떠벌리자는 것이 아니다. 자유란 책임이 따르는 것이며 위험은 사전예방으로 인명피해를 줄이는데 목적이 있다. 믿어지지 않는다면 지금 즉시 가까운 행정복지센터나 민방위 대피소를 찾아 전쟁 발발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며 보유한 방독면은 주민 수 대비 몇 개나 되는지, 사용기한을 넘기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엉뚱한 민방위 예산이 줄줄 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다 그렇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알고도 설마 하는 공무원들이나 막상 판 벌어지면 어찌되겠지 하는 국민들의 무심하고 방만한 자세를 보면 배짱이 좋은 건지 어차피 피하지 못할 거 날 테면 나라는 것인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북한이 미사일 쏘는 것을 동네 아이들 새총으로 새잡는 놀이하듯 쉽게 여기는 분위기다.
비용만 해도 1,000억원이면 평양을 제외한 변두리 주민들 1년은 밥걱정 안할 돈인데 연신 서해나 동해상에 바다로 쏘아댄다. 멀쩡한 물고기들만 날벼락을 맞는 셈인데 이번에는 울산 앞 80㎞에 전략순항미사일 2발을 쐈다고 대놓고 자랑한다. 쏜 자가 지난 2일에서 5일 사이 쐈다고 하는데 맞은 자는 그런 것 없다고 한다.
만약 북한의 주장이 허위나 거짓이 아니라면 우리나라 영토에 적군의 미사일이 떨어진 줄도 몰랐다는 이야기다. 울산에서 80km면 명백한 전쟁통보나 마찬가지다. 사실이라면 국방부에서 몰랐다는 얘긴데 이는 안보를 책임져야 할 관계자들을 엄벌에 처해야 맞는 것이다. 경계태세가 허술함을 떠나 첨단 국방이 어쩌고 한 말이 무색한 것이다.
지난 2일 오후 함경북도 지역에서 590.5㎞ 사거리로 남조선 울산시 앞 80㎞ 부근 공해상에 2발의 전략순항미사일로 보복타격을 가했다고 주장했는데 뭐가 자랑이라고 72년 전 전쟁을 일으킨 당사국이 같은 동족 간에 할 소리는 아니다.
이미 탄도미사일이 동해상 NLL을 넘어 속초 앞바다에 떨어진 것과 관련해 보복타격을 했다고는 하지만 구멍 난 안보는 어쩔 것인가. 북한의 전략순항미사일은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3일에는 3시간 47분에 걸쳐 전투기 수백대를 동원한 총 전투 출동작전을 진행했고, 5일에는 전술탄도미사일 2발과 초대형방사포탄 2발을 발사했다고 발표했다. 합참은 북한의 주장이 다르다고 했지만 진짜 달랐다면 북한의 겁박용 멘트에 불과하고 아니라면 국방부의 빈틈을 보여준 치명적 사고다.
앞서 거론한 화생방이나 핵폭탄이나 모두 미사일에 장착하여 목표물을 조준하는 방식이다. 큰 틀에서 보자. 정치권은 서로 싸움질에 여념 없고 레고랜드 사건으로 돈줄은 한파에 물 얼듯 바짝 얼어붙었다. 강원도지사의 말 한마디에 대출 불안의 도미노는 어디가 끝인 줄 모른다.
멀쩡히 공사 중이던 현장이 돈 구하러 쫓아 다니기에 바쁘지만 한번 움츠린 대출 창구는 답이 안 나온다. 잘하는 짓이다. 코로나19는 슬금슬금 확산세를 보이고 민방위 대책은 한쪽 눈을 감고 있으니 참으로 대단한 국민에 더 대단한 공무원에 더 대단한 정치인들이다.
달도 차면 기운다 했고 평화를 유지하고 지키려는 의지는 우리 스스로의 노력에 달려있다. 이러다 한판 제대로 붙을 수 있다. 죽음의 백조가 한반도 상공을 날면서 참수 어쩌고 선제공격 저쩌고 하다가 판이 커질 수 있다. 쥐도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