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농자천하지대본 아직도 늦지 않았다
[덕암칼럼] 농자천하지대본 아직도 늦지 않았다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2.11.11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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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농업은 천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큰 근본이라는 뜻이다. 주자십회 중 하나가 춘불경종추후회라는 말이다. 이는 봄에 씨앗을 뿌리지 아니하면 가을에 후회한다는 말이다. 오늘은 ‘제27회 농업인의 날’로 농민의 수고를 격려하고 일손을 지원하기 위해 기념하는 날이며 매년 11월 11일이다.

해방이후 권농일로 시작되었는데 1973년 어민의 날, 목초의 날과 합쳐져 권농의 날로 변경되었다가 1996년 다시 농업인의 날로 변경된 것이다. 여기서 어민들이 2011년 4월 1일이 ‘제1회 수산인의 날’로 분가해 나갔으니 순수 농민만 남은 셈이다.

필자가 굳이 기념일을 대충 넘기지 않고 글을 쓰는 연유는 그나마 그런 날이라도 빌미 삼아 수고로운 국민들을 격려하고 해당 분야의 가치를 공감하자는데 그 취지가 있다. 일각에서는 가래떡데이, 빼빼로데이로 인기를 끌고 있지만 농업인의 날임을 먼저 알아야 하기에 강조하는 것이다.

독자들은 공깃밥 한 그릇에 얼마의 쌀이 필요하며 그 가격은 얼마라고 생각하시는가. 필자는 대학교 식당을 운영하다보니 아침마다 새벽시장을 돌아다니며 물가를 체감하게 된다. 그 잘난 정치인들이 일반 서민들의 밥상물가를 얼마나 알까. 물류와 유통, 도·소매의 원리도 알지 못하면서 걸핏하면 로컬푸드나 청년창업이랍시고 국민들에게 생색이나 내며 생산자·소비자를 직결하여 거품을 줄인다고 한다.

일찍이 그런 탁상행정이 성공한 예를 본적이 없다. 그러다 실패하면 아니면 말고 식이다. 각설하고, 매일 다른 야채 가격, 생선, 이따금씩 폭탄세일 나오는 공산품, 몇 번을 생각해봐도 제일 싼 것이 쌀값이다. 그래서인지 쌀값이 45년 만에 최대로 폭락해 농민의 생존권에 대한 보장이나 대책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8일 오후 전국농민총연맹이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 삼각지역 사거리에서 집회를 가졌다. 요구사항은 밥 한 공기당 쌀값 300원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이들은 한강대로 2개 차선을 점거한 채 집회를 이어갔다. 솔직히 국민들은 관심 없다. 그냥저냥 평범한 집회 중 하나겠거니 하지만 이들의 현실은 절박하고 막막한 상황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이들은 정부가 양곡 관리법을 전면 개정하여 쌀에 대한 최저가격제를 실시 해 달라고 외치는 것이다. 쌀값 폭락은 농가 부채로 이어지고 이는 곧 농민들이 농사를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연계된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2023년 농업예산을 물가 상승률에도 못 미치게 책정해 사실상 현실을 외면한 것이나 진배없다는 것이다.

다른 집회처럼 엄청난 군중이 동원되지 않았고 여론의 관심도 끌지 못했다. 외로운 투쟁을 하고 있는 농민들의 심경은 국민들이 알아주어야 한다. 걸핏하면 대통령 탄핵이니 문재인 前 대통령 구속이니 하는 정치모리배들의 선동질에 놀아날 것이 아니라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필자가 농민단체와 그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농사의 기반이 무너지면 당장은 몰라도 그 피해가 고스란히 밥상으로 이어져 결국에는 우리 후손들의 먹거리만 치명적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점이다. 가령 밀농사의 기반부터 돌아보자. 밀과 보리는 6·25 전쟁이전 우리네 농사의 근본이었다. 오죽하면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었을까.

농사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가 기반 이라는 게 있다. 한번 무너지면 다시 복구하기에 많은 시간과 자본이 필요한 것이며, 이 또한 절실함에 의한 국민들의 공감대와 입법기관의 개정안이 통과되어야 가능한 것이기에 어떤 분야든 기반을 포기하기까지 많은 검증도 거치고 고증도 남겨둬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정작 필요할 때 재기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기계화, 대량생산화 되면서 이미 사라진 기반들이 한 두 가지인가. 하지만 농사기반만큼은 우리 밥상의 근본이다. 전쟁의 폐허 속에 미국의 밀 원조는 지속적이고 매우 저렴한 가격에 한국인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구호물자였다. 국수, 빵, 과자는 물론 수제비와 호떡까지 모두 밀가루였다.

그것도 바다 건너 수입되어 유통과정을 거친후 일반 소매점에 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필요한 관계로 방부제가 푸짐하게 뒤섞인 밀가루, 뒤늦게 우리 밀이 생산을 추진했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일단 높은 인건비에 생산비도 높아지니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고 수 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움을 견딘 끝에 이제 겨우 농협이나 대형마트에서 우리 밀을 구입할 정도로 성장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자장면을 좋아하다보니 우리 밀에 대한 애착이 큰 편이다. 건강에 이로운 밀은 겨울을 이겨내고 봄에 수확하는 작물이다. 당연히 건강에도 좋으며 ‘밥이 보약’이라는 말과 어울린다. 하지만 막상 면을 뽑으려면 잘 뭉쳐지지 않아 글루텐을 섞어야 쫀득한 수입 밀에 길들여진 입맛을 맞출 수 있다.

최근에는 반죽이 쉬운 우리 밀도 나왔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랬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만든 밀로 자장면 한 그릇 만드는데 드는 밀가루 비용은 얼마나 될까. 시중에 판매되는 밀가루 20kg은 최저 5,590원부터 최고 75,640원까지 있다. 20kg으로 약 130그릇 정도의 자장면을 만들 수 있으니 한 그릇당 순수 밀가루 값은 43원에서 아무리 비싸봐야 580원이다.

대형마트 가면 완제품 자장이 500원 정도니 다 합쳐도 원가는 1,000원 남짓이다. 여기에 인건비, 배달료와 기타 임대료를 더하니 비싸지는 것이고 거품은 여전히 식당의 수익으로 돌아간다. 쌀은 더 한다. 밥 한 공기에 어디를 가나 1,000원인데 실제 드는 쌀의 원가는 200원도 채 안된다.

어쩌면 아직은 가장 싼 밀가루나 쌀, 기타 식자재들이 언제 폭등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우리 농사가 기반을 잃어버리고 수입에 길들여지면 당장은 싸게 먹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방부제 뒤범벅이 된 고가의 농산물을 꼼짝없이 사 먹어야 하는 시대가 올지 모른다. 농민은 우리 밥상의 근본이다.

모든 분야가 다 가치 있고 소중하지만 농민의 날을 기념하여 농민들의 수고로움과 고마움 정도는 기억해야 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식사 때 밥풀 하나도 남기지 않는다. 농민의 수고로움 이전에 햇볕과 땅과 비와 바람, 그리고 이따금씩 혼자 논을 지켜온 허수아비의 고독이 공감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옛날이야기가 되었지만 논 웅덩이에 바글거리던 미꾸라지들이 영양식 이었고 벼가 생산하는 산소가 인체에 얼마나 신선한 공기청정기였는지,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다. 논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물도 정화하며 더위도 식혀준다.

그런 논이 급속한 속도로 특용작물이나 고소득을 향한 형질변경의 주요 표적이 되어 사라지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정치권에서 농사의 가치와 쌀 생산에 필요한 예산 지원, 정책 반영에 적극적으로 앞장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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