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서른 살 수능 이대로가 좋은가
[덕암칼럼] 서른 살 수능 이대로가 좋은가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2.11.18 08: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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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지난 1993년 시작된 대입수학능력시험이 올해로 30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현재 대학입시는 정시와 수시로 구분되어 있는데 수능 성적만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정시 전형이 줄어들고 있다. 2004년 56%였던 정시 전형은 2022년 22%까지 줄었다.

물론 수시는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시험을 기준으로 학생을 뽑는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다는 점을 방증하고 있다. 어제는 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날이다. 오전 7시부터 8시 10분까지 전국 1,370곳의 시험장에 입실해야 했으며 시험장마다 2명의 경찰관이 배치됐다.

1교시 국어, 2교시 수학, 3교시 영어, 4교시 한국사· 사회과학탐구, 5교시 제2외국어와 한문으로 오후 5시 45분 종료됐다. 총 지원자는 50만 8,030명이고 그 결과는 12월 9일 발표된다. 항공기 이·착륙 연장, 공무원 출근시간 조정, 각종 이동수단의 비상 동원 등 수능에 대한 긴장감은 12년 동안 쌓은 공을 신중히 풀어내는 중요한 시간이다.

이미 절에 가서 100일 기도도 하고 교회에서도, 내 자식만큼은 시험 잘 보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시험문제에 대한 유출이나 출제 범위, 출제자들의 오류와 오답 발생, 수험생들의 정서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문제 출제 등 다양한 단점이 있지만 그나마 이렇게라도 학생들의 수준을 확인할 방법이 있다는 점에서 신뢰할 수 있는 공정한 평가라는 의견도 지배적이다.

전국에서 동시에 같은 내용으로 시험을 보기 때문인지 시험지 관리에 대한 경비도 삼엄했다. 시험 외에 논술, 면접 등 채점자 기준에서 볼 때 전문성을 갖춘 사교육을 가이드 하지 않는 한 좋은 대학은 문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심지어 봉사활동이나 기타 실적, 스펙쌓기에 학부모들이 다리품을 팔아가며 지인들을 상대로 봉사 시간을 구걸하는 모습은 안타까운 풍경이다.

입시제도가 가진 특별한 환경을 맞추기 위해 돈 주고 사교육을 받아야 하는 시대적 분위기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설령 어렵사리 공부한다고해도 객관적인 평가 중심의 시험제도에서 다면적인 인재 발굴의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수능은 여전히 찍기다. 오지 선다의 객관식 문제에서 수학만 주관식이지 나머지는 잘 고르는 게 중요하다. 유사한 답 속에서 정답을 골라내는 것, 어쩌면 인생 자체가 선택의 연속이며 고르는 일에 능숙한 사람이 출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험문제의 질문 형태가 이미 고르라는 것부터 시작 된다.

다음 중 옳은 것은? 또는 다음 중 옳은 것을 고른 것은? 이라며 시장판에서 좋고 싼 물건을 “골라 골라”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명색이 수능인데 보다 획기적이고 탁월한 질문 방법은 없을까. 이 같은 시험제도는 비단 우리나라 뿐만아니라 지구상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도 같은 형태를 갖추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모두 객관식에 의존하지 말고 학생의 자질과 인성, 그리고 성향까지 들여다 볼 수 있는 논술이나 서술형태의 시험 비중을 높이는 것도 간과하지 말아야 할 현실적 숙제다.

수험생들의 사고나 창의력을 들여다 볼 방법, 점차 변해 가야 할 대한민국 교육 분야의 숙제이자 미래지향적 목표를 설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해마다 수능시험 당일 매서운 한파가 심술을 부렸다. 다행히도 올해는 기온도 적당하고 비 소식도 없어 차분한 마음으로 시험에 임할 수 있었다.

화투판에서 모두 따라는 것과 시험에서 모두 잘 치라는 것, 같은 맥락이다. 모두가 시험을 잘 치면 누가 못 치고 유명 대학의 진학을 양보할 것인가. 해마다 수능때면 시험장 정문에 엿을 붙여놓고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내 자식만큼은 시험 잘 봐서 좋은 대학가고 대기업 취직해서 편안하고 행복하게 잘살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다.

다 손에 흙 안 묻히고 물 튕겨가며 산다면 누가 험한 일을 맡을 것이며 지방대학은 모두 문을 닫아야하는 것인가. 아직도 늦지 않았다. 좋은 대학, 명문 대학도 중요하지만 수능제도에서 개개인의 자질을 발굴하여 대학별 전문성을 학생과 맞춤형으로 이어간다면 문 닫을 대학도 없고 내 자식만 잘 살길 바라는 학부모도 없어질 것이며 같은 급우야 시험 잘 치든 말든 나만 잘 치면 된다는 이기적인 사회풍토도 줄어들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까지 30년이 이랬다면 앞으로 30년은 이러지 말아야 한다. 언제까지 똑같은 틀 속에서 연탄공장에서 연탄 찍어내듯 같은 수험생을 찍어내 같은 대학을 목표로 변함없는 교육정책을 유지해갈 것인가.

‘교육은 백년지대계’라 했다. 이제라도 바늘구멍 같은 출세의 문에 낙타 같은 몸집의 학생들을 줄 세우지 말고 각기 다른 DNA를 계발하는 새롭고 혁신적인 교육정책을 만들어 대한민국만의 인재양성에 틀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오랜기간 구태에 젖어 안전한 철밥통을 만들어온 교육계가 과연 이러한 개혁의 시도를 할지는 의문이고 누가 앞장설 것이며 누가 대안을 제대로 제시할 것인가. 그러므로 이러한 수능, 대학, 출세의 순서는 변하지 않을 것이며 그 대열에 끼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의 절대적인 노동과 희생을 기반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안락은 대대손손 유지되는 것이다.

이미 지방에서 출발한 폐교 행진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고 좋은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률은 점차 줄어들고 있으며 취업한다해도 이직률 또한 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수능이 인생의 행복을 보증하는 수표가 아닐 뿐만아니라 한 인간의 인성까지 평가할 수 있는 잣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람은 모두 귀하고 소중하다.

물고기는 물로 보내고, 새는 창공으로, 들짐승은 들판으로 보내야지 모두 몰아서 닭장에 집어 넣고 사료로 키우려는 정책이 문제다. 수능을 망쳤다고 인생이 망가지는 것도 아니며 위인들의 평균 학력은 중졸을 넘지 못했다. 이제 수능개혁의 한계점이 국민적 공감대에 접어들 시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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