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김치 예찬론
[덕암칼럼] 김치 예찬론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2.11.22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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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도자기는 날 때부터 도자기가 아니었고 점토에 불과했으며 매미도 땅속에서 길게는 10년을 버텨야 겨우 한 달 남짓 울부짖다 그 명을 다 한다. 그런데 비하면 나는 참으로 운이 좋아 불과 0.1cm도 안되던 것이 모종을 거쳐 땅속에 묻히면 하늘의 기운과 아침이슬을 머금은 채 한잎 두잎 몸집을 불려 나간다.

그러길 65일쯤 지나면 제법 통통해져서 어디든 몸값을 할 수 있는 대우를 받는다. 그 자리가 밥상이든 편의점 간이 탁자든 상관없고 외국 국빈들 식탁에 올라 대한민국의 특산물이라며 우쭐댈 수도 있었다. 어디 그 뿐인가. 9월에 심어 이듬해 2월에 뽑는 봄동은 바삭하고 고소한 맛에 남부지방 사람들이 즐겨 먹는 김치재료로 손꼽힌다.

체질상 겨울 작물이라 농약은 없어도 되지만 석회라도 뿌려줘야 자라주지 맨입에는 안 클 생각이다. 어찌하든 잘만 키워주면 밀가루 범벅에 부침 재료로도 으뜸이며 대충 무쳐서 겉절이를 해도 나를 따라올 반찬이 없다. 여름배추는 일명 ‘얼갈이’라고도 하는데 강원도 매봉산이나 기타 고랭지에서만 살 수 있다.

높은 산 깊은 골 신선한 공기와 맑은 물이 흐르는 최고 대우가 아니면 이 또한 잘 자라지 않으니 얼마나 까칠한 성품을 지녔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뿐인가. 높은 지대에서 세상구경 다하고 한 여름 태풍이나 홍수까지 이겨냈으니 이야말로 산전수전 다 겪고 공중전까지 겪은 배추라 할 수 있다.

이에 질세라 전라도 해남지방에서 가을 배추가 이 뭔 소리냐며 모가지를 쭈욱 내뺀다. 준 고랭지 지역에서 생산되는 가을 배추는 일명 금배추로 몸값을 올리며 가을 무와 함께 연합작전을 개시한다. 무가 잘 자라서 지원사격을 할 수 있는 덕분인지 가을배추는 우리네 밥상에서 최고 대우를 받는다.

이 시기에는 함께 버무릴 야채나 기타 양념들이 추수시기를 맞이하여 비교적 가격도 저렴하고 김장 담글 날씨도 잘 받쳐주기 때문인지 가장 대중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김장 하면 역시 당대 최고의 명성과 역사를 자랑하는 겨울 배추가 제격이다. 오죽하면 연말연시 사랑의 김장 담그기가 전국적으로 붐을 이루고 인간들은 현대과학을 통해 김치 냉장고를 개발하여 충성을 맹세하는 등 겨울 김치의 식품공학적 가치는 전 세계가 공감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얼마나 그 상품가치가 우월하면 일본에서는 기무치라 흉내 내고 중국에서도 자신들이 만든 파오차이를 갖고 김치의 종주국이라며 빡빡 우겨대는 촌스러움을 보이고 있다. 뿐인가 미국에서는 유명체인점에서 백김치가 인기 절정을 달리고 있고 발효 식품의 가치를 뒤늦게 알게 된 선진국들이 앞 다퉈 김치를 진귀한 음식이자 한국인의 상징적 먹거리로 칭송하는 것이다.

김치는 주재료가 배추지만 절대 혼자 가지 않는다. 옆에는 무 영의정과 파 우의정을 세우고 그 아래로 고춧가루, 생강, 마늘을 비롯한 찹쌀 죽은 물론 더 아래로 내려가면 겨울철 별미인 굴과 심지어 육회까지 줄을 세운다. 물론 빠질세라 각종 젓갈과 사과, 배즙까지 동원되니 이만한 잔치가 어디 있을까.

한국인 밥상의 최고 위치를 고수하는 김치는 당초 밭에서 뽑힐 때부터 소금물에 절여질 때 까지 썩어도 준치라는 자부심으로 배추의 품위를 잃지 않으려 갖은 애를 다 쓴다. 혼자 숨죽이려니 안 되겠는지 물귀신처럼 총각들을 불러내어 총각김치, 조폭들로 편성되어 많은 이들에게 명성을 남긴 일명 깍두기까지.

뿐인가. 멀리 전남 여수 돌섬에서 불러 올린 갓김치, 충청도에서 스카웃한 섞박지는 호박섞박지, 사과섞박지도 있지만 궁중섞박지는 임금님이 드시던 음식이라 해서 사과, 미나리, 전복까지 들어간다. 이렇게 출발한 김치가 시중에 나가서도 꿇릴 일이 없다. 김치찌개는 기본이고 김치 볶음밥, 김치를 주재료로 한 돼지고기 전골, 김치전, 김치 떡갈비 등 온갖 기묘한 조리법과 명칭으로 대를 이어간다.

결국에는 누가 누구 자식인지 구분도 못할 만큼 방대한 명칭과 모양으로 전국을 누비니 제 아무리 외국의 먹거리가 유명해도 김치를 따라올 존재가 어디 있을까. 전국 통일을 이룬 먹거리의 대명사 김치가 지구촌 밥상을 평정하고 나이가 들어 제법 시큼해지자 평소 존재감과 친분을 과시하던 홍어가 친구인 두부를 불러내서 같이 도원결의를 제안한다.

그래서 탄생한 목포삼합은 지금도 모든 잔치집은 물론 전국 식당가와 유흥가에서도 한 치의 수그림 없이 머리를 빳빳하게 쳐들고 다니는 자존심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그 명성은 물 건너 해외까지 알려지니 맥도널드 햄버거와 이탈리아 피자를 비롯한 인도의 카레가 곰 발바닥과 상어지느러미까지 동원한 연합식이 한꺼번에 다 덤벼도 이길 음식이 없었다.

그 이유는 맛을 본 심사위원들이 당장에는 몰랐으나 두고두고 먹어본 맛에 감동을 금치 못하고 이런 발효 음식은 음식이 아니라 보약이라 평가 하였으니 훗날 청국장과 홍어도 동반상승의 대열에 올랐음이라. 세월이 제 아무리 지나도 묵은지로 만든 음식들이 발 냄새 지독한 청국장과 함께 한국인의 밥상을 지키는 바 마늘까지 합세하니 한국인을 제외한 그 누구도 감히 수저를 들지 못함이라.

훗날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 없으나 우리 한민족의 슬기와 지혜가 듬뿍 담긴 식이요법이 코로나19도 이겨내고 어지간한 질병은 병도 아닌 생로병사의 실크로드가 됐다. 작금에 이르러 듣도 보도 못한 음식들이 배달 라이더의 손을 거쳐 손도 까딱 아니하고 안방에 앉아 받아먹으니 운동부족에 기름진 음식들이 온갖 현대병을 다 유발하고 있다.

50이 넘은 독자라면 문득 한겨울 눈이 소복이 쌓인 마당에 장독 뚜껑을 들고 한포기 바가지에 담아오던 추억이 생각날 것이다. 부뚜막의 도마 위에 얹어 놓고 부엌칼로 썰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 위에 쭉쭉 찢어 먹어도 건강하기만 하던 날들이 있었을 것이다. 오늘의 주인공 배추인 내가 대한민국 국위선양에 얼마나 지대한 공을 세웠는지 안다면 11월 22일 ‘김치의 날’을 맞이하여 나의 존재도 잊지 않길 바란다. 배추의 사주를 받은 덕암 대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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