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침묵하는 절대 다수의 가치
[덕암칼럼] 침묵하는 절대 다수의 가치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2.11.24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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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요즘처럼 달 밝은 가을밤에 동네 개 한 마리가 짖으면 옆집도 뒷집도 따라 짖는다. 결국에는 온 동네가 시끄럽고 난리가 나지만 이내 조용해진다. 이는 그 실체가 일순간의 달빛이며 달이 뜨기 전에도 나름 조용했던 마을의 분위기가 한 마리의 요란으로 도미노처럼 이어지는 것이다.

이른바 ‘군중심리’란 어떤 선택을 할 때 다른 사람들이 많이 선택하는 것을 따라 하는 현상을 말한다. 군중은 익명성을 기반으로 하며 어떠한 계기가 마련되면 집단행동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가령 폭동이나 시위, 스포츠 경기나 우발적인 자축 행사에서 예측불허의 행동이 그러하다.

평소에는 이성적으로 행동하던 사람들도 감정이 앞서 비이성적 행동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현상이 최근 대한민국 사회에서 만연하고 있다. 언론의 여론조성이 그러하고 일부를 전부로 착각하게 만드는 통계조사가 그러하다. 물론 아닐 수도 있겠지만 적잖은 불완전 요소들이 전체의 이미지와 판단 착오를 일으키는 계기가 된다는 뜻이다.

이태원참사를 정치적으로 악용한다는 언론보도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유족들의 오열이 처음 공중파를 탔다. 총 158명의 사망자를 낸 이 사건의 유족들 가운데 20명이 참석, 이들은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며 형식적 애도가 아닌 사회적 추모시설 마련을 요청했다. 추모시설, 현재 경기도 안산시에 추진 중인 세월호 희생자들의 합동 추모 공간 마련에 막대한 혈세를 들인 것처럼 이태원참사 또한 같은 국민인만큼 똑같은 보상과 특별법이라도 정해야 하는 것일까.

혼란의 가마솥이 끓기 시작하는 분위기다. 세월호참사 이후 촛불시위는 박근혜 前 대통령의 탄핵으로 이어졌고 헌법재판소는 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을 선고했다. 이후 정권은 바뀌었지만 국민들의 삶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때마침 코로나19가 모든 흉을 덮어 주는듯 했지만, 지방선거에서 수준 높은 국민들의 선택은 야당을 여당으로 만드는 본때를 보여주었다.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서 대선과 지선 패배는 참혹한 현실이 되었고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후폭풍은 여전히 서울 광화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지난 주말 대규모 집회시위가 양 진영에서 동시에 벌어졌고 언제 또다시 이태원참사와 유사한 사태가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누구 하나 잘못되면 휘발유에 불붙듯 화르르 탈 것 같은 분위기다.

이제 혼란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어제는 국회 취재 업무차 서울 여의도에 상주하며 하루를 보냈다. 정문은 물론 국회의사당 전체에 경찰 버스로 차 벽을 치는가 하면 삼엄한 순찰, 건물마다 일반 시민보다 경찰이 더 많이 눈에 띄는 장면에 절기상 소설에 눈만 오지 않았지 을씨년스런 늦가을 날씨가 더욱 체감온도를 낮췄다.

향후 예고된 모든 분야의 동시다발 총파업은 누가 주동했으며 기다렸다는 듯 한꺼번에 단체 행동으로 확산하는 것이며 무엇을 향하는 것인지 감히 그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분명 리더층은 있을 것이고 연대 파업이 가져오는 혼란의 대가는 고스란히 국민들 몫이며 힘든 국민들은 정권을 원망할 것이고 해달란 대로 다 해준다면 누가 힘들게 일하며 살 것인가.

필자는 여당도 아니지만 야당도 아니다. 언론인으로서 중립적 위치에서 오로지 국익에 도움 되길 바라는 측면에서 볼 때 지금의 모든 상황은 북한의 침략이나 외세의 경제적 공격보다 내부적인 갈등이 더 위험한 시기다.

화물연대, 지하철, 철도가 파업하면 모든 물류는 중단될 것이고 단순히 물류비용 상승을 떠나 원자재의 공급부족으로 인한 생산 차질, 유통기한 초과, 특히 철강이나 건축자재의 경우 공사 중단에 이어 공기 지연에 따른 2차·3차 대란은 보나 마나인 셈이다.

식당에서도 식자재 인상의 출발점이 될 것이고 겨우 코로나19를 통과한 자영업자들 입장에서는 멍하니 앉아서 당해도 누구한테 하소연할 길 없게 된다. 일반 국민들은 어디까지 짐작하는지 알 수 없으니 수십 가지 업종을 두루 거쳐본 필자의 견해에서 볼 때 지금 대한민국은 이럴 때가 아니다.

누구 편을 들자는 게 아니라 원숭이를 나무에 올려놓고 흔들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 다음 또 뽑을 것인가. 그리고 반대파가 흔들어 떨어뜨리면 또 뽑을 것인가. 양분된 국론을 봉합해도 시원찮을 판에 물가·금리는 오르니 그 뒷감당은 누가 할 것이며 시중에 대출 금지로 인한 연쇄부도는 쓰나미처럼 거대하게 밀려오고 있다.

이미 건설업계에서는 그 한파에 줄도산이 이어지고 있으며 여느 해 보다 추운 2022년 겨울이 예상된다. 정부는 강경 대응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으르렁 거리다 말면 다행이지만 만약 누구 하나 다치거나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그것이 빌미가 되어 거대한 불길의 불씨가 된다면 이는 혼란을 가중하는 동기가 될 것이다.

바라건대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 지금까지 전례를 본다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만 사람이 살자고 하는 일에 사람이 희생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알고 가야 할 대목이 있다. 지난 주말 진보와 보수가 각 20만 명씩 참석한 집회를 벌였다고 한다. 경찰 추산 10배나 차이가 있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40만 명이다.

국민 인구는 5,400만 명이고 전 국민의 100명 중 1명도 안 되는 군중들이 마치 국가의 전체인 것처럼 자기주장을 피력하려 거리로 나섰다. 침묵한 나머지 국민들은 바보일까. 묵묵히 일하며 각자의 위치에서 생업에 종사하는 절대 다수의 국민들도 나름 생각이 있고 보고 듣고 판단할 줄 아는 높은 수준의 국민들이다.

정치적 수사든 보복이든 별 관심 없다. 그저 열심히 일해서 밥은 먹고 더 열심히 하면 잠잘 집 정도는 마련되는 세상을 바랄 뿐인데, 광복이후 겨우 차려진 밥상을 짜네 쓰네 하며 걷어차는 형국이다. 보릿고개가 다시 안 온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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