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11월의 마지막 날
[덕암칼럼] 11월의 마지막 날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2.11.30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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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올해는 임인년 검은 호랑이의 해였는데 한 달 남은 2023년은 계묘년이다. 풀이하자면 검은 토끼란 뜻인데 음력을 양력으로 치면 1월 22일 출생 이후부터가 토끼띠가 되는 것이다. 토끼는 꾀가 많아 용왕님께도 간을 두고 왔다고 사기를 친 별주부전의 범죄 경력도 있었고 직접 사육해 보면 땅을 파는 습관과 왕성한 번식률로 인해 수습이 불가(?)한 정도다.

우리네 인간들의 저출산이 무색한 지경이니 임신 과정을 본 적은 없으나 시도때도 없이 개체수가 늘어간다. 약 3년 전 6마리로 시작한 토끼는 불과 1년 만에 20마리가 넘게 늘어나 주특기인 땅파기로 탈출을 시도, 온 동네 채소를 다 먹어 치우는 통에 곤란을 겪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갓 태어난 토끼의 눈망울을 보면 귀여운 정도가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예쁘다.

내년 봄에는 토끼 사육을 다시 시작할 계획이다. 독자들은 무슨 띠며 몇 년생인지 알 수 없으나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계산법이 십간 즉,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이며 십이지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다. 십간과 십이지는 구성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해가 오려면 60년이 걸린다. 내년 계묘년이 다시 오려면 60년이 지난 2083년이 되어야 한다는 산술적 답이다.

필자는 을사생으로 음력 7월에 태어난 시까지 설칠 시간이니 한여름 뱀이 독이 잔뜩 올라 사는 게 곤하고 그리 쉽지 않은 듯 싶다. 첨단과학이 미신을 터부시 하고 운세를 무시하지만 어쩌겠는가. 연말이면 인터넷에 운세나 사주풀이는 여전히 매출이 상승 그래프를 그리고 철학관에는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부적을 구하느라 문전성시를 이룬다.

뿐인가 선거철이면 당선될지 말지를 용한 무당이나 점쟁이를 찾아가 애걸복걸하기도 하고 멀쩡한 이름을 개명한답시고 평생 불러오던 자신의 호적을 뒤집기도 한다. 사람의 심리는 이렇듯 혹여 삼재라도 들라치면 액땜 한다고 안 하던 짓도 하고 절이나 교회에 가서 자식들 시험 잘 보게 해 주고 좋은 직장 취업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부처님께 빌고 또 빈다.

이래도 나는 아니라 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각설하고, 오늘은 11월의 마지막 날이다. 통상 사람들은 12월 말일쯤 돼서야 연말이 어쩌고 송구영신 해가며 다음해의 희망을 기대한다. 그럴까, 1년 내내 세월 보내다 12월 31일 되어야 느닷없이 한해 마무리 어쩌고 이듬해 새해 계획이 저쩌고 한다면 그게 하루아침에 이루어질까.

막상 닥쳐보면 아 그렇구나, 맞다할 것일진대 사람의 마음이란 다 비슷해서 같은 오류를 되풀이 하는 것이다. 혹여 공감한다면 올해 11월의 마지막 날, 이날을 올해를 정리·정돈해가며 차분히 내년을 대비하는 날로 짚어보면 어떨까.

이쯤에서 12월 31일 해돋이를 보러 영동고속도로가 정체를 빚거나 서울 보신각에서 낯짝에 생색을 내려는 정치인들 들러리 서려는 속빈강정들의 도열을 보면서 오늘은 각자의 삶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왜 살고 있는지 한번쯤 진지하게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했으면 한다. 혹여 학창 시절 방학이 시작되면 살 것 같은 해방감에 환호성을 지르지만, 개학날은 생각보다 빨리 다가오는 것을 체감했을 것이다.

막상 졸업하면 세상이 다 내 것 같지만 어디 사는 게 그리 녹록하던가. 생존경쟁이 치열한 사회에 나와서야 학생 신분이 얼마나 편하고 좁은 식견의 공간이었는지 알게 된다. 오래전 1970년도에는 여름방학 숙제에 곤충채집이나 일기쓰기가 숙제로 정해져 누구나 다 해야 하는 시절이 있었다.

요즘같은 시대에는 말도 안 되는 숙제지만 그때는 당연했고 못 하면 빌리거나 무단복제가 필요했던 시대였다. 곤충채집은 매미, 여치, 메뚜기, 잠자리를 잡아 스티로폼 박스에 바늘로 꽂아 시체 보관하듯 진열해야 하는 과정이었고 일기는 당일 날씨와 일정을 적어야 하는 과제였다.

그렇게 시작된 곤충채집은 환경보호에 밀려 사라졌지만 일기를 쓰던 버릇이 환갑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이어져 눈떠서 감을때까지 하루 일과의 시간과 사용한 돈의 사용처를 기록한 지 대략 40년, 도중에 분실하고 불타서 사라진 기간들을 삭제해도 보관 중인 기록만 20년이 넘었다.

오늘날 필자가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말은 시간의 흐름이 멀리 보면 도도히 흐르는 강물과 같이 천년만년 남을 것 같아도 강물의 중간쯤 정박해 손가락으로 짚어보면 하루라는 시간은 참으로 빠른 유속임을 알 수 있다. 언제든 오프라인 일기장의 손글씨를 뒤적여 보며 10년 전의 일들이 엊그제 일처럼 상기 되는 타임캡슐을 열어보는 듯하다.

특히 정치인들의 흔적과 지나간 사건들을 회상하노라면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의 말이 나름 그럴만한 이유가 있음을 체감하게 된다. 오늘은 11월 30일, 12월 31일에 쫓기듯 방학숙제 하지 말고 11월 30일 오늘 서서히 차분히 올해를 마무리하는 독자들이 되길 바란다. 시간, 날짜, 월, 년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정한 일정의 기준에 불과하다.

권력이 자기자본 축적의 수단이거나 자아실현의 도구가 아니라면 명분만 내세우며 허울 좋은 구호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의 정치인들 구조가 그러하고 오죽 못났으면 한쪽에서 손봐주겠다거나 한쪽에서는 누가 죽나 들이미는 형국일까. 적어도 이래서는 안 되며 이런 행동들이 얼마나 선친들에게 미안한 일인지 알아야 할 것이다.

오늘 아침 날씨가 영하권에 들어섰다. 전기장판도 틀지 못하는 28만 가구의 국민들과 파업으로 인해 생존권이 통째로 흔들려도 짹소리 못하고 동참해야 하는 힘없는 하청업체의 아픔이 더 혹독한 추위로 느껴질텐데 참으로 염려스럽다.

급격히 늘어나는 이혼율과 줄어드는 결혼률, 노인은 의료발달로 버티고 출산은 점차 줄어드니 얼마 못가 이 나라는 길거리에 노인천지가 될 것이다. 이러라고 117년 전 오늘 을사조약에 반대한 대한제국의 대신 민영환이 스스로 목숨을 던져가며 이천만 동포에게 유서를 남긴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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