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페루 대통령과 대한민국 대통령
[덕암칼럼] 페루 대통령과 대한민국 대통령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2.12.14 08:5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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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시골 교사 출신 좌파 페루 대통령이 당선 16개월 만에 탄핵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이제 53세의 젊은 대통령 카스티요는 시골 초등학교 교사 출신으로 서민형 이미지를 내세웠다. 급진좌파 성향인 그는 대선 유세 당시 개헌, 에너지 분야 국가 통제 강화, 1년에 100만 개 일자리 창출 등의 공약을 전면에 내세우며 일약 스타가 됐다.

공약이란 게 이렇듯 안 지키면 안 하느니만 못한 것이다. 약속에 대한 기대감, 그에 대한 실망감은 페루나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그는 잘나서 된 게 아니라 부패정권에 대한 국민적 반감으로 얻어진 덤(물건을 사고 팔 때 공짜로 더 주는 것) 권력이었다.

이런 덤 권력은 비단 페루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든 이제는 바꿔보자는 정권교체 시기에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이번에도 前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크다 보니 날로 먹은 것인데 이게 오래갈 수 없는 게 받쳐주는 세력이 부실했던 탓도 있다.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이야 곳곳에 심은 검사 출신의 수하들과 적어도 유권자의 절반 이상 표를 얻은 것이니 촛불 켜고 탄핵 운운 한다고 하루아침에 거덜 날 정권은 아니다. 페루 대통령도 26만표 차이로 이긴 윤석열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0.25%포인트 차로 선거에 당선됐다.

빈농의 아들이었던 카스티요 前 대통령은 정계·재계 등 엘리트 출신이 아닌 페루 첫 대통령으로, 취임사에서 처음으로 농부가 우리나라를 통치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부패 없는 나라와 새 헌법을 페루 국민에 맹세한다고 약속했다.

그는 극단적으로 양분된 민심을 수습해 통합을 이뤄내는 것과 더불어 정치·사회·경제 혼란을 가라앉혀야 하는 과제를 떠안았으나 정부 출범 3주도 안 돼 정부 각료 낙마 사태를 마주하는 등 불안하게 출발했다. 이후 6개월 사이 3명의 총리가 낙마하고 장관들이 줄줄이 교체되는 인사 참사가 반복되며 정국 불안은 커졌고 취임 8개월도 안 된 상황에서 대통령 스스로 2차례 탄핵 위기를 맞은 것이다.

한국으로 비교하자면 이태원 참사로 행안부 장관 해임 안에 대한 야당의 건의가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로 이어지는 수순을 밟는 것과 유사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운송노조에 대한 강경입장으로 잠시 지지율이 올라가는 듯 하나 이 또한 임시방편이라 제대로 불을 끈 건 아니기 때문에 장기적인 측면에서 일단 덮어놓은 것에 불과하다.

야당도 그렇다. 서울 청담동 술자리 사건이 불발되자 이태원 참사의 촛불집회에 일부 의원들이 참석하여 대통령 탄핵을 주장했다. 국민이 선출한 입법기관의 구성원이 정당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구분하지 못한 것이다. 문제가 있으면 법안 개정이나 국회청문회에서 따질 일이지 장외로 뛰어나가 같이 탄핵을 외치는 것은 공인으로서 삼가야할 일이다.

이 말은 언론인을 떠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다. 이러한 탄핵 성공의 이면에는 입법기관의 야합이 한몫 했다. 페루 야당은 의원 28명의 서명을 받아 탄핵소추안을 제출한 데 이어 두 달뒤 탄핵안 통과를 시도했으나 한번 불붙은 탄핵 바람은 카스티요 대통령이 국정 운영에 탄력도 붙기 전에 각종 부정부패 의혹에 시달렸고 검찰 수사 대상에까지 올랐다.

온갖 의혹과 루머는 눈덩이처럼 불어났으며 검찰은 대통령궁과 사저에 대한 압수수색에 대통령 처제와 영부인에게까지 수사망을 좁혀갔다. 뒤늦게 성명을 통해 관련 의혹과 주장은 모두 조작된 이야기라고 부인했지만 이미 여론은 등을 돌린 상태였다. 깨끗한 좌파에서 부패 혐의자로 인식된 카스티요 대통령은 지지율이 10%밑으로 떨어진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가도 너무 간 것이다. 막판 뒤집기로 대통령이 의회 해산을 요구하자 기름에 불붙인 격이 됐다. 졸지에 탄핵으로 대통령 직을 잃게 되면서 정권은 차기 주자를 찾게 됐다. 다수 야당의 탄핵, 양분된 민심 수습, 일자리 창출, 내용상 어디서 많이 들어본 시나리오다. 박근혜 前 대통령이 그러했고 지금의 윤석열 대통령 또한 수순을 밟고 있는 분위기다.

어떤 지도자들 올려놓고 흔들면 안 흔들릴 자가 누가 있을까. 필자가 오래 전 이런 말을 했다. 호랑이가 두려워 늑대를 뽑았더니 노루나 멧돼지만 먹히는 게 아니라 토끼와 다람쥐까지 모두 먹히더라. 차라리 배부른 호랑이가 낫지 배고픈 늑대는 아니더라는 뜻이었다. 큰 도둑은 보석만 챙기지만 작은 도둑은 쌀독의 낱알까지 다 챙겨간다. 돌이켜 보면 어느 해는 살만했던가.

누가 되든 지도자는 자질을 갖춰야 하며 태평성대는 임금과 신하의 공동된 노력이 백성의 안위를 돌볼 수 있는 것이지 지금처럼 당파싸움으로 나날을 보내는 조정이라면 대궐 안은 하루도 편한 날이 없을 것이다. 나이, 성별, 지역, 정당 등으로 온갖 분열을 조장하고 그 틈바구니 속에 한 표라도 챙기려는 정치인들이 설치는 한 이 나라는 피곤할 수 밖에 없다.

흐름에 부화뇌동하는 무소신의 시대, 온 몸을 던져 암흑 같은 이 시대의 아픔을 해결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한 시기다. 현재의 정치는 국민에게 신뢰를 잃었다. 오로지 자신의 출세만 염두에 두고 상대방을 폄하하여 내려앉히는 것이 승리자가 되는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비근한 예로 조선시대 선조를 보자.

저 하나 살겠다고 명장 이순신을 옥에 가두고 고문을 하는가하면 자신의 아들조차 못 믿어 전쟁 후에도 내분을 조장하다 운명을 다했다. 비겁한 왕 하나로 인해 조선의 수 십 만명의 여자들이 공녀로 낯선 땅에서 능욕을 당했다. 지금도 남의 일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16개월짜리 페루 대통령이나 44일짜리 영국의 트러스 前 총리를 타산지석 삼아 잘해야 한다. 그래도 본전이 될까 말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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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문권 2022-12-14 17:36:12
감사합니다
혼돈의 난세에 끝을 기다립니다
온누리에 평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