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포세이돈의 분노
[덕암칼럼] 포세이돈의 분노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2.12.15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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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그리스의 가장 오래된 물의 신으로 바다를 의인화시켰고 현재까지 ‘포세이돈’이라 부르는 신이 있다. 신화에 의하면 삼형제가 아버지를 폐위시켰을 때 바다의 왕국이 포세이돈의 몫이 되었고 형상에는 무기가 삼지창이지만 원래는 긴 손잡이가 달린 작살이었을 것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우리나라 전설에도 효녀 심청이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 인당수에 몸을 던졌다는 내용이 있다.

포세이돈의 분노를 잠재우려던 상인들의 허무맹랑한 신앙이었을까. 바다의 신 포세이돈, 5대양과 6대주로 형성된 지구의 절반 이상이 바다지만 인간의 욕심은 바다, 그 이상이다. 단순히 배를 만들어 지나가는 것도 모자라 군사용 잠수함을 건조하여 바닷속을 헤집고 다니기도 하고 핵무기 실험이나 기타 해양오염을 무시한 채 폐기물을 투기하기도 한다.

지구온난화를 촉진하여 남극·북극의 얼음도 녹여 해수면을 상승시키는가 하면 아름다운 산호 군락도 석회화 되어 삭막해지고 있다. 플라스틱을 남발하여 생태계를 위협하고 한번씩 전쟁이 날때마다 엄청난 군사물자들과 군함들이 속절없이 해저 유물로 남게 됐다. 이 정도라면 포세이돈이 열 받을 만도 하다. 억지로 꿰어 맞추니 그런 것이지 사실 해양사고는 포세이돈의 분노와 무관할 것이다.

인간이 조금만 주의하고 미리 예방했다면 대부분 방지할 수 있는 사고들이 끊임없이 발생했다. 한번 문제가 생기면 망망대해에서 속수무책 물귀신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해상사고다. 비단 외국에서 발생한 사고 뿐 아니라 국내 사고기록만 간추려 봐도 상당하다. 오늘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해상사고에 대해 알아본다.

52년 전 오늘 1970년 12월 15일 제주에서 부산으로 항해하던 남양상선 소속의 남영호가 거문도 동쪽 해상에서 침몰했다. 탑승했던 338명 중 326명이 사망했고 재산피해는 선체와 화물가격을 포함해 1억 700만원이었다. 물가를 반영하자면 당시 자장면 1그릇 100원, 소주 한 병 65원, 신탄진 담배 한 갑이 60원, 시내버스 10원, 돼지고기 한 근이 200원 할 때였다.

이때 정부가 지급한 보상금은 1인당 69만원, 대략 계산해도 약 60배나 올랐으니 요즘 금액으로 약 4천 만원 정도였다. 그 어둡던 시절에도 유가족들은 수령을 거부하며 분노를 표했고 제주도 출신 서울대 학생들이 법대 교정에 모여 관계당국의 철저한 책임 규명과 유족 보상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목소리를 높였지만 세월 속에 묻혔다.

바다, 건너야 할 물이지만 배가 있어야 하고 100% 안전은 그 어디에서도 보장 받지 못한다. 사람 사는 세상의 이치도 바다와 같다. 언제든 예상치 못했던 풍랑을 만나 어렵게 쌓은 재물과 명예를 한 번에 잃어버리는 일을 당할 수 있다. 오래전 일도 아닌 불과 얼마 전 해상사고를 역순으로 거슬러 보면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고가 발생하고 나서도 같은 해 12월 1일 참치잡이 선박 오룡호가 침몰하면서 총 60명 중 사망 27명, 실종 25명의 인명피해가 났다.

이듬해 2015년 9월 5일 추자도 부근에서 발생한 낚시어선 돌고래호 전복 사고로 15명이 사망, 3명이 실종되었고 2017년 3월에도 철광석을 싣고 중국으로 가던 스텔라 데이지호가 침몰해 24명이 실종됐다. 같은 해 12월에도 영흥도 진두항을 출발한 낚시배가 급유선과 충돌, 15명이 사망했다. 화물선은 운반 중 발생한 사고지만 해외여행을 갔다가 졸지에 운명을 다한 사례도 있다.

2019년 5월 29일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 강을 유람하던 선박이 다른 유람선과 충돌하면서 27명이 사망하고 1명이 실종됐다. 같은 해 11월 19일에도 제주 앞바다에서 조업을 하던 선박에 화재가 발생해 12명이 숨지거나 실종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세월호 사고 이전에는 고등학생들이 해병대 캠프에 참가했다가 5명이 사망했고 2010년 3월 26일 옹진군 백령도 해상에서 천안함에 승선했던 장병들이 폭발로 40명이 사망하고 6명이 실종됐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1993년 10월 10일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에서 여객선 서해 훼리호가 침몰한 사고로 292명이 사망했다. 유가족들에게는 1인당 9,910만원이 지급되었다고 보도된 바 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집권 초기였는데 이후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등 대형사고들이 잇따랐고 IMF까지 겹쳤지만 대통령 탄핵한다고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지는 않았다.

요즘 같았으면 탄핵이 아니라 구속되고도 남을 참사들이었다. 더 오래전 1953년 1월 9일에는 부산 앞바다에서 강풍으로 인한 여객선이 침몰해 300명이 익사하는 사고도 있었다. 환경이 바다인 해상사고는 일단 유사시 다른 선박이나 항공편이 아니면 달리 방법이 없다.

110년 전 1912년 4월 14일 그날 1,200명 정원에 사망자만 1,515명이나 된 해양참사의 대명사 타이타닉 또한 포세이돈의 분노였을까. 해상이든 육지든 사고가 발생하면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새로운 대책을 세워야 맞는 것이다.

억울한 희생자가 있다면 마땅히 보상해야 하고 책임질 위치에 있거나 책임소재가 있다면 응분의 대가도 치러야 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유가족이 대신해야 하고 그 과정이 어렵다면 유가족 입장에서는 더더욱 고통이 가중되며 희생자는 남은 자들의 판단에 의해 두 번 죽어야 하는 고통을 겪게 된다.

따라서 인명피해에 대한 보상 문제나 책임여부는 정치, 종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공평하게 진행되어야 하며 사고의 핵심에서 벗어나거나 이를 이용, 악용, 남용한다면 본질을 훼손하게 되는 것이다. 사망자를 두고 보상금액을 결정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나 대한민국 국민정서상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인명은 귀하고 소중한 것이기에 이에 대한 보상이 돈으로만 해결될 일은 아니다. 책임을 소홀히 한 사람에 대한 엄벌이 병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를 정쟁의 도구로 삼는다면 가장 악질적인 범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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