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성탄절과 성냥팔이 소녀
[덕암칼럼] 성탄절과 성냥팔이 소녀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2.12.26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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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교회의 전성시대다.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 제삿날은 몰라도 예수님, 부처님 태어난 날과 좋아하는 연예인 생일은 정확히 기억하는 시대가 됐다.

아기 예수가 말구유에서 태어나 십자가에 못 박히기까지 삶의 여정을 기록한 성서의 내용은 예수를 믿는 종교적 차원에서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성탄절 하면 어떤 단어가 연상될까.

먼저 거리마다 들리는 크리스마스 캐럴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성탄절은 미국에서 20세기에 출발한 축제일이다. 선물을 주고 받고 예수의 탄생보다는 이를 소재로 한 상업성 홍보가 더욱 분위기를 들뜨게 했다.

크리스마스 트리 또한 에덴동산의 낙원 나무를 상징하는 연극 소재로 삼았다가 시대적 과도기에 밀려 집집마다 마당이나 안방까지 트리에 장식 하는 풍습(?)이 생겼다.

나무에다 솜이나 사탕, 초콜릿 등으로 장식하며 분위기를 띄우게 된 것이다. 한국에는 1900년대 초부터 선교사들이 트리를 세우면서 당시 조선인들이 흉내 낸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라고 한다. 사실 징글벨, 산타 할아버지, 동방박사 등 성탄절의 의미를 공감하게 하는 단어들의 대부분이 한국 사회에서는 들어서 아는 것이지 체감하거나 그 의미를 제대로 아는 이들은 신앙인들뿐이다.

성탄절을 축복하고 찬양하는 건 이 땅에 예수가 탄생한 날이니 그럴 수 있지만 캐럴이나 모든 장식품들, 분위기나 풍습에 대한 이해도는 구해야 하지 않을까. 내용도 모르고 남이 하니 덩달아 하는 것은 가치를 상실한 이벤트에 불과하다. 적어도 성경에 기록된 경배와 예물의 수령자가 누구인지 아는 날이 되어야 한다.

오늘은 여러 단어 중 유독 성냥팔이 소녀가 2022년 12월 덕암 칼럼의 소재로 상기되는 건 혹독한 추위 속의 성냥불에 비친 환상을 보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동화 속 이야기가 현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남의 나라 소녀 걱정할 때가 아니라 자국의 소녀들이 더 심각한 위험에 빠져 있다.

덴마크의 작가 안데르센이 쓴 동화책 성냥팔이 소녀는 주정뱅이 삼촌에게 폭행을 피하려고 성냥을 팔아 돈을 벌어야 했던 대목부터 시작된다. 최악의 상황에서 하나씩 불을 켠 성냥은 끝내 소녀가 보고 싶은 할머니의 환상을 보면서 싸늘한 주검으로 변하게 된다.

소설 내용의 배경을 보면 부모님이 안 계시고 삼촌 슬하에서 자라는 가정, 먼저 돌아가신 할머니, 팔아봐야 얼마 되지 않을 게 뻔한 성냥, 폭력 삼촌, ‘한나’라는 이름이 성냥팔이 소녀에 국한되는 이야기일지 2022년 한겨울 대한민국 사회의 단면일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소녀가 위기에 처했을 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고 어떤 대안이 있을까.

먼저 위기에 처할 가능성부터 찾아보면 가장 먼저 이혼이나 가장의 실직 등으로 인한 가족의 해체, 가정 폭력, 학원 폭력, 사춘기에 겪어야 할 신체적 변화, 정신적 동반성장, 거기에 검증되지 않고 무분별하게 확산하는 인터넷의 치밀한 유혹, 어떤 이유든 위험에 방치되면 벗어날 수 있는 통로가 좁다.

어쩌다 운이 좋아 청소년 쉼터라도 가보면 서로 책임 소재를 떠맡기 싫은 관리자들이 관련 법규 운운하며 부모에게 연락한다. 가정폭력이 두려워 가출한 청소년들에게는 절망의 끝자락이다. 당장 갖고 있는 돈으로는 편의점 컵라면이나 김밥이라도 먹어야 하고 쪽방이라도 잠을 자야 하는데 PC방에 가서 인터넷에 잘 곳을 구한다고 올리면 침을 질질 흘리는 수십, 아니 수백 마리의 늑대들이 온갖 염려(?)를 다 해주며 보호를 자처한다.

성인 같으면 식당의 허드렛일이나 그 어떤 일도 해보겠지만 미성년자들의 취업은 그리 흔치 않다. 이러고도 출산을 장려하고 엄청난 예산을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퍼붓고 있으니 행정의 모순이 낳은 비극이다. 어떤 일이든 해결책을 찾으려면 당사자와 역지사지가 되어보면 안다.

한국판 성냥팔이 소녀가 거리에 방치되는 일이 없도록 미연에 방지하고 혹여 피하지 못할 이유로 구제의 상황에 직면했다면 확실한 대안이 있어야 한다. 필자가 최근 심층 취재한 분야 중 해바라기 센터가 있었다. 성폭행 피해를 본 여성이 긴급 구조를 요청하거나 경찰조사 과정에 피해자의 증거물 확보 등으로 마련된 정비지원 기관이다.

앞서 거론한 쉼터나 해바라기 센터는 과거보다는 나름 발전된 대안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야간시간대 의료진이 없어서 다음날까지 증거물을 몸 안에 간수(?)한 채 기다려야 하는 후진국형 환경이거나 막상 가해자들이 검거된다고 하더라도 현행법의 관대한 처벌이 더욱 재범을 양산하는 것이 현실이다.

2022년 12월 대한민국의 현실은 소녀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전무하다. 먹고 자고 쉴 수 있는 공간도 턱없이 부족하고 소중한 인재로 양성할 수 있는 사회적 배려도 부족하다. 그 많은 돈을 거둬서 어디의 쓰기에 이런 사각지대가 여전할까. 행정이 현실을 고려하지 못하는 건 관련 공무원의 부족한 현실 감각도 문제지만 일하기 편한 방향으로 설정한 전문가들, 관련자들의 실익중심으로 겉도는 복지 정책이 개선되지 않는 한 성냥불은 계속 켜질 수 밖에 없다.

장차 이 나라의 인재를 잉태하고 출산할 귀한 몸들이다. 자질을 개발하여 각자의 꿈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누가복음 2장 13절에서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라는 대목이 있다.

마태복음 2장 10절에서도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 땅에 예수님의 탄생은 참으로 기뻐할 일이지만 소외된 이웃에 대한 사랑의 성냥불을 켜보는 것이 어떨까. 구주가 오신 날 부자나 가난한 자나 모두가 기뻐할 수 있어야 하고 하늘에 영광이라면 땅에는 전쟁이 없는 평화가 있어야 한다.

반드시 국가간에 포성이 있어야 전쟁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삶의 전쟁, 돈과 물과 식량, 그리고 최소한의 민생고가 해결되어 성냥을 켜지 않아도 희망이 보이는 성탄절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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