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예견된 비바람 우산이 없을까
[덕암칼럼] 예견된 비바람 우산이 없을까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2.12.28 08: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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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국내 언론에서 우려했던 일들이 현실로 나타났다. 서서히 금이 가며 저수지 둑이 무너지듯 대규모 붕괴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춘천발 레고랜드의 디폴트선언으로 시작된 신용대출의 빙하기가 전국 건설업계에 몰아치면서 상위권에 머물던 종합건설도 잇따라 부도가 나기 시작했다.

대형건설사에 문제가 생기면 전문건설업, 이른바 토목, 철근콘크리트, 미장, 인테리어, 조경, 전기, 소방 등 관련 업체의 연쇄 부도는 당연하다. 일반 국민들이 건설업계의 생리에 대해 익숙하지 않을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 오늘은 건설 현장의 밑바닥을 파보기로 한다. 건설현장은 전문건설업 일명 단일종목인 단종에게 하도급을 계약하고 공사비는 어음으로 발행한다.

만기 날짜에 도달해야 은행에서 현금으로 받을 수 있는 어음은 이미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던 경제적 유통의 일환이라 어찌할 수 없지만 이것이 부도가 나면 상황은 달라진다. 당장 돈이 급하니 일명 어음깡(금융업계에서 할인해 주는 어음 지급에 대한 금융이자부담)비를 고스란히 손해 봐야 하고 그나마 대형건설업체라면 다행이지만 중소 업체는 높은 금리로 인해 남는 이윤이 깡비를 타 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종합건설이 먼저 떼고 단종에게 마른 수건을 짜서 던지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서 품떼기나 하도급의 하청으로 이어진다. 그 다음이 나름 한 가닥 한다는 전문가들인데 각 분야별 기술자들이 허리춤에 연장통만 차고 나가면 하루 일당이 제법 높은 편이다. 결국 힘없고 빽 없는 잡부(막일을 도맡아 하는 최하위층 인부)만 겨우 입에 풀칠하는 수준의 임금을 받는다.

그나마도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모두 넘겨주고 정치인들이 생색내는 복지수당에 목을 걸고 버티는 게 현실이다. 혹자는 “안 되면 노가다라도 하지, 그것도 안 되면 택시 운전이나 하든가”라고 하지만, 건설근로자들의 세계나 택시 운전기사들의 생활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노가다라는 말은 막일을 뜻하는 비속어인데 토목공사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의미하는 일본말 도가타에서 출발한 단어다.

지금이야 레미콘 타설은 믹서트럭과 펌프카가 하고 비계(구조물 시공에 드는 가설 발판이나 시설물 유지장치)도 금속 파이프로 되어 있지만 필자가 노가다에 종사하던 시절은 대빵이라는 철판위에 사람이 직접 곽삽으로 시멘트와 모래를 섞었고 비계 대신 아시바라는 일본 단어의 목재 구조물 설치가 대부분 이었다.

안전모는 물론 반생(목재와 목재를 연결해서 묶는 굵은 철사) 한 묶음을 어깨에 메고 안전화도 없이 서커스 수준의 이동을 한다. 때로는 추락사가 그리 큰일이 아니었던 시절, 필자가 3년간 종사했던 노가다 현장의 무더위와 혹독한 추위는 근로자들을 더욱 힘들게 했다.

굴삭기의 쪽 바가지가 상하수도 매설을 위해 길게 땅을 파던 일이 과거에는 호리가다 라는 일본 단어로 통용되어 야리끼리, 일명 돈내기로 맡겨져 죽어라 삽으로 땅을 파던 시절이 있었다. 택시 기사 또한 100원짜리 푼돈에 민감해진다. 어쩌다 승객이 거스름돈을 안 받고 생색내며 하차하면 그리 고마울 수 없다.

그나마 지금은 모두 카드라서 그런 일도 없지만 장시간 야간 운전이라도 하다 보면 졸음이 쏟아져 거리의 가로등이나 전봇대까지도 승객으로 보일 때가 있다. 어떤 일이든 장기간 해봐야 노하우도 생기는 것이고 지금 하는 일도 못하면서 무슨 다른 일을 할 수 있을까. 노가다나 운전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해 보지도 않고 함부로 말하는 것보다 겪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무슨 일이 생겨도 공무원 급여는 정해진 날짜에 나오고 선출직 국회의원이나 보좌관들의 월급도 제때 지급된다. 아니 온갖 수당과 혜택도 차질없이 부여받을 수 있다. 국내 체류 외국인은 2022년 5월 기준 130만 2천 명이다.

올해 들어 약 1만 명이 한국을 떠났다. 본국이 더 낫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대부분 200만 원 미만의 저임금 근로자들인데 더 이상 코리안 드림은 꿈일 뿐이라는 밑바닥이 드러난 셈이다. 그나마 험하고 위험하고 더러운 3D 직종이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의존했던 인력의 숨통이 점점 조여오고 있는 것인데 정작 내국인의 출생 수는 급경사로 추락하고 있다.

불과 20년 뒤에 다가올 재앙 수준의 인구절벽이 어떤 대안으로 해결될지 아주 난감이다. 대한민국 출생 인구는 2019년 11월부터 35개월 연속 내리막이다. 장래가 암담한 결혼, 기피하는 출산, 불투명한 자녀들의 교육과 취업 등 전망은 흐리지만 적절한 대안이 없다. 올해만 해도 1월부터 9월까지 8만 6천 명이 줄어들었다.

점차 노령인구가 거리를 메울 것이고 전문직의 주인공이 되어있던 외국인들이 다 빠져 나가면 누가 기계를 만지고 건설 현장에서 험한 일을 할 것인가. 고생 안 하고 부동산 투자해서 한방에 거액을 챙기려던 부류들이 반토막 난 아파트 값과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금리에 넋이 나간 상태다.

이쯤 되면 전반적인 상황 판단이 들 것일진대 올해 12월이 문제가 아니라 2023년은 어쩔 것이며 앞으로는 어쩔 것인가. 혹자는 덕암 칼럼이 어려운 사람들 이야기로 징징거린다고 지적한다. 물론 잘 사는 계층도 많고 나름 행복하고 풍요로운 사람들도 많지만 먹고 살만한 계층과 정해진 날짜가 되면 꼬박꼬박 급여 받는 대기업, 공무원들만 사는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군대에서 지친 전우가 대열에 낙오되면 두고 가야할까. 아픈 사람이 약이 없어 괴로울 때 나만 안 아프면 괜찮다고 외면해도 되는 것일까. 양치기 목동은 푸른 풀밭으로 양들을 몰아서 배고프지 않게 해야 하고 늑대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처럼 정치인은 국민이 힘들지 않게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지금처럼 저 하나 출세하겠다고 온갖 미사여구와 감언이설로 표를 챙기는 발상이 얼마나 잔인하고 위험한 일인지 알아야 한다. 가만 놀아도 먹고 살게 해주겠다고 표를 챙길 게 아니라 게으르면 굶어도 방치하겠지만 뭐라도 하려고 애쓰면 그런 국민에게 예산을 쓰겠다고 공약하면 된다. 게을러 가는 국민과 개인의 출세에 눈이 먼 정치가 나라의 미래를 말아먹고 있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가장 큰 희망은 온 국민의 성실함에 달려있다. 다 그렇지는 않지만 지금처럼 좌파·우파, 진보·보수의 이념대립이나 지역감정 조장, 성차별 대립, 연령별 대립, 온갖 대립으로 분리시키고 그 틈바구니 속에 얌체처럼 표를 얻어 정치를 하는 쓰레기들이 있는 한 대한민국의 행복한 미래는 보장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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