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엄동설한 낮은 곳에 임하길
[덕암칼럼] 엄동설한 낮은 곳에 임하길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2.12.29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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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최근 영하의 한파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도로에는 빙판길 사고가 속출했고 다시 코로나19가 고개를 드는 분위기다. 미국은 확진자가 최초로 1억 명을 넘어섰고 중국도 마스크 해제에 국민들이 불안해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내년 1월 1일부터 실내 마스크 해제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와 독감이 동시에 퍼지는 상황에서 마스크 해제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어 귀담아 들어야 한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운명이겠거니 하면서도 피할 수만 있다면, 미리 예방할수만 있다면 고비를 잘 넘기는 게 좋지 않을까.

최근 언론에 보도된 무료 급식소 소식이 한해의 끝자락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자고로 언론의 소임이 이럴 때 자초지종을 들어보고 공론화시킴으로써 아사공덕의 기회로 삼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 일장일단이 있게 마련이고 배고픈 사람을 위해 밥퍼 봉사를 수십 년간 해왔다면 뚜렷한 사명감이나 무한한 봉사 정신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35년이나 운영된 서울의 무료 급식소가 철거 위기에 처했는데 그 이유는 무단 증축 문제로 서울 동대문구청과 갈등을 빚다가 결국 올 데까지 왔다는 것이다. 하루 8백 명의 취약계층이 찾는 곳인데, 일반 식당처럼대접받는 것도 아니고 길게 줄을 서서 배급받다보니 추운 날 벌벌 떨면서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식사다.

반찬이래야 제육볶음과 콩나물무침, 김치와 미역국인데 그나마 고기라도 몇 점 먹을 수 있으니 단백질 보충이 되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비단 서울뿐만 아니라 대구, 인천 등 대도시면 어디든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이번 서울의 밥퍼는 관할 구청이 무단 증축을 했다는 이유로 이행 강제금 2억 8천 3백만 원을 부과하면서 전면전에 직면했다.

밥퍼는 지난 2010년부터 서울시가 지어준 현재의 가건물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5월 전임 구청장의 제안에 따라 증축도 했다. 서울시가 불법 증축을 문제 삼고 나서면서 철거 위기에 직면했지만, 급식소 운영재단이 가건물을 헐고 새 건물을 짓겠다고 신축 허가서를 받으며 일단락됐다.

하지만 구청은 무단 증축에 해당하는 만큼 단속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행 강제금을 못 내면 강제 철거될 수 있다. 철거를 막아달라는 서명엔 800명 넘는 자원봉사자와 이용객이 참여했다. 강제 철거할 경우, 서울 동대문구에 거주하는 이용자에게만 무료 도시락을 제공할 방침인데 일관성 없는 행정에 취약계층만 피해를 보는 격이다.

이렇듯 봉사로 수십 년을 묵묵히 실천하는 일이 있는가 하면 오래 전 불우이웃돕기의 대명사로 알려진 A기부단체의 비리가 수면위로 드러나 충격을 준 바 있다. 일각에서는 기부금은 눈먼 돈이냐는 불신의 실마리가 되기도 했고 얼마를 받았는지 어디에 얼마를 썼는지가 베일에 가려진 채 가난한 사람들의 영상이나 사진을 찍어 빈곤 프레임으로 동정심만 자극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이 같은 동냥질은 그나마 어려운 이웃을 도우려는 일반시민들의 민심마저 싸늘하게 만들어버리는 악행이다. 선행을 위장한 악행, 돈이란 없어서 못 쓰는 것이지 주머니가 작아서 못 받는 것은 아닐진대 어려운 가운데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기부한 돈이 기부단체 직원들의 인건비와 상여금, 자극적인 홍보비는 물론 단란주점 술값에 수 백 차례나 넘는 노래방, 유흥주점은 물론 워크숍을 빙자한 회식비로 쓰였다.

심지어 스키장, 래프팅, 바다낚시는 물론 각종 업무추진비로 진수성찬을 즐겼다. 이쯤 되면 기부금을 낸 일반 시민들 입장에서 얼마나 기가 막힐까. 물론 전체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거지 X구멍에 콩나물을 빼먹는 행위에는 그 어떤 벌보다 엄한 처벌이 따라야 한다.

지금도 버젓이 유명인사들이 너도나도 가슴에 달고 다니는 배지(badge)는 각자의 이미지 관리에 상징적인 마크로 통하니 진실보다는 현실이 중요한 것이다. 물론 국정감사에서 금액이 소액이라는 점과 그로 인한 기부자들의 집단 탈퇴로 이어진 것으로 종결되었지만 유사한 단체들의 빈곤 빙자 기부금 갈취(?)는 참된 봉사자들까지 설 자리를 잃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미국·영국 등 선진국에서도 기부단체들의 사용 명세에는 상당부분 인건비나 운영비도 포함된다. 기부 체제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어려운 이웃을 도우라고 준 돈인데 그것으로 직원 급여나 회식비로 쓰인 게 이해되지 않겠지만 현실은 누가하더라도 피할 수 없는 유지관리비가 소요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프리카 난민이나 뼈만 남은 아이들이 구호 대상인 것은 맞지만 그 아이를 방치한 아빠는 어디로 가고 파리떼가 달라붙어 콧물을 흘리는 비참한 프레임으로 동정심을 자극하는가. 어려운 사람은 일단 살려야 한다. 필자도 대학교에서 무인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지만 로스 비율, 일명 2개 결제하고 4개 가져가는 얌체족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

무인점포는 인형이나 성인용품 등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하는 품목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지만 이런 단순절도는 구매자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가면서 점차 낮아지고 있다. 이미 철도·지하철은 물론 다양한 분야에서 이미 무인결제는 대세다. 그러함에도 무인점포에서 컵라면과 생수 등 생필품을 훔친 50대 여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정신장애로 인해 경제적인 활동이 어려워지면서 생활고를 겪게 되자 생계형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어디 이뿐이랴. 많겠지만 각 개인의 양심이나 상황이 접목되다 보니 가장 치명적인 불안요소다. 특히 생계형 범죄는 현장 신고에 대한 경찰의 판단이 상당 부분 기소에 어려움이 발생하기에 현실적 문턱이 중요하다.

사람이 상식을 저버리고 해서는 안될 일을 했을 때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저 낮은데 임하면서 높을 곳을 지향하는 자세가 어느 때보다 요원한 시기다. 빵을 훔쳐 감옥에 간 장발장의 이야기가 한국에서 재현되지 말아야 한다. 그래도 명색이 선진국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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