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닭장 같은 아파트보다 초가집을
[덕암칼럼] 닭장 같은 아파트보다 초가집을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01.19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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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땅거미가 내려 앉아 어둠이 골목길에 깔리면 집집마다 굴뚝에 연기가 나고 “밥 먹어라” 아이들 부르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멀리서도 들리던 날이 있었다. 마당에는 누렁이가 연신 꼬리를 흔들며 쫓아 다닌 풍경은 특별한 집이 아니라 대부분의 일반 가정집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새벽녘이면 수탉이 홰를 치며 울어대고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암탉은 뽀얀 계란을 생산한다. 병아리가 되기도 전에 밤새 아이 만드느라 고생(?) 많았던 주인집 보신용으로 사라지니 알 낳는 암탉이나 5남매·7남매 낳는 사람이나 역사는 밤에 만들어진다는 말이 옳았다.

하나 둘씩 낡아빠진 초가집이 사라지고 언제부턴가 집 위에 집이 생겨났으며 똑같은 구조의 시공으로 화장실 머리 위에는 위층 입주자가 용변을 보는 각도에 살게 됐다. 넓은 마당 대신 좁은 베란다 확장에 만족해야 했고 1980년대 5층짜리 아파트는 재개발 붐을 타고 초고층으로 변해가며 마천루가 즐비해졌다.

건설업체는 스카이라인을 바꿔버리겠다며 한번 지어진 고층 건물을 기준으로 인근 건물을 모두 오피스텔이나 상가로 재건축을 추진했다. 문명의 발달만큼 정신적 행복수치도 높아질까. 물론 아니다. 과거 주거 형태는 3대가 모인 대가족 형태였고, 달라진 주거문화는 핵가족을 넘어 독신, 영어로 솔로가 주를 이루는 오피스텔이 붐을 이루고 있다.

갈수록 편리함이 나태함으로 변해가고 공동체 보다는 개인주의가 만연하다 보니 나만 괜찮으면 상관없다는 이기적 문화가 자리매김했다. 이에 따른 인심의 변화는 더 삭막했다. 과거처럼 보따리 이고지고 다니던 시절에는 생면부지의 남이라도 들어주고 인사를 나누는 훈훈한 풍경이 자연스러웠다.

이제는 그럴 일도 없지만, 있다고 해도 괜히 짐 들어주다 곤욕을 치를 수 있으니 멀찌감치 구경만 한다. 어디 짐만 안 들어줄까. 물에 빠져도 멀리서 구경만 하는 게 대세다. 간혹 시민정신이 투철한 경우도 있지만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이쯤 되니 옆집에 누가 이사를 왔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조차 알 수 없다.

유일하게 아래층에 누가 사는지 아는 방법이라면 발꿈치로 쿵쿵거려 층간소음이라도 내야 인상 쓰며 대면이 가능하다. 과거 동네일이 우물이나 공동수도에서 삽시간에 소문이 퍼지던 시대와는 천지차이다. 오늘의 덕암 칼럼 전말이 긴 것은 주거형태에 따라 민심도 각박해 진다는 것이며, 이미 선진국에서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고독사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함이다.

소형아파트나 오피스텔, 그리고 도심의 고시원은 대부분 5~60대 독신 남성의 전용공간이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상당수의 공간을 이들이 잠식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의 경제력이 뒷받침 되지 않을 경우 이렇다 할 대안이 없다는 것인데, 버티다 안 되면 살려 달라고 아우성치기보다 조용히 극단적 선택이나 현실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어차피 징징거려봐야 일시적인 전시행정의 들러리로 국한될 뿐 항구적인 언덕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시골과는 달리 도심의 집합건물은 내부에서 문만 잠그면 누구도 내부를 볼 수 없다. 이런 환경속에 취약계층과 고령자 등이 모여 사는 쪽방촌은 고독사 위험이 높은 지역이다.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쪽방촌과 고시원에 사는 중·장년 1인 가구 중 60%가 고독사 위험군으로 나타났다.

일명 아파트 무덤이라고도 불리는 집합건물의 독신 주거는 나이가 들면서 한번 누우면 일어나기 힘들다는 위험한 환경에 처해 있다. 짧게는 1주일 길게는 몇 달이 지나야 발견되는 고독사의 사체는 여름의 경우 심하게 부패되어 유족들조차 장례를 치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평소에도 찾지 않던 가족들이 그나마 사망보험금이나 남긴 유산이라도 있어야 찾아오지 아니면 관할 행정복지센터에서 진행하는 무연고로 구분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러한 일들이 먼 나라, 남의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남성은 경제적 한계점에 여성은 치매로 인한 실종이 심각한 사회문제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2월 14일 발표한 고독사 공식 통계를 보면 2022년 3,378명으로, 5년 전인 2017년에 비해 40% 증가했다. 세대별로는 50·60세대가 전체 고독사의 58.6%를 차지했고, 여성보다 남성의 숫자가 4배 더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그 이유를 보면 중·장년층 남성들은 이혼, 실직 등을 겪으며 실패자로 낙인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본인의 문제를 밖으로 드러내는 것에 굉장한 거부감을 느낀다고 한다. 답도 없는 카톡을 지속적으로 되풀이 해 전송하는 것 또한 자신의 존재감을 어디서라도 찾기 위함이며 그나마 이런 노력도 하지 않는 위축된 마음가짐이 문제다.

뒤늦게 정부는 위기 가구 파악을 위해 수집하는 정보를 올해 하반기 44종까지 늘리고, 위기 의심 가구가 있으면 문을 강제로 열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사회적 고립 여부의 수요는 증가하는 반면 이를 해결한 공급망은 턱없이 부족하다. 인력은 제자리에 일거리는 과부하가 걸릴 만큼 폭증했다.

그럴싸한 계획만 장황하게 발표하는 탁상행정은 고독사가 끊이지 않는 원인 중 하나다. 기껏 한다는 것이 실효성 없는 공공근로 만들어 소일거리로 불러내고 인건비라고 주는 돈은 파지 수집 수준이니 한때 날고 기었던 5~60대 독신 남성들에게 자괴감만 더하는 셈이다.

영국, 일본처럼 부처를 신설해 국민의 외로움과 고독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이들이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도움을 제공해야 한다. 대표적인 대안으로 매일 새벽 우유를 배달해 독거노인의 안부를 확인하는 우유안부 캠페인은 혼자 사는 어르신 집에 전날 배달한 우유가 남아 있을 경우 해당 지역의 관공서나 가족을 통해 안부를 확인했다.

우유통에 남아 있는 양을 기준으로 생사를 확인하는 방법인데, 2016년부터 매일유업의 가정배달 시스템을 활용해 2023년 1월 현재 서울 전역 3,600가구의 안부를 묻고 있다. 예산을 투입해 전국적으로 확대할 가치가 높은 제도다. 문제가 있다면 공무원의 적극적인 기획과 추진으로 사람부터 살려야 하지 않을까. 한때 대한민국의 부흥기에 열정을 쏟았던 세대다. 고기 한 마리 주기보다 그물을 챙겨주는 지혜가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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